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속의 연극은 건강하지 않아"

  • 도가=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9.03 01:03

[문화 혁신의 기원을 가다] [크리에이티브 로드]
[8] 아시아 연극의 '중심지' 日 도가·시즈오카 연극촌

日 연극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사진
/유석재 기자
"도가에 처음 뿌리를 내렸던 40년 전은 일본이 국제적으로 승승장구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세계 톱이 되면 뭘 하겠습니까? 문화적으로 존경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요."

지난 24일 일본 도야마현 도가예술공원에서 만난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는 1976년 도가 연극촌을 세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와세다 소극장을 이끌고 있던 그는 "빌딩 숲 안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연극이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라 생각했다고 한다. "대도시라면 공연을 둘러싸고 기껏 레스토랑이나 커피숍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뿐이겠지요. 하지만 이곳은 어떻습니까? 불필요한 간섭도 없고, 훌륭한 환경 속에서 다른 예술가와 교류하며 자유로운 연극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스즈키는 "여기선 도쿄처럼 상업적인 연극을 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도 많은 관객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연극을 산업이 아닌 예술로, 경제활동이 아닌 지적(知的) 활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먼 곳에서도 옵니다."

자신의 '스즈키 메소드'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연아가 단지 미모 때문에 뛰어난 선수가 됐을까요? 제대로 된 연습을 매일 해야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올여름 시즌에 도가에서 공연한 그의 연출작 '리어왕'은 한국 배우 이성원·변유정·이은영을 비롯한 6개국 배우들이 각자 자기 나라 언어로 대사를 했다. '스즈키 메소드'가 다른 언어로도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병리적 현상에 주목한 그는 이 작품에서 리어왕을 정신병원에 갇힌 노인으로 설정했고, '세상엔 좋은 사람이 드물다'는 생각에 켄트 백작과 광대를 없애 버렸다. 군국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인 그는 '신데렐라'에선 사랑의 허망함에 대해 말하면서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신의(信義)와 신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도가를 아시아 연극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미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