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이 순간] 연극 '아버지와 아들'

  • 뉴시스

입력 : 2015.09.04 09:50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신작 연극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두 차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는 대사가 등장한다.

아들을 마냥 자랑스러워하는 보통 시골 아버지인 '바실리'는 똑똑한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 아들 '바자로프'가 먼저 죽자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한다.

농지경영엔 속수무책이지만 아들 세대를 이해하려는 아버지 '니꼴라이'는 쇠락해가는 귀족 계급의 마지막 후계자로 바자로프의 자유로운 사상에 감명 받아 그의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아들 '아르까디'와 같은 날, 한번에 결혼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멋쩍어하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19세기 러시아 사회가 겪고 있던 세대간 갈등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은 '아일랜드의 체홉'으로 이름난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의 손끝에서 '이 순간'을 부각시키는 희곡으로 재탄생했다. 당시 사회 정치적 현실과 당대 지식인들의 이념 논쟁을 약화시키는 대신 세대간의 갈등과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힘을 실어 결국 '이치에 맞게끔' 솜씨를 부린다.

이성열 연출의 지적처럼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신흥자본가 '안나'와 사랑에 빠진 바자로프가 죽어야만 모든 화해가 이뤄진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절친한 친구 아르까디에게도 '너는 귀족의 습성'이 남아있다며 니힐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힐난하고, 자신만 걱정한다며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그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지로 들어가 '예상된 죽음'을 맞이한다. 이로써 두 부자의 갈등과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화해와 용서가 이뤄진다.

연기력으로 빛나는 배우들은 이 무대에서 더 반짝인다. 쌍두마차인 바자로프 윤장섭과 아르까디 이명행은 본래 자신들의 연기 스타일을 체홉의 일상에 녹여낸다. 바실리의 원로배우 오영수는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다. 일하지 않고 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보내는 이상적 자유주의자 '빠벨'의 남명렬은 자신의 인장인 지식인의 스펙트럼을 또 넓혔다.

니꼴라이 유연수의 넉살은 여전하고 농지경영에 일가견을 가진 매력적인 여 지주로 젊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안나의 김호정은 불안과 후회를 살짝 얹은 팜 파탈이었다.

국립극단 산하에 들어갔어도 명동예술극장 식 고급 연극의 흐름은 이어졌다. 25일까지. 남명렬, 오영수, 유연수, 김호정, 윤정섭, 이명행. 무대디자인 이태섭. 러닝타임 180분(휴식 15분 포함).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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