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거친 뒷골목 힙합? 찡한 '달동네 드라마'

  • 유석재 기자
  • 김윤덕 기자
  • 권승준 기자

입력 : 2015.10.06 02:55

-힙합 뮤지컬 '인 더 하이츠'
SM이 제작한 두 번째 작품
역동적 群舞+소박한 스토리… 랩·힙합, 한국적으로 풀어내
10대부터 70대까지 사로잡아

뮤지컬 '인 더 하이츠'
70대 부부가 극장을 나서면서 말했다. "허 참, 재미있네."

이 무슨 소린가? 다음 달 22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처음부터 끝까지 랩과 힙합으로 도배된 작품이다. 젊은 층엔 위세를 떨칠지 모르지만 중장년에겐 외계어와도 같은 장르다. 게다가 미국 뉴욕의 중남미 이민자 주거 지역(워싱턴 하이츠)이 배경이다. 한데 재미있다?

올해 뮤지컬 시장에서 보기 드문 대형 신작(新作)인 이 작품은 관객층이 폭넓다. 열쇠는 이 뮤지컬이 매우 '한국적'이라는 데 있다. 역동적인 군무(群舞)와 화려한 하모니가 소박하고 단순한 줄거리와 만난 희한한 조합이다. 식료품점 주인, 택시 회사 사장, 미용실 원장 같은 친근한 동네 주민들이 등장한다. 학비 부담 때문에 명문대를 자퇴하려는 딸내미와 전기세도 못 낼 만큼 지독한 가난이 싫어 동네를 뜨려는 미용실 여직원이 나온다. 방황하는 이들의 중심에서 멘토 역할을 하던 할머니가 복권에 당첨되는 경사를 맞은 직후 돌연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는다.

1990년대 '서울의 달' '파랑새는 없다' 같은 친근한 달동네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끝으로 가면 효(孝)의 가치와 가족의 복원이 극의 묵직한 주제가 된다. 건전하다 못해 밋밋한 드라마를 건져올린 건 춤과 노래다. 10대와 20대는 물론, 힙합이나 스트리트 댄스가 익숙지 않을 40대, 아니 70대도 심신을 벌떡 일으킬 만큼 흥겹고 다이내믹하다. 아이스크림 장수 역을 맡은 단역배우조차 '복면가왕'에 나와도 되겠다 싶을 만큼 노래 실력 뛰어나니 말 다 했다. 라틴 리듬을 연주하는 브라스와 퍼커션의 조화는 합이 착착 맞는 탱고 댄서를 보는 듯했다. 폭동의 밤이 지난 후 미용실 주인 다니엘라가 선창하는 '카니발 델 바리오'는 절망 속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는 라틴 특유의 정서가 잘 녹아 있고, 복권에 당첨되면 뭘 할 것인지 서로에게 소망을 묻는 합창곡 '9만6000달러'는 신명난 힙합 리듬이 압권이다. 마지막 랩 가사는 가슴을 파고든다. "나의 꿈 나의 아침은 다시 열릴 거야/ 이곳 내가 선 이곳/ 아임 홈(I'm home)"에 이르면,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랩과 힙합, 스트리트 댄스가 등장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인 더 하이츠’는 흥겹고 역동적인 춤과 노래로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사로잡는 작품이다.
랩과 힙합, 스트리트 댄스가 등장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인 더 하이츠’는 흥겹고 역동적인 춤과 노래로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사로잡는 작품이다. /에스엠컬처앤콘텐츠 제공
힙합 마니아라면 불평할 구석도 적지 않다. 정통 힙합이 아니라 라틴 음악을 기본으로 뮤지컬에 맞게 변형시킨 탓이다. 배우들이 노래 대신 랩을 하기 때문에 힙합 뮤지컬이라고 한다면 '눈·코·입 수가 장동건과 같기 때문에 그와 닮았다'고 하는 격이다. 몇몇 부분에선 랩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중국어·일본어 자막 서비스가 동시에 이뤄지는 덕분에 오히려 외국인 관객이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초등학생부터 볼 수 있는 공연인데 욕설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불편하다. 주인공 우스나비 역의 양동근은 여러 장면에서 능란한 랩을 소화했지만 유명도에 비해 극의 비중이 약했다.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다니엘라 역을 맡은 최혁주였다. '꽃신' '쿠거' 같은 전작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라틴 정서를 한국식 능청과 넉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콧바람 잔뜩 넣은 목소리로 "뀍끌리뀍끌리(빨리빨리)"라고 외칠 때마다 객석에선 연신 웃음이 터졌다.

★공연 담당 기자(유석재) 포인트!

K팝 스타들을 거느린 아이돌 제국(帝國) SM의 두 번째 작품이다. 지난해 첫 작품 '싱잉 인 더 레인'이 아이돌과 1950년대 정서의 어색한 결합으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던 데 비하면,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이번엔 엑소의 첸, 인피니트의 장동우·김성규, 샤이니의 키, 에프엑스의 루나가 돌아가며 출연한다. 어느 분야든지 자기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