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대학로 연극 '라이어', 중국을 웃겼다

  • 뉴시스

입력 : 2015.09.14 09:50

지난 11일 찾은 중국 절강성 항저우 시 목마극장은 서울 대학로 극장의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코믹 연극 '라이어' 시리즈 1탄의 중국어 라이선스 버전인 '피앤즈'(篇子)를 보기 위해 약 280석 규모의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러닝타임 100분 간 시도 때도 없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18년 전 한국에서 라이선스 초연한 '라이어'는 시리즈 3탄까지 내며 대학로 최고 흥행 연극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극작가 겸 연출가 레이 쿠니의 작품이다. 쿠니에게 중국어 공연의 허락을 받은 뮤지컬서비스가 중국 라이선스 배급권을 맡아 지난 4일 현지에 첫 선을 보였다.

지금까지 450만명이 관람한 한국의 파파프로덕션 버전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다. 뮤지컬 '광화문연가2' '쌍화별곡' 등의 중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연출가 겸 프로듀서인 스펠뮤지컬컴퍼니 임영조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두 부인을 두고 정확한 스케줄에 맞춰 바쁘게 이중 생활을 하는 택시 운전사 '도민준'의 이야기다. 그의 완벽한 일상(?)은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리며 엇갈리기 시작한다. 두 아내에게 자신의 생활을 들킬 위험에 처하자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는다.

한류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주인공들 이름을 패러디해 주역 배우들의 이름을 작명한 중국 라이선스는 중국어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와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특히 거짓말을 다루다 보니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배우들의 대사도 인상적인데 한국 스태프와 현지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댄 번역과 각색은 언어유희의 맛도 있었다. 배우가 신문을 찢어 먹는 장면에서 다른 배우가 "바오즈 다 먹었냐"라고 말하는 장면이 예다. 만두(包子)의 발음 '바오즈(bāozi)', '신문(报纸)의 발음 '바오즈(baozhǐ)'가 비슷한 것을 감안한 셈이다.

'라이어' 공연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현지 공연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연은 항저우 서호 등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장예모 감독의 '인상(印象)' 시리즈 같은 대형 공연이나 정치적이고 무거운 연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젊은세대가 편하게 즐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한국의 90년대 쇼를 연상케하는 다양한 장르를 옴니버스 식으로 묶은 쇼가 한편에서는 주를 이룬다.

최근 한국 뮤지컬의 잇따른 현지 진출과 함께 뮤지컬서비스가 코믹 연극을 들고 현지를 공략하고 있는 이유다.

김 대표는 "중국의 연극 분위기는 철학적이고 무겁고 정치적"이라며 "중국의 젊은 세대를 비롯한 대중이 영화 보듯 연극을 대중적으로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현지 관객들은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생겼다는 점에 큰 호응을 보냈다. 이날 공연 도중 코믹한 장면에 마시던 물을 내뿜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본래 중국 관객은 공연 도중 객석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 등 관람 태도가 산만한 편인데, 이날은 집중도가 꽤 높았다.

회사원 멍 시앙(30) 씨는 "'라이어' 같은 공연은 처음 봤다"며 "중국에는 무거운 연극이 대부분이라 젊은 관객들이 편하게 즐길 만한 공연을 찾기가 힘든데, 재미있게 봤다. 이런 작품이 더 많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공연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국에는 이런 종류의 공연이 없는데 '라이어' 중국 라이선스 공연은 원작과 한국 공연 못지 않은 빠른 전개로 현지 관객들에게 어필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봤다.

원 교수는 또 현지 배우들의 익살과 에너지에도 주목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배우 위주로 한국 스태프와 현지 스태프가 오디션을 통해 뽑았는데, 임영조 연출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

그는 "중국 배우들도 예전보다 많이 성장한 것이 보인다"며 "재미가 있고 배우들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새로운 한류 공연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뮤지컬서비스는 '피앤즈'를 약 2개월 간 선보인 이후 '라이어' 시리즈 3탄 '튀어!'의 중국어 라이선스 판인 '콰이파오'(快炮)를 현지에서 공연한다. '콰이파오' 제작은 금해안문화발전고분유한공사와 함께 한다. 항저우를 비롯해 상하이, 장수성 창저우, 산둥성 지난 등지에 16개의 체인식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등 현지 문화예술 사업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기업이다. 중국 상하이 900석 규모인 양포시극원에서 오는 12월1일부터 2016년 1월31일까지 약 2개월간 관객을 맞는다. 이후 '라이어'의 상설 공연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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