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뮤지컬 스펙트럼을 넓혔다…'인더하이츠'

  • 뉴시스

입력 : 2015.09.07 09:47

뮤지컬 '인 더 하이츠' 라이선스 초연은 국내 뮤지컬 신의 스펙트럼을 넓혔다고 평가할 만 하다.

뮤지컬 팬일지라도 비교적 낯선 요소가 많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기존 뮤지컬에서 듣기 힘들었던 랩과 힙합, 레게, 라틴 팝, 쿠바 리듬 등이 흘러나오고, 여기에 힙합·스트리트 댄스가 더해진다.

이 조합이 기존 뮤지컬에서 느끼지 못한 쾌감과 신선함을 안긴다.

'인더하이츠'의 이런 역동적인 에너지를 상징하는 대표적 넘버는 우스나비와 컴퍼니가 다 함께 부르는 1막의 첫 곡 '인 더 하이츠'와 역시 1막 중반부와 커튼콜 때 등장하는 '9만6000달러'다.

컷을 나누지 않고 찍는 영화의 '롱테이크'가 연상될 정도로 10여 분 동안 장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 더 하이츠'는 초반부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5일 오후 2시 공연에서 우스나비를 맡은 양동근의 능청스런 랩이 일품이었다. 극의 배경인 뉴욕의 '라틴 할렘'이라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와 그 속에 사는 인물들의 성격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명장면이다.

우스나비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누군가 사간 로또가 9만6000달러(약 1억원)에 담청된 사실을 안 뒤 우스나비를 비롯한 주요 배역들이 1억원이 생기면 자신이 무엇을 할 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는 넘버인 9만6000달러는 '라틴 펑키'로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루브가 인상적이다.

이처럼 신나는 넘버라고 하더라도 기존 록 이나 팝 위주 작품과는 다른 색깔로 개성있는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지나 연출이 지난달 연습실 공개에서 언급한 말을 빌려오면 "젊은 세대가 직접 접하고 체감한 '살아 있는 대중 장르'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녀 말마따나 뮤지컬에 새로운 대중문화가 들어온 셈이다.

워싱턴 하이츠에 이민 온 라틴 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린 뮤지컬이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다. 긍정적인 유머와 흥겨운 음악이 넘쳐 흐른다. 원작엔 라틴 이주민들이 정착하기까지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연출은 앞서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이를 최대한 배제하겠다고 했다.

현실은 비루하고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라틴과 이민자 문화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 간간이 비속어와 성적 농담이 튀어 나온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성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페인어 원어 대사가 많아 배우들이 스페인어를 교육받아야 했다. 한류 스타들이 많이 출연하는 만큼 중국어, 일본어 자막도 나오는데 이 때는 스페인어가 자연스럽게 해석돼 소개된다. 오히려 한국 관객들이 낯선 스페인어를 원어 그대로 들어야 하는데 큰 이질감은 없다.

랩이 수시로 등장해 가사와 대사에도 운율이 있다. 우스나비 역을 맡은 '샤이니'의 키가 "본래 영어로 된 가사를 한국말로 옮기고 거기에 맞는 운율을 찾고 짜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을 정도로 작업 자체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비속어를 섞은 "부쳐, 고쳐, 빡쳐" "쩔어, 뛰어" 등의 운율은 리듬을 타게 만든다.

배우 겸 래퍼 양동근이 종종 랩을 통한 내레이터 역도 겸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못대 집으로 돌아오는 '니나' 역의 김보경은 주로 고전적인 뮤지컬에 출연해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현대물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한다.

니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콜택시 회사에서 일하며 니나와 사랑에 빠지는 '베니' 역을 맡은 서경수는 요즘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배우답게 배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하이츠 밖의 세상을 동경하며 모든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미용사 '바네사' 역의 제이민이 리허설에서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 '잭 더 리퍼'와 '삼총사' 등에 출연한 제이민은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 섹시함과 귀여움을 오가는 매력으로 뮤지컬배우로서 입지를 굳힐 태세다.

'인더하이츠'는 이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에스엠컬쳐앤컨텐츠(SM C&C)가 제작해 눈길을 끈다. SM C&C는 지난해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으로 뮤지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싱잉인더레인'으로는 그다지 좋은 평을 얻진 못했다. 하지만 '인더하이츠'는 SM이 잘할 수 있는 종류의 뮤지컬이다. 물론 대중성이 강한 작품은 아니지만 SM이라서 제작이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랩, 힙합, 스트리트 댄스 등은 아이돌에 최적화된 장르로 SM은 이 작품에서 자사 소속 아이돌을 대거 캐스팅했다.

기존 대형 뮤지컬의 성공공식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작품을 골랐다는 점에서 평가해 줄만 하다. 이지나 연출도 "가요계, 공연계가 협연하며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게 이 작품의 의의"라고 짚었다.

뮤지컬계의 대모로 통하는 이지나 연출을 택한 것도 균형을 맞추는데 한몫했다. 힙합 문화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다듬으면서도 라틴 문화권의 본질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이런 작품이 얼만큼 흥행할지 뮤지컬계가 주목하고 있다. 스트리트 댄스와 랩이 무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안무가 채현원과 김재덕이 안무감독으로 나서고 레이블 '뜨레스레코드'의 수석 프로듀서 래퍼 나무가 랩 트레이너로 나서는 점도 새롭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간 공연하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뒤 그 해 '62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작곡·작사상, 안무상, 오케스트라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2009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을 받았다.

11월22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우스나비 양동근·정원영·키·장동우, 니나 김보경·루나, 베니 서경수·김성규·첸, 바네사 오소연·제이민. 음악감독 원미솔, 무대디자인 박동우, 조명디자인 구윤영, 음향디자인 권도경. 주최·주관 SM C&C, 제작 이승진 프러덕션. 7만~13만원. 오픈리뷰 1588-5212

뮤지컬 신의 장르·내용 지평 넓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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