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 미술관에선 드러누워도 돼~"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5.08.19 02:52

-'헬로우 뮤지엄―동네미술관'
"아이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동네 놀이터이자 예술 체험장"
김범수·김택진 등 벤처 1세대 기부 펀드 'C프로그램'이 후원

동네 도서관, 동네 체육관 같은 지역밀착형 문화 공간이 늘고 있지만 '미술'은 아직 동네와도, 아이들과도 멀다. 이달 초 서울 금호동에 들어선 한 작은 어린이 미술관이 '동네 미술관'을 내걸고 이런 현실에 도전장을 냈다.

신축 아파트와 재개발을 앞둔 다세대주택이 혼재해 있는 금호동 대로변, 외과로 쓰던 허름한 2층짜리 건물을 개조한 건물 입구에 '헬로우 뮤지엄―동네미술관'이란 간판이 붙었다. 헬로우 뮤지엄은 2007년 서울 역삼동에서 시작한 국내 최초의 어린이 대상 비영리 사립미술관. 엄마들 사이 꽤 입소문 났던 이 미술관이 강남에서 강북으로 새 둥지를 틀면서 '동네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헬로우 뮤지엄에서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훌라후프를 엮어 만든 홍장오 작가의 설치 작품‘146개의 UFO’를 바라보고 있다.
헬로우 뮤지엄에서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훌라후프를 엮어 만든 홍장오 작가의 설치 작품‘146개의 UFO’를 바라보고 있다. /헬로우 뮤지엄 제공
"강남에서 어린이 미술관을 운영해보니 미술관을 '예술 체험장'이 아닌 '미술 학원'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희는 가족이 함께 체험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익히는 미술관을 원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좀 더 주민들 가까이 들어가 보기로 했어요." 어린이 미술교육가인 김이삭 관장이 밝히는 '탈(脫)강남' 이유다.

동네 미술관에 주목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벤처기부 펀드 'C프로그램'이 예산을 후원한다. C프로그램은 지난해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 벤처 1세대 5인이 사회 기부를 위해 공동 출자해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펀드다. 우리 사회 IT 산업을 이끄는 이들이 관심 갖고 기부할 만큼 사회적 의미를 담은 프로젝트란 얘기다.

C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서대문자연사 박물관 '공룡 발밑에서의 하룻밤' 프로그램, 중랑구 놀이터 리모델링 등 주로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후원했다. 엄윤미 C프로그램 대표는 "아이들이 동네에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놀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동네 미술관이 제격이라 판단했다"며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모델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토는 '놀이터 같은 미술관'이다. 김 관장은 "개관 전 지역 어린이들과 만났더니 미술관은 '떠들면 혼나는 곳' '공항처럼 크고 하얀 곳' '부자만 가는 곳'이라더라"며 "아이들에게 미술관 문턱을 낮추려면 '놀이'가 필수 요소라 봤다"고 했다. '놀이 시작'이라는 개관전 이름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관람과 운영 방식도 유연하다. 훌라후프를 엮어 만든 작가 홍장오의 설치 작품은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어린이가 만든 그림을 '작품'으로 진짜 소장한다. 조손(祖孫) 가정이 많은 지역 상황을 고려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오는 성동구 주민은 매주 수요일 무료 전시 관람 기회를 준다. 미술관과 C프로그램 측은 "금호동 미술관을 파일럿으로 삼아 향후 또 다른 문화 낙후 지역에 동네 미술관을 확산하고 싶다"고 했다. 문의 (02)3217-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