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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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현대미술계는 세계무대에서도 주목을 받는 단색화 열풍에 휩싸여 있다. 미술품 경매나 대형 아트페어에서도 단색화 일색이다. 그래서일까, 그 후속이 걱정이라고 한다. 단색화 열풍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그 열기를 이어나갈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것은 '단색화 만이 과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경쟁력이자 대안인가'하는 점이다. 또한 '단색화가 과연 한국성, 한국의 감성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원론적인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상품 재고 따지듯 단순히 '작가가 없다', '이론가가 없다' 등의 고민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이후까지 우리 현대미술을 지켜줄 만한 거시적 안목의 고민이 더 늦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시대성이나 일시적인 트렌드를 초월하는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기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술은 개인의 감성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성은 개인의 사회적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단색화 광풍'처럼 단순히 표피적이고 시각적 요소에만 치중해 한국미술의 경쟁력을 찾으려 한다면, 지속적인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47억2000만원으로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 역시 어느덧 '단색화 작가'로 분류된 분위기다. 단지 뉴욕 시대에 그린 후기시대 추상 시리즈 중 한 부분일 뿐이지, 그 작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장 중심의 지나친 과열현상으로 이젠 작가나 작품들을 너무나 쉽게 조형적 패턴으로만 구분하려고도 한다. 단색화 열풍을 두고 한국 현대미술이 꽃을 피웠다고 한다. 꽃은 화려할수록 땅에 떨어질 시간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때문에 그 꽃을 얼마나 더 지속시켜 감상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꽃이 진 이후 다음의 꽃을 또 다시 보기 위해 어떻게 뿌리와 줄기를 보존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미술의 뿌리와 줄기는 무엇인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국가도 개인과 같아서 시대적 환경과 경험으로 인해 국가적 감성, 즉 국가 및 민족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시대별 감성이 대나무 마디처럼 쌓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국가관이 올바로 설 수 있다. 대나무가 단단하다 하여 한 마디만 길게 늘어뜨린다면, 약한 바람에도 쉽게 꺾이고 찢기게 마련이다. 마디마디가 촘촘한 대나무일수록 외풍이 아무리 강력해도 절대 꺾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에게 단색화는 단지 대나무의 '한 마디'일 뿐이다. 그 한 마디를 길게 늘어뜨릴 궁리만 하고 있지는 않나 자성해 봐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색화를 지켜줄 위와 아래의 다른 마디에 더 신경을 써야 서로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다른 유망한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간과한 중진·원로작가는 없는지 살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대나무 줄기를 지켜줄 뿌리이자 밑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프리즈아트페어나 크리스티·소더비 경매 등 해외 현대미술의 현장에 직접 다닌다는 컬렉터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편으론 불안하다. 자신의 안목을 기르기 위한 열정이라면 상관없지만, 우리 미술에 더 이상 기대감이 없어 해외로 눈길을 돌린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수시장도 중요하다. 대나무가 사계절 녹야청청할 수 있는 이유는 홀로 서지 않고 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었다는 소리를 듣기보다, 서로서로 마디가 쌓여 더 없이 단단하고 든든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한국 현대미술의 내일을 기대한다.
문화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것은 '단색화 만이 과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경쟁력이자 대안인가'하는 점이다. 또한 '단색화가 과연 한국성, 한국의 감성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원론적인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상품 재고 따지듯 단순히 '작가가 없다', '이론가가 없다' 등의 고민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10년, 20년, 이후까지 우리 현대미술을 지켜줄 만한 거시적 안목의 고민이 더 늦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시대성이나 일시적인 트렌드를 초월하는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기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술은 개인의 감성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성은 개인의 사회적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단색화 광풍'처럼 단순히 표피적이고 시각적 요소에만 치중해 한국미술의 경쟁력을 찾으려 한다면, 지속적인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47억2000만원으로 최고가 기록을 세운 김환기 역시 어느덧 '단색화 작가'로 분류된 분위기다. 단지 뉴욕 시대에 그린 후기시대 추상 시리즈 중 한 부분일 뿐이지, 그 작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장 중심의 지나친 과열현상으로 이젠 작가나 작품들을 너무나 쉽게 조형적 패턴으로만 구분하려고도 한다. 단색화 열풍을 두고 한국 현대미술이 꽃을 피웠다고 한다. 꽃은 화려할수록 땅에 떨어질 시간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때문에 그 꽃을 얼마나 더 지속시켜 감상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꽃이 진 이후 다음의 꽃을 또 다시 보기 위해 어떻게 뿌리와 줄기를 보존 관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미술의 뿌리와 줄기는 무엇인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국가도 개인과 같아서 시대적 환경과 경험으로 인해 국가적 감성, 즉 국가 및 민족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시대별 감성이 대나무 마디처럼 쌓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국가관이 올바로 설 수 있다. 대나무가 단단하다 하여 한 마디만 길게 늘어뜨린다면, 약한 바람에도 쉽게 꺾이고 찢기게 마련이다. 마디마디가 촘촘한 대나무일수록 외풍이 아무리 강력해도 절대 꺾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에게 단색화는 단지 대나무의 '한 마디'일 뿐이다. 그 한 마디를 길게 늘어뜨릴 궁리만 하고 있지는 않나 자성해 봐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색화를 지켜줄 위와 아래의 다른 마디에 더 신경을 써야 서로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다른 유망한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간과한 중진·원로작가는 없는지 살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대나무 줄기를 지켜줄 뿌리이자 밑단이기 때문이다.
최근 프리즈아트페어나 크리스티·소더비 경매 등 해외 현대미술의 현장에 직접 다닌다는 컬렉터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편으론 불안하다. 자신의 안목을 기르기 위한 열정이라면 상관없지만, 우리 미술에 더 이상 기대감이 없어 해외로 눈길을 돌린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수시장도 중요하다. 대나무가 사계절 녹야청청할 수 있는 이유는 홀로 서지 않고 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나무처럼 속이 텅 비었다는 소리를 듣기보다, 서로서로 마디가 쌓여 더 없이 단단하고 든든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한국 현대미술의 내일을 기대한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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