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15 09:46

"조각 전공했지만 시인을 동경한" 설치미술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2015'작가선정
15일부터 서울관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전
【서울=뉴시스】박현주기자=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이 가을에 갈아입은 시구절이다. 미국 '생태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바람’에서 가져온 문장으로, 읽는 것 만으로 도시인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조각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시인을 동경해왔다"는 미술가가 있다. 그가 이 가을,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을 관객과 함께 하기위해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작가로 선정된 설치미술가 안규철(55·한예종 미술원)교수다.
전시 타이틀도 동경하던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마종기 시인의 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제목으로 오는 1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펼친다.
14일 서울관에서 만난 작가는 미술가보다 지식인, 철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시인들이 종이와 연필 한 자루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내게 경이로운 일이었다"
작품을 설명하기 앞서 그는 시인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조각은 왜 저런 상태가 되지 못할까"가 의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조각은 시와는 달리 돌과 쇠와 망치, 끌이라는 물리적인 흔적을 새겨넣거나 쌓아올리는 일"이라며 "세상을 가리키는 기호만을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시와 다르게 조각은 물질을 통해서만 그것의 무게와 저항을 제어하는 땀과 노동을 통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각가들은 작품으로 말하고 그러기 위해서 침묵해야 한다"지만 그는 달랐다. 말을 하고 글을 많이 썼다.
"노동보다는 개념을 앞세우는 것,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각의 물질의 무게를 덜어내고 물질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견고하고 오래가는 재료보다는 깊이있는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믿어왔다.
덕분에 미술계에서 '자유로운 작가', 또 다른 한편으론 '이단자'가 됐지만 이번 전시는 또 그 덕분에 더 확장됐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가장 소박한 재료로 가장 미니멀한 작업을 해왔던 내가 가장 큰 공간과 가장 큰 제작지원을 제공하는 전시로 무엇을 할 것인가" 궁금했을 것이라며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결국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
그는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금 이곳에 무엇이 없는지를 드러내고 부재하는 것의 이름을 불러보려고 한다"면서 "파편처럼 흩어진 개인들이 어디서 무엇으로 만날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사라진 것, 머무는 것, 또는 미래에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상상의 여정을 그려보았다"는 그는 "동시에 이 제목은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생각을 대비시키는 의미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선보인 작품들은 미술의 경계를 넘어섰다. 문학 건축 음악 영상 퍼포먼스, 그리고 출판까지 총괄하는 모양새다.
"관객을 매혹시키는 시각적 오브제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채워넣어야 하는 빈칸들이 더 많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냥 구경꺼리가 아니라 참가를 요구하고 질문에 응답할 것을 요구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전시장에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필경사의 방' 이 있다. 이미 1000명의 예약자가 대기 중으로 이 방안에서 책상에 앉아 1시간동안 주어진 책을 필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밀려나 버린, 손으로 글 쓰는 행위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를 모르는 익명의 개인들이 공동의 일에 침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작업이다. 필사본은 한정부수로 인쇄되어 참가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되는 일 까지가 작업의 마무리다.
작가는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일, 글을 쓰는 행위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궤적이 담긴 책을 필사를 하는 게 의미있겠다 싶었다"면서 "1000명이 참여해 각각 다른 삶과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 똑같은 글쓰기의 경험, 글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건 파편화된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는 접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글 쓰는 일'에 꽂힌 건, 작가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두가지 장면 때문이다.
아버지가 글을 쓰는 모습과 1985년 KBS이산가족찾기 방송이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항상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16절 갱지에 펜으로 옮겨적는 일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지방도시의 국립병원의 의사였다. 빌려온 의학서적을 통째로 배껴스는 일로 저녁을 보냈다. 등잔불 밑에서 펜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 작가는 " 글을 쓰는데 집중하는 그 모습이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서 온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했다.
또 이산가족찾기 방송에서 수많은 벽보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았다. 30년 후 그 장면은 작가의 '기억의 벽'으로 부활했다. 8600개의 못이 촘촘히 박혀있는 이 벽에는 관람객들이 단어를 써넣은 카드가 빼곡하게 걸리고, 카드로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카드가 걸리게 된다.
이날 전시를 둘러본 기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열린 개념있고 친화적인 전시"라는 평이 많았다.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의 위치에서 능동적인 참가자의 위치로, 작품의 공동창작자의 위치로 끌어들인 전시"다.
'생각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작가와 관객과 함께 이끌어가는 이 전시는 "조형적인 형태를 글로 대체하고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미술의 조건'을 질문한다.
어쩌면, 호기심과 '엿보기'의 심리까지 충족시키는 이 전시에 대해 작가는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타인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인용했다.
