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는 호텔, 백남준은 은행, 제프 쿤스는 백화점에 있네?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5.10.13 03:00 | 수정 : 2015.10.13 09:41

[공짜로 만나는 일상 속 명작]

이우환의 그림은 회사 로비에… 수억원대 작품들 무료로 공개
"돈 주고도 보기 어려운 秀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

미술 애호가인 박길성 고려대 대학원장은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약속이 있을 때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다. 짬을 내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양옆에 걸려 있는 수화 김환기 화백의 그림 '메아리' 시리즈(1965) 두 점을 보기 위해서다. "김환기 선생의 청아한 청색을 보면 마음이 절로 평안해집니다. 공짜로 이런 명화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김환기 화백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작가다. 지난 5일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 '19-Ⅶ-71 #209'(1971)가 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돼 한국 경매 사상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 그런 그의 그림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호텔 로비에 떡하니 걸려 있다.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웨스틴조선호텔에 걸린 그림은 김환기 그림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며 "13억~15억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명화"라고 했다.

호텔 로비, 백화점 매장, 은행 입구….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 공간이 알고 보면 미술관에서 돈 주고도 보기 어려운 명작(名作)들의 전시장이다.

김환기, 이우환, 백남준…곳곳에 한국 거장 작품

'미디어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도 미술관 밖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1층에는 294개의 모니터로 만든 그의 TV 조각 '철이철철'(1995)이 있다. 국내 소장 백남준 작품 중 관리가 잘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로비에도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East Gate'(1995년)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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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전시된 제프 쿤스의 ‘Sacred Heart(성심)’(400억~600억원대). ②산업은행 서울 여의도 본점에 있는 백남준의 ‘East Gate’(20억~30억원대). ③대륭서초타워에 걸려있는 이우환의‘조응’(300호, 3억~3억5000만원). ④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김환기의 ‘메아리’ 시리즈. 13억~15억원대로 추정된다. /신세계갤러리·갤러리현대 제공, 김지호 기자

'모노하(物派)의 창시자'로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인 이우환의 작품은 포스코센터 2층(조각 '관계항')과 강남대로에 있는 대륭서초타워 로비(회화 작품 '조응' 대작)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본관 1층 입구 왼쪽엔 쇼핑객들 옆으로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인 유영국의 '무제'(1973)가 조용히 걸려 있다.

◇신세계백화점 6층 정원은 '예술 천국'

해외 유명 예술가들의 컬렉션도 공짜로 만날 수 있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1층 입구엔 검은 양복 주머니에 흰 손수건을 꽂은 형태로 만든 클래스 올덴버그의 '건축가의 손수건'(1999)이 있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청계천의 상징인 소라 모형 조형물 '스프링'을 만든 작가다. 이 백화점 본관 6층 정원은 숨겨진 '예술 천국'이다. 가장 비싼 현대미술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제프 쿤스의 'Sacred Heart(성심)'를 비롯해 알렉산더 칼더(버섯, 1963), 호안 미로(인물, 1974) 등 내로라하는 작가의 조각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한남대로 옆 일신빌딩 1층엔 개념미술 대가 베르나르 브네의 철 조각 '세 개의 비결정적인 선들'(1993)이 있다. 제주 신라호텔 6층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흘러내리는 듯한 여체 형상으로 만든 조각 'Space Venus'(1988)가 있다.

배병우, 도윤희…중견 작가 대작도

최근 광화문에 문을 연 포시즌스호텔 서울은 로비에 김종구의 높이 6m65㎝ 대형 '쇳가루 산수화'를, 3층엔 도윤희의 대형 회화(가로 3m, 세로 4m) '눈이 나린다 빛이 부서져 내린다'를 내걸었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로비엔 '소나무 작가'로 유명한 사진가 배병우의 '소나무'(높이 4.6m, 폭 2.7m) 사진이 걸려 있다. 건물의 품격을 높이면서 누구나 문턱 없이 반기는 미술의 풍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