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8 03:00 | 수정 : 2015.10.28 10:51
[故천경자 화백 장남·차녀]
"지난주에 은행 전화 받고 별세 사실 뒤늦게 알아…
長女인 혜선씨 상대로 작품 권리 주장은 안할것"
모레 서울시립미술관서 유족들이 추모식 열기로
"어머님 유골을 어디에 모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장녀 이혜선(70)씨를 제외한 나머지 유족이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천 화백의 별세 사실을 지난주에야 들었고,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천 화백과 첫 남편 이형식씨와의 사이에서 난 장남 이남훈(67·팀쓰리 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회장)씨, 김남중씨 사이에서 난 차녀 김정희(61·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씨와 김씨의 남편 문범강(61·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씨, 차남인 고(故) 김종우씨의 부인 서재란(52·세종문고 대표)씨 등 4명이 참석했다.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장녀 이혜선(70)씨를 제외한 나머지 유족이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천 화백의 별세 사실을 지난주에야 들었고,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천 화백과 첫 남편 이형식씨와의 사이에서 난 장남 이남훈(67·팀쓰리 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회장)씨, 김남중씨 사이에서 난 차녀 김정희(61·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씨와 김씨의 남편 문범강(61·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씨, 차남인 고(故) 김종우씨의 부인 서재란(52·세종문고 대표)씨 등 4명이 참석했다.

정희씨는 "19일(미국 시각 18일) 한국의 한 은행으로부터 어머님의 계좌 해지 동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고서야 지난 8월 6일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지난 4월 5일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만났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또 "유골이 지난 8월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를 한 바퀴 돌고 갔다는 것도 언론(본지) 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무런 장례 혹은 추모 행사 없이 어머님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에 망연하여 유족이 모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수년간 언니(혜선씨)가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머지 형제에게 고통을 줬지만 어머님의 성함 석 자에 누 끼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모두 참고 있었다"며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다른 예술인 가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재산 놓고 가족끼리 분쟁 났다는 기사가 날 때마다 '추접하다'며 굉장히 싫어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니는 어렸을 때 함께 살며 내 머리도 땋아주고 식물 채집 숙제도 같이했고, 어머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큰 살아가는 이유로 삼아온 희생적인 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니를 제외한) 우리는 어머님 작품을 한 점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머님이 목숨처럼 아낀 작품을 판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언니에게 작품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주장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0일 오전 10시 유족들 주최로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며 "서울시에 93점의 귀중한 대표작을 기증한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서울시에서 격식을 갖춘 예우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금관문화훈장 서훈을 하지 않기로 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서도 "노년에 건강 악화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생애 수십년간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훈장 서훈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어머님은 한국을 사랑했고, 어머님을 사랑해주는 국민을 사랑했다.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말씀도 했다"며 "일반인들이 와서 어머님에게 인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저희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수년간 언니(혜선씨)가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머지 형제에게 고통을 줬지만 어머님의 성함 석 자에 누 끼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모두 참고 있었다"며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다른 예술인 가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재산 놓고 가족끼리 분쟁 났다는 기사가 날 때마다 '추접하다'며 굉장히 싫어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니는 어렸을 때 함께 살며 내 머리도 땋아주고 식물 채집 숙제도 같이했고, 어머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큰 살아가는 이유로 삼아온 희생적인 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니를 제외한) 우리는 어머님 작품을 한 점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머님이 목숨처럼 아낀 작품을 판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언니에게 작품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주장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0일 오전 10시 유족들 주최로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며 "서울시에 93점의 귀중한 대표작을 기증한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서울시에서 격식을 갖춘 예우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금관문화훈장 서훈을 하지 않기로 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서도 "노년에 건강 악화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생애 수십년간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훈장 서훈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어머님은 한국을 사랑했고, 어머님을 사랑해주는 국민을 사랑했다.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말씀도 했다"며 "일반인들이 와서 어머님에게 인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저희 바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