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뮤지컬? 한국 여성의 일생 담겨있죠"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9.16 23:54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여주인공 최우리·최유하]

"뇌쇄적 여인·치매 걸린 엄마 등 多役에 자아분열 생길 것 같지만 이런 연기 언제 또 해보겠어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채 망연한 표정으로 묻는다. "제가 아이를 낳은 적은 있었나요?" 아버지가 대답한다. "있었지요. 한 놈은 착하고 바지런하고, 한 놈은 영특하고 총명하고…." "아이고… 예…." 이 장면에서 객석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늘 속만 썩이던 말썽쟁이 아들들도 부모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자식들이었다는 스토리가 꼭 자기 얘기처럼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장유정 작·연출)에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2막 장면에 대해 얘기하자, 더블 캐스트로 이 역할을 맡은 배우 최유하(34)와 최우리(33)의 눈이 금세 촉촉해졌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한국 여인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무대 위에서 온갖 감정 연기를 해야 하죠."(최유하) "화장 지우고 속눈썹 뗀 민얼굴로 나와야 해요. 하지만 정말 출연하길 잘했어요."(최우리)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최우리(왼쪽)와 최유하.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최우리(왼쪽)와 최유하. /고운호 객원기자
숱한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형제는 용감했다'는 효(孝)와 유교 전통을 소재로 삼은 희귀한 뮤지컬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안동에 내려온 불효자 주봉·석봉 형제가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줄거리지만, 다채롭게 펼쳐지는 노래와 군무, 탄탄한 극 구성과 곳곳에 숨겨 놓은 유머 코드가 잠시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최유하와 최우리는 모두 데뷔 10년을 넘긴 뮤지컬 배우다. 최유하는 최근 '블러드 브라더스' '킹키부츠'에 이어 '난쟁이들'의 엉뚱한 백설공주 역으로 주목을 받았고, '헤드윅'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나온 최우리는 올해 셰익스피어 연극 '페리클레스'로 새로운 도전을 했다. 두 남성 주인공이 나오는 '형제는 용감했다'의 여주인공은 이들로선 좀 손해 보는 역할이 아닐까.

"절대 아니에요. 작품을 보면 아실 거예요." 1막에선 정체불명의 여성 '오로라' 역을 맡아 야한 포즈로 보사노바 풍의 노래를 부르다가도, 2막에선 어머니 역을 맡아 20대부터 노년까지 폭넓은 연기를 해야 한다. 극 시작 직후엔 동네 아낙으로 군무를 추고, 청소부 아주머니로 한 장면 나온 뒤엔 2층으로 올라가 귀신이 돼야 한다. 에너지 소모가 엄청날 뿐 아니라 자아분열증이 생길 것 같지만 이들은 "언제 또 이런 역을 해 보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최우리는 "어머니 연기를 위해 치매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다"고 했고, 최유하는 "남편을 남겨두고 저승으로 떠나는 장면이 너무 애달프고 힘들다"고 했다. 실제 부모님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펑펑 울고 난 뒤엔 꼭 부모님께 전화를 해요. 저녁에 2시간 넘게 얘기한 적도 있어요."(최우리) "사실 어머니가 제 작품 잘 안 보시는데…. 이건 꼭 오셔서 보셨으면 좋겠어요."(최유하)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11월 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시간 140분, 1666-8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