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박인환, 뮤지컬판 국제시장…'서울 1983'

  • 뉴시스

입력 : 2015.10.16 11:24

나문희(74)와 박인환(70), 두 배우의 존재 만으로도 충분했다.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은 1950년 6·25동란 전장, 최근 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1983년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산의 아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한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강인한 어머니 '돌산댁' 역의 나문희가 30여년 만에 만난 남편을 향해 "야속해서 안쓰러워서…"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포로로 북으로 끌려가며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한 남편 '양백천'을 연기하는 박인환은 "말 안 해도 다 알아. 말을 하면 그 마음이 달아날 것 같으니 이대로 있자"며 무심하지만 애정어린 말로 응답했다.

둘이 합쳐 연기경력이 100년이 넘으니 당연한 내공이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며 노년의 '솔 메이트'로 통하는 나문희와 박인환이 무대 위에서 처음 만난다. 광복 70년·분단 70년을 맞아 그간 살아온 우리 이야기를 담아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뮤지컬 '서울 1983'을 통해서다. 김태수의 희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원작이다. 작곡가 송시현이 곡을 만들고 김덕남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이 연출한다.

1988년 코믹 잔혹 영화 '조용한 가족'에서 큰소리 치지만 실속없는 아버지와 가족 뒷바라지에 잔소리만 하는 어머니로 부부를 연기한 두 사람은 이번에도 남편과 아내다. 이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을 거슬러 찾아보면, 1990년 MBC TV 드라마 '몽실이'다. 박인환은 "하도 오래 돼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후 2008년 KBS 2TV '내 사랑 금지옥엽', 2012년 MBC TV '아들 녀석들' 등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는 노년의 연인이었다. 뿐만 아니다. 2006년 KBS 2TV '소문난 칠공주'에서는 장모와 사위 사이였으며 2011년 KBS 2TV '사랑을 믿어요'에서는 심지어 어머니와 아들 관계였다.

박인환은 "나문희 선배의 연기 폭이 넓어서 어머니 역도 했다가, 장모 역도 했다가, 부인 역도 했다가 한다"며 웃었다. "여러 쓰임새가 많은 연기자라 흔치 않은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무엇보다 이번 호흡이 가장 애절한다는 건 분명하다. 나문희는 "박인환이 (상대역으로) 알맞다"며 흡족해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뮤지컬 '서울 1983'은 다큐 같다. 다른 작품에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느끼는 감정보다는 살아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박인환씨가 극중 남편이니 더 믿어도 된다."

작품이 그리는 시대와 함께 숨을 쉬어온 만큼 극중 인물과 상황에 공감한다. 나문희는 "내 나라의 장한 어머니다. 지금도 장한 어머니가 많다. 이번에 잘 해보겠다"고 말했다. "극의 끝 부분인 이산가족 방송 장면에서는 감정을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한 가득이다. 뮤지컬이 사람한테 이처럼 많은 감동을 주는지는 미처 몰랐다."

박인환도 "당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장기적으로 할 프로가 아니었는데 몇 달을 했다. 이산가족이 그 만큼 많았다는 것"이라며 "이제 곧 이산가족이 만나는 걸로 아는데 시의적절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무대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현장성이 중요하다. 영화나 그림은 보관이 되지만 무대는 그렇지 않으니. 우리의 아픈 이야기다."

나문희는 바쁜 드라마·영화 촬영 스케줄 속에서도 무대를 놓지 않았다. 연극 '잘자요 엄마' '황금연못', 뮤지컬 '친정엄마'로 무대 위에서 엄마를 형상화했다. 박인환 역시 연극 '토스카 인 서울' '침향', 뮤지컬 '비내리는 고모령' 등으로 무대를 지켜왔다. 하지만 '서울 1983'은 엄연히 뮤지컬. 노년의 두 배우가 노래를 소화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을 법하다.

나문희는 "처음에 대본을 한 번 봤을 때는 바로 한다고 했는데 다시 보니 자신이 없어서 못 한다고 했다. 그런데 김덕남 연출이 '내가 아니면 접는다'고 협박을 해서…. (웃음) 그래서 했는데 송시현 작곡가가 곡을 가져왔는데 처음에는 입도 못 뗐다"고 고백했다.

"내게 익숙한 노래인 줄 알았다. (한국적 가락들의 노래들이 많아) 서양식 노래였으면 더 쉬웠을 텐데. '죽음'하고 싸우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음악을 하는데 가르쳐 달라고 하니 큰 아이가 자신도 연주가 있다며 봐주지 못한다고 했다. 20일 동안 혼자 연습한 뒤 아이의 연주가 끝나고 도와주고 있다. 나 때문에 (음악감독이) 연출에게 야단을 맞아서 눈치도 보이고."

김 연출이 "연극성을 봐주고 음악은 애정으로 들어달라"고 하자 나문희는 "섭섭"해 했다. "뮤지컬은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며 "이미 포스터가 다 붙어 있는데, 그럴 순 없다. 끝까지 죽음하고 싸우겠다"고 별렀다.

극의 처음과 끝 부분을 장식하는 박인환은 "상대적으로 나는 신(scene)도 없고 노래도 없어서 갈등이 생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이 좋으니 무대에 선다는 생각만 해도 설렌다"며 즐거워했다. "수십년 동안 연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똑같은 마음이 아니냐는 말씀도 하는데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상황이고 새로운 대사로 해야 해서 설렌다. 젊은 친구들이 고생인데, 다들 고생한 만큼 좋은 공연이 됐으면 한다."

김 연출은 "우리 작품 보고 시니어 뮤지컬이라고도 하는데 뮤지컬이 마치 20~30대 젊은이들의 고유 문화처럼 돼 있는 실정이라서 나머지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돌산댁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의 뮤지컬배우는 없어서 연기 전공자들 중에서 나문희 선생님을 생각했다"며 "선생님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분으로는, 연륜이 있는 분이 하지 않으면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박인환 선생님을 택했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영화 '국제시장'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이 신파라는 지적도 있다. "'국제시장'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할 뿐이지, 젊은이들이 관심 없어 하는 이야기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용기가 있다"고 답했다.

국내 최초 뮤지컬 단체인 서울뮤지컬단과 김광석이 부른 곡들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로 흥행에 성공한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다. 공연티켓 2매를 예매하면 그 중 1매를 무료로 지원하는 '공연티켓 1+1 지원사업'으로도 선정돼 7만원 이하짜리 티켓을 사면 한 장 더 준다.

30일부터 11월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곽은태, 왕은숙, 권명현, 주성중, 오성림, 원유석, 임승연, 김수영. 음악감독 이종오, 안무 김경엽, 무대디자인 정성주, 조명디자인 민경수. 러닝타임 120분. 7만~15만원. 세종문화회관 인포샵 02-399-1000·인터파크 티켓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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