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13 03:00
[91세 현역 화가 문학진 개인전]
70년대부터 시대별 작품 한눈에
"작가마다 다른 감성과 스타일… 그들의 작품이 내겐 스승이죠"

올해 91세인 화가 문학진은 어렸을 적 친척집 책상에 놓여 있던 항아리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정말 아름다웠지요." 그가 생각하는 미술은 '이 아름다움과 감동을 퍼올리는 도구'였다. "그림을 통해 감동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죠. 그래서 붓을 놓지 못하고 평생 작업해 왔고요."12일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문씨는 '침묵 화가'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쉬고 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조수 없이 모든 작업을 혼자서 했다. "조수를 두면 나만이 가진 느낌을 낼 수 없으니까요."
한국 미술 교육 1세대 작가인 그가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31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13년 만의 개인전으로 1970년대부터 2013년까지의 회화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압형토기가 있는 정물' '탁상 옆의 소녀' '두 개의 의자가 있는 정물' '기타와 푸른 자기' 등의 제목을 단 문씨의 작품에는 정물과 사람 형상이 주로 등장한다.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그의 정물화는 단순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대상을 눈앞에 보듯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대상에 가까운 형태를 상상해 그린다. 정물의 묘사보단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는 구성을 화면에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도 이후엔 캔버스 위에 종이를 붙이는 콜라주 작품을 주로 했다. "기존 그림 위에 종이를 붙이고 파스텔 가루를 뿌리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미감(美感)을 찾아냈지요. 형태를 변화시키고 다양하게 배치해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해봤습니다."이번 전시에선 시대별 작품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이프를 사용해 다소 거친 질감으로 이루어진 작품과 번지듯 표현한 70년대 정물은 시간이 흘러가며 조금 더 추상적이고 각진 형태로 변형된다. 무채색 사이로 듬성듬성 칠해진 노랑·빨강 등의 원색은 그림에 깊이감을 더한다.
1953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는 "실기시험을 볼 때 이젤이 없어 의자에 화판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렸다"며 "김환기(1913~1974) 선생에게 지도를 받았으니 은연중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수근(1914~1965) 화백과는 우리나라 첫 화랑인 반도화랑에서 같이 작품을 진열하며 인연을 맺었다. 문씨는 "작품을 평가하진 않았지만 우리 둘 다 서로의 그림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화가로서의 업(業)을 '감사함'이라고 정의했다. "이제는 더 바랄 게 없어요. 작품에 담긴 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좋습니다." (02)2287-3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