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과 농악의 첫 만남, 장소는 고궁 앞뜰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10.22 00:43

[창경궁 문정전 앞 '고궁무악전']
첫 회 '태평무악'… 極과 極의 향연, 관람한 이준익 감독 눈물 짓기도

전아(典雅)한 고궁 앞뜰을 은은한 조명이 채웠다. 남서쪽 하늘엔 동그마니 반달이 떴다. 대금과 피리, 해금과 아쟁이 만들어내는 느린 합주와 곡조가 청량한 가을밤을 휘감았다. 이따금 들리는 편경과 편종 소리는 공명(共鳴)으로 장중함을 더했다. 제례 무용인 일무(佾舞)를 추는 무용수가 약(籥)과 적(翟)을 손에 하나씩 들고 절도 있는 춤사위를 펼쳤다.

담요가 둘둘 말린 듯 천천히 흐르던 시간은 곧바로 이어진 공연에서 한꺼번에 쫙 펴졌다. 징, 꽹과리, 장구, 북을 나눠 든 농악대가 상모를 돌리며 무대로 진입하더니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객석에 흥이 일었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자반뒤집기' 동작이 나올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다섯 방위에서 나선형으로 감아 돌아가는 '오방진'에선 무대가 소용돌이쳤다.

지난 20일 밤 창경궁 문정전 앞뜰에서 펼쳐진 ‘고궁무악전’의 첫회 ‘태평무악’은 종묘제례악과 농악이라는 ‘극과 극’의 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한자리에서 펼쳐진 무대였다.
지난 20일 밤 창경궁 문정전 앞뜰에서 펼쳐진 ‘고궁무악전’의 첫회 ‘태평무악’은 종묘제례악과 농악이라는 ‘극과 극’의 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한자리에서 펼쳐진 무대였다. /고운호 객원기자
지난 20일 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앞에선 이렇듯 '생경한 조합'의 공연이 펼쳐졌다. 창경궁 야간 개장을 맞아 22일까지 계속되는 한국문화재재단의 '고궁무악전(古宮舞樂展)' 첫 회 '태평무악'은 종묘제례악과 농악이라는 극(極)과 극(極)의 향연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은 "자격루에 천천히 물 떨어지는 듯한 종묘제례악과 번갯불에 콩을 굽는 농악이 한 무대에서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두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지독한 편차가 낳는 묘미"라고 말했다. 옛날 종묘에서 제례를 마친 임금이 환궁할 때 곳곳에서 거리 잔치인 산대(山臺)가 펼쳐진 것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 보존회가, 농악은 호남우도농악을 계승한 여성 농악대 연희단팔산대가 맡았다.

객석과 전각 앞을 가득 채운 관객 500명은 종묘제례악의 '영신희문' '보태평'과 농악의 '판굿' '오채질굿'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찬탄을 보냈다. 이날 공연이 열린 문정전 앞뜰은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혔던 역사적 장소다. 이날 객석에 앉아 공연을 지켜본 영화 '사도'의 이준익 감독은 "바흐와 록 음악이 함께 펼쳐진 셈"이라며 "최고의 공연 앞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22일 밤 마지막 '고궁무악전' 행사에선 오고무, 양산학춤, 채상소고춤, 농악 등이 등장하는 '무풍연(無風宴)'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