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붉게 물들인 피아니스트의 열정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5.10.19 00:01

브론프만, 지난주 손가락 부상
"관객 실망시킬 수 없었다" 피 흘리며 앙코르 연주까지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
상아로 뒤덮여 하얗게 빛나야 할 피아노 건반 곳곳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다. 검은 건반은 물론이고 나무 바닥에도 핏방울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 사진 제목은 '피 묻은 피아노'. 지난 13일(현지 시각) 저녁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 리스 왓킨스가 촬영해 SNS에 올린 사진이다.

다음 날 LSO 관계자가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사연은 이렇다.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Bronfman·57·사진)은 오스트리아 빈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LSO와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주회 당일 아침 손가락을 베어 치료를 받았다. 상처가 깊어 연주를 취소하려 했지만 브론프만은 관객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했다. 브론프만은 도중에 상처가 벌어져 피를 흘렸지만 의연하게 연주를 마쳤다. 멋진 앙코르까지 들려줬다.

예핌 브론프만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 도중 다친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와 건반이 붉게 물들었다.
예핌 브론프만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연주 도중 다친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와 건반이 붉게 물들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페이스북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태어나 1973년 이스라엘로 이주한 브론프만은 당당한 체구만큼 대곡에 강점이 있는 피아니스트다. 사이먼 래틀, 마리스 얀손스,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이 앞다퉈 찾는 협연자다.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은 2번보다는 점잖은 곡이지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비하면 손가락에 자극이 많이 간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연주는 관객과의 약속이므로 브론프만은 그 생각만으로 마취라도 된 듯 정신이 홀린 채 피아노를 쳤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