"글쓰는 사람 모습 속에는 누구든 어린 시절 글을 배울 때의 순수한 모습이 담겨있어요. 그것을 다시한번 바라보는 일,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그것이 미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는 2016년 2월 14일까지. 관람료 4000원. 02-3701-9500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2015'작가선정
15일부터 서울관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전
【서울=뉴시스】박현주기자=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이 가을에 갈아입은 시구절이다. 미국 '생태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바람’에서 가져온 문장으로, 읽는 것 만으로 도시인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조각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시인을 동경해왔다"는 미술가가 있다. 그가 이 가을,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을 관객과 함께 하기위해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작가로 선정된 설치미술가 안규철(55·한예종 미술원)교수다.
전시 타이틀도 동경하던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마종기 시인의 시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제목으로 오는 1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펼친다.
14일 서울관에서 만난 작가는 미술가보다 지식인, 철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시인들이 종이와 연필 한 자루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내게 경이로운 일이었다"
작품을 설명하기 앞서 그는 시인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조각은 왜 저런 상태가 되지 못할까"가 의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조각은 시와는 달리 돌과 쇠와 망치, 끌이라는 물리적인 흔적을 새겨넣거나 쌓아올리는 일"이라며 "세상을 가리키는 기호만을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시와 다르게 조각은 물질을 통해서만 그것의 무게와 저항을 제어하는 땀과 노동을 통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각가들은 작품으로 말하고 그러기 위해서 침묵해야 한다"지만 그는 달랐다. 말을 하고 글을 많이 썼다.
"노동보다는 개념을 앞세우는 것,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각의 물질의 무게를 덜어내고 물질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견고하고 오래가는 재료보다는 깊이있는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믿어왔다.
덕분에 미술계에서 '자유로운 작가', 또 다른 한편으론 '이단자'가 됐지만 이번 전시는 또 그 덕분에 더 확장됐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가장 소박한 재료로 가장 미니멀한 작업을 해왔던 내가 가장 큰 공간과 가장 큰 제작지원을 제공하는 전시로 무엇을 할 것인가" 궁금했을 것이라며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결국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
그는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금 이곳에 무엇이 없는지를 드러내고 부재하는 것의 이름을 불러보려고 한다"면서 "파편처럼 흩어진 개인들이 어디서 무엇으로 만날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사라진 것, 머무는 것, 또는 미래에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상상의 여정을 그려보았다"는 그는 "동시에 이 제목은 보이는 형태와 보이지 않는 생각을 대비시키는 의미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선보인 작품들은 미술의 경계를 넘어섰다. 문학 건축 음악 영상 퍼포먼스, 그리고 출판까지 총괄하는 모양새다.
"관객을 매혹시키는 시각적 오브제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채워넣어야 하는 빈칸들이 더 많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냥 구경꺼리가 아니라 참가를 요구하고 질문에 응답할 것을 요구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전시장에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필경사의 방' 이 있다. 이미 1000명의 예약자가 대기 중으로 이 방안에서 책상에 앉아 1시간동안 주어진 책을 필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밀려나 버린, 손으로 글 쓰는 행위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를 모르는 익명의 개인들이 공동의 일에 침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작업이다. 필사본은 한정부수로 인쇄되어 참가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되는 일 까지가 작업의 마무리다.
작가는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일, 글을 쓰는 행위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궤적이 담긴 책을 필사를 하는 게 의미있겠다 싶었다"면서 "1000명이 참여해 각각 다른 삶과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 똑같은 글쓰기의 경험, 글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건 파편화된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는 접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글 쓰는 일'에 꽂힌 건, 작가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두가지 장면 때문이다.
아버지가 글을 쓰는 모습과 1985년 KBS이산가족찾기 방송이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항상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16절 갱지에 펜으로 옮겨적는 일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지방도시의 국립병원의 의사였다. 빌려온 의학서적을 통째로 배껴스는 일로 저녁을 보냈다. 등잔불 밑에서 펜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 작가는 " 글을 쓰는데 집중하는 그 모습이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서 온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했다.
또 이산가족찾기 방송에서 수많은 벽보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았다. 30년 후 그 장면은 작가의 '기억의 벽'으로 부활했다. 8600개의 못이 촘촘히 박혀있는 이 벽에는 관람객들이 단어를 써넣은 카드가 빼곡하게 걸리고, 카드로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카드가 걸리게 된다.
이날 전시를 둘러본 기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열린 개념있고 친화적인 전시"라는 평이 많았다.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의 위치에서 능동적인 참가자의 위치로, 작품의 공동창작자의 위치로 끌어들인 전시"다.
'생각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작가와 관객과 함께 이끌어가는 이 전시는 "조형적인 형태를 글로 대체하고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미술의 조건'을 질문한다.
어쩌면, 호기심과 '엿보기'의 심리까지 충족시키는 이 전시에 대해 작가는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타인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를 인용했다.
"글쓰는 사람 모습 속에는 누구든 어린 시절 글을 배울 때의 순수한 모습이 담겨있어요. 그것을 다시한번 바라보는 일,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그것이 미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는 2016년 2월 14일까지. 관람료 4000원.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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