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3 03:00 | 수정 : 2015.10.23 07:47
[오늘의 세상]
딸이 유골함 들고 8월 귀국
서울시립미술관 들러 기증한 93점 일일이 작별 "엄마 이제 편히 가세요"
예술원, 千화백 별세 확인
지난 8월 20일 오전 8시 30분 덕수궁 돌담길 옆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시간(오전 10시)을 1시간 30분 앞두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유골함과 영정 사진을 들고 미술관에 도착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미술관 안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행여 떨어뜨릴까 봐 여인이 두 손에 단단히 든 유골함 속 한 줌 재로 남은 이는, 2주 전인 8월 6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아흔한 살 생(生)을 마감한 '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 화백이었다.
"엄마 '자식'들 여기 있어요. 이제 편히 가세요." 담담했던 여인의 어깨가 흔들렸다. 여인은 1998년 천 화백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함께 살았고, 2003년 뇌출혈 후 줄곧 병석에 있었던 천 화백을 간호한 맏딸 이혜선(70·섬유 디자이너)씨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98년 천 화백이 그림 93점을 기증한 곳이다.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 당신이 때로 자식보다 때로 목숨보다 아꼈던 그림을 보여 드리기로 했다. 8월 중순 미국에서 귀국해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엄마 '자식'들 여기 있어요. 이제 편히 가세요." 담담했던 여인의 어깨가 흔들렸다. 여인은 1998년 천 화백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함께 살았고, 2003년 뇌출혈 후 줄곧 병석에 있었던 천 화백을 간호한 맏딸 이혜선(70·섬유 디자이너)씨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98년 천 화백이 그림 93점을 기증한 곳이다.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 당신이 때로 자식보다 때로 목숨보다 아꼈던 그림을 보여 드리기로 했다. 8월 중순 미국에서 귀국해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유골함은 그림 30여점이 걸려 있는 2층 '천경자 상설 전시실'을 돌아 나머지 작품이 걸린 수장고를 향했다. 끽연가(喫煙家)였던 어머니처럼 담배 한 개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여인을 그린 '여인의 시 1'(1984년), 스물둘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년)…. 한 점 한 점 눈에 꼭꼭 담아 가시라고 93점 모두를 찬찬히 둘러봤다. '자식 93명'을 보여 드렸다.
일부 그림 앞에서 딸은 품에 안긴 어미에게 흐느끼며 속삭였다.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이씨는 수장고를 함께 돈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 2명에게 "아직 정리할 게 많고 개인적인 일이니 내가 공개하기 전에 어머니 죽음은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날 이씨 옆엔 양복 차림의 남성 유호상(59·서울 강동구청 행정안전국장)씨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미술계 인사들과 소식을 끊은 이씨가 국내에서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이로 전 서울시 문화관리팀장이었다. 유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관리 업무를 맡았던 인연이 있다.
19일 유씨는 서울시 문화정책과에 전화해 이씨가 천 화백의 유골함을 들고 시립미술관을 돌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시는 이를 허가했다. 천 화백이 회원으로 있었던 대한민국예술원은 22일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일부 그림 앞에서 딸은 품에 안긴 어미에게 흐느끼며 속삭였다.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이씨는 수장고를 함께 돈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 2명에게 "아직 정리할 게 많고 개인적인 일이니 내가 공개하기 전에 어머니 죽음은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날 이씨 옆엔 양복 차림의 남성 유호상(59·서울 강동구청 행정안전국장)씨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미술계 인사들과 소식을 끊은 이씨가 국내에서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이로 전 서울시 문화관리팀장이었다. 유씨는 천 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관리 업무를 맡았던 인연이 있다.
19일 유씨는 서울시 문화정책과에 전화해 이씨가 천 화백의 유골함을 들고 시립미술관을 돌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시는 이를 허가했다. 천 화백이 회원으로 있었던 대한민국예술원은 22일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