유연수·한동규, 천의무봉 티격태격…'살짝넘어갔다가얻어맞았다'

  • 뉴시스

입력 : 2015.11.02 09:46

"너는 그 판을 왜 들고 있어? 나 보고는 들지 말라고 해놓고"(유연수), "저는 이걸 들고 있어야 해요. 형님이야말로 필요 없죠. 지금이라도 들고 계시려면 그렇게 하시든가요."(한동규)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의 두 교도관인 '경보' 유연수(49)와 '대기' 한동규(41)가 알콩달콩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몇십년 같이 산 부부의 의례적이고 애정 어린 부부싸움, '톰과 제리'의 실사판 같기도 하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지하2층 연습실은 두 사람으로 인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광보(51) 연출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은 두 사람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벌써 시작한거야"라며 계속 눙쳤다.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대기), "화 안 났다"(경보), "화 났죠? 맞죠?"(대기), "그래 났다. 화 났어. 화 났다."(경보) 본 연습이 시작되자 웃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우유부단하면서 사람 좋아보이는 경보, 애정이 한 가득 묻어나는 깐죽거림을 선보이는 대기는 이들 둘에게 그대로 가닿았다. 한국 초연을 앞둔 블랙코미디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김광보식 미니멀리즘의 절정을 보여줄 만한 작품이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연극의 주체는 배우라는 소신'으로 배우들의 기량을 한껏 드러내는 미학에 기반한다.

유연수는 '아트' '날 보러 와요'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아버지와 아들' '사회의 기둥들' 등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함과 함께 위트 있는 연기로 대학로의 중심축을 붙들고 있다. '트루 웨스트' 등 연극 연출도 겸하며 통찰력도 뽐낸다.

한동규도 '사회의 기둥들' '여기가 집이다'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늘근도둑 이야기' 등에서 감칠맛 나는 개성 있는 연기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뮤지컬 '아리랑'과 영화 '암살'에서 일본군 역을 맡아 신스틸러로 자리잡기도 했다.

이들뿐 아니다. 김영민, 유병훈, 이석준, 유성주, 이승주, 임철수 등은 '김광보 사단'이자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주연급 남자배우들이다.

이들이 동등한 비중으로 출연하는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가 김광보 미학의 정점일 것이라는 기대는 괜한 것이 아니다. 이 '드림팀' 배우들을 한 데 모으느라 캐스팅에만 6~7개월이 걸렸다. '인류 최초의 키스' '스테디 레인' '줄리어스 시저' 등을 통해서 남자 배우들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김광보 연출의 진가가 새삼 드러나리라는 기대다.

최근 김광보의 '페르소나'로 활약 중인 유연수와 한동규가 김광보와 호흡을 맞춘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2001년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초연 당시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김광보와 인연을 맺지 못한 유연수는 지난해 '은밀한 기쁨'을 통해 처음 호흡을 맞췄다. 한동규는 2012년 연극 '엠.버터플라이'가 처음이었다. 세 사람의 대학로 활동이력에 비춰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함에도 호흡은 척척이다.

유연수는 김광보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며 "편하면서도 무척 어려운 연출"이라고 봤다. "형은 배우에게 맡겨두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어느 정도의 밑그림은 그려져 있다. 자유롭게 연기하면서도 그 기준에 맞춰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라는 것이다.

한동규는 김광보 연출과의 작업이 늘 똑같이 힘들다고 웃으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짚었다.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다. 예전에는 토씨 하나하나 지적을 했다. 이제는 서브 텍스트를 잘 표현하는 것에 대해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숨겨진 이면을 잘 표현해 내면 크게 말씀을 하지는 않더라."

"이번 작품에서 더 그렇다. 대사가 그냥 하는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면이 잘 살아야 이번 작품이 잘 살 것 같다. 그냥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연수와 한동규가 처음 호흡을 맞춘 건 지난해 김광보가 연출한 국립극단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처음이었다. 이후 '엠버터플라이' '여우 인간' '사회의 기둥들' 등 김광보 연출의 최근작 대다수를 함께 하면서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 됐다.

유연수는 "동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나이도 젊은 편인데 극단 아리랑의 대표 단원이고, 실력이 뛰어난 배우라서. 상대 배우도 잘 맞춰주고 무엇보다 연기를 잘 한다"고 치켜세웠다. 한동규는 "선배님을 제대로 안 지는 한 2년 정도됐는데 4개 작품째 연달아 계속 같이 하고 있다. 그것도 주로 붙는 장면들이 되게 많았다. 본인 이름처럼 유연하고, 코믹한 역할도 잘 소화한다. (웃음). 연륜과 경력이 워낙 오래된 분이라 무대에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삶의 무게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아우라라고 할 수 있겠다"고 화답했다.

작업을 하면서 트러블은 없는데 "자꾸 같이 다니다 보니까 마치 부부싸움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교도관) 훈련학교부터 시작해서 매일 싸우면서도 인간적으로 친한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톰과 제리'처럼. 이런 역이 연수 선배님이나 나나 제일 잘하는 부분인 것 같다. 극중에서 경보가 자꾸 억지를 부린다. 대기는 그걸 알면서도 선배와 싸우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려고 하고 선배로서 인정하려고 한다. 믿고 의지하는 선배로 표현하려고 했다."

연극 '억울한 여자'와 일본 TV드라마 '도쿄 타워' '로스 타임 라이프' '사이토씨' 등의 각본으로 잘 알려진 작가 츠치다 히데오((土田英生)의 희곡이 원작이다. 경범죄 상습범들을 가두는 어느 교도소. 6명의 수인과 2명의 교도관은 어느 날 장난처럼 교도소에 하나의 선을 긋고 국경을 나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생긴 이 선 하나로 인해 교도소 분위기는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유연수는 "이 작품의 장점은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벽이나 선은 가족, 친구뿐 아니라 회사, 나라 등 모든 영역에서 경계라는 부분으로 작용한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사소한 이야기로 대단한 걸 이야기한다"고 알렸다.

유연수는 경보의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봤다. 유연수의 과거 연극 '아트'에서 자신이 연기한 '덕수'와 비슷하다며 "저 친구 편도 되고, 이 친구 편도 되면서 몰리는 스타일인데 애들 놀이할 때 이른바 '깍두기'라는 거 있지 않나. 물에 물 탄 것처럼 저기 붙었다, 여기 붙었다 하는 그런 캐릭터"라며 즐거워했다.

그는 또 8명이 균등한 비중으로 출연하는 점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꼽았다. "다들 대사량이 많아서 주인공이 없다. 작가가 대단한 것이, 대사량을 무게로 비유하면 일일이 50㎏씩 나눠서 분배한 듯하다. 그 만큼 균등한 데다 군살이 없어 리듬과 템포가 좋다"고 전했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다. "감각적으로 잘 짜여져서 대사 하나 놓치면 큰일 난다."

츠치다 히데오는 '슛 결정력'보다 '패스를 잘 하는' 배우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패스뿐 아니라 슛 결정력도 좋은, 전천후 미드필더 겸 스트라이커들이다. 무려 8명의 센터포드들이 한꺼번에 출연하는 셈이다. 유연수는 "모두들 주인공했던 사람이니 8명의 앙상블이 얼마나 잘 맞느냐가 관건이 될 듯하다"고 짚었다.

지난해 호평 받은 헨릭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에 이어 다시 김광보와 LG아트센터가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다. 5~1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번역 이홍이, 각색 김은성, 무대 황수연, 조명 김창기. 3만~5만원. LG아트센터.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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