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오페라의 리더 김학민, 그런데 농부의 마음…왜?

  • 뉴시스

입력 : 2015.10.20 09:46

김학민(53)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자신이 현실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19일 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김 단장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별개의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두 개가 만나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디즈니의 뮤지컬 '라이언 킹'은 대중적이지만 전문성이 바탕인 하이엔드가 녹아 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히 강조하는 점은 중장기 플랜에 따른 시즌 레퍼토리 시스템이다. 공연단체가 일정 시즌의 공연 일정을 미리 발표하는 것이다.

3년 임기의 그는 "1년에 작은 것 포함해서 8개 정도를 생각하는데 3년이면 24개다. 작품의 성격을 안배해야 한다"고 짚었다. "아무리 좋은 오페라라고 하더라도 적재적소에 맞는 것이 필요하다. 24개를 100%라고 한다면 33%씩 스타일을 세 개로 나눌 계획이다."

우선 뮤지컬 '라이언 킹' 같은 작품이다. "오페라를 몰라도 볼 수 있는 작품들 말이다.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가 예다. 두번째는 체코 오페라 '루살카'다. 내년 5월에 할 예정인데 장르적으로는 현대 오페라지만 실제로는 낭만적이다. 체코의 '물의 요정' 이야기인데 신데렐라 같다. 배경이 예쁜 호수이고 드보르작의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센 작품들이다. 바그너의 작품들, '파르지팔'이나 '니벨룽의 반지', "12음계법을 사용한 현대음악 오페라도 할 수 있다. 약처방이 여러가지 있듯이 오페라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플랜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페파노 포다 같은 엄청난 지휘자를 섭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섭외를 하더라로 돈이 더블이 되지 뉴욕 메트로폴리단 오페라단 수준으로 물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보자는 거다."

또 다른 이유는 시스템을 해외와 맞추기 위해서다. "외국은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 봄에 끝난다. 봄에서 시작해 가을로 끝나는 현재 콘셉트로 하면 대화가 안 된다. 거기서부터 색안경을 끼고 협업이나 페스티벌 초청이 불가능해진다. 두 가지 이유에서 시즌제를 가져가겠다고 하는 거다. 내 판단에는 뜬구름을 잡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 레퍼토리 시스템을 정착하고 리프로덕션을 하면 무대 제작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있다. "1년에 3개 정도는 레퍼토리화하고 최소 3년간 무대를 보관한 다음 그것으로 지역을 돌자는 얘기다."

창고를 늘리는 현실적인 문제의 개선도 생각하고 있다. "현재 700평짜리 2개, 350평짜리 한 가 있는데 350평짜리를 넓히고 창고를 더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을 합친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돌았으나 김 단장은 "내가 아는 바로는 없고, 그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알렸다.

국립오페라단이 극장을 가지고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되는 측면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다. 우선 가능한 것들을 실천하고 싶다. 극장이 있다고 대수는 아니다. 극장이 있다는 건 1년을 채워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1년을 채울 수 있는 청중이 있어야 한다. 과연 한국 오페라 신에 이 만큼의 청중이 현실적으로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찍고 싶다. 그래서 잠재 청중, 현실 청중을 개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진주조개잡이' 프레스리허설 때 중고등학생을 채운 것이 예다. 이 친구들이 10년만 지나면 오페라 팬이 된다. 어릴 때의 경험, 추억으로 다시 오페라하우스에 찾아오는 거다."

자격 시비 끝에 취임 53일 만에 물러난 한예진 전 단장 자진 사퇴 이후 4개월째 공석이던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지난 7월 임명된 김 단장은 전날 막을 내린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로 상쾌하게 출발했다.

'카르멘'으로 유명한 비제의 초기작인 '진주조개잡이'는 이번에 국립오페라단 2015~16 시즌 개막작으로 전막 초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가창 등의 고난도로 그간 국내 공연이 힘들었다. 예전부터 기획된 작품이지만 김 단장의 손길이 묻어날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김 단장은 창작 오페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것을 가져와 무대에 올리려고 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같은 큰 극장보다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규모로 줄여서 봄에 한편, 가을에 한편 정도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립오페라단이 예전에 개발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기능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넘어갔다. 우리가 다시 해서 국고 낭비할 필요가 없다."

'꼭 무대에 정통 오페라만 올려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한다. "뉴욕시립오페단은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엔드 스토리'도 공연한다. 번스타인이 만든 (코믹한) 대중적인 오페라 '캔디드'도 공연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괜찮은 오페라단들은 음악성과 작품성이 있는 뮤지컬을 오페라로 올리고 있다."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대표적이다. "뮤지컬이 상업화의 길을 걸으나 손드하임만큼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곡가다. 이런 분의 뮤지컬을 오페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시티오페라단은 이미 손드하임의 작품인 '스위니 토드'를 올렸다. 이런 작품을 뮤지컬배우가 아닌 정말 제대로 된 성악가들이 한다면 끝내주는 작품이 나올 것이다. 당장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두를 위한 오페라, 모두를 위한 국립오페라단'이라는 기치를 내건 김 단장은 예전 단장과 일부 오페라계가 빚은 갈등을 직접적으로 의식해서 설정한 건 아니라고 잘라말했다. "내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내 성격이 모나지를 못하다. 엄격하지 못하다. 원만하게 상생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키워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역, 어떤 직종, 각각의 이해관계를 아우르고 싶다.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분들부터 오페라를 잘 모르는 분들도 다 포용하고 싶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민간 오페라단, 지역 예술 단체, 크게 보자면 외국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 간의 상생도 생각할 수 있다."

최근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행정에 특화돼 있던 것과 달리 오페라 연출가인 김 단장은 예술감독으로서 역할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예술적인 차원에서는 도약을 키워드로 삼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우리의 오페라를 외국에 가져가야 한다.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네트워킹, 동영상물도 중요하다. 특히 DVD를 직원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오페라단이 되기 위해서는 DVD가 중요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물론 공연이 중요하지만 공연만 한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김 단장은 말잔치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페라 하우스를 갖겠다' '세계 10대 오페라단으로 성장할 기틀을 다지겠다' 등의 거창한 말들을 나열하기 싫다"는 자세다. "농부의 마음으로 우선 현실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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