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8.03 09:38

볼 공연은 많은데 막상 고르기 힘들다. 특히 같은 배역에 여러 명의 배우가 캐스팅돼 회차 선택하는 것도 난제다. 그래서 '공연 관람설명서'를 준비했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미묘한 차이가 그날의 공연 분위기를 만드는 법. 공연에 대해 조금이나마 세세한 이야기를 알고 가면 그 분위기에 좀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스포일러가 그래서 있다.
첫번째 챕터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러닝타임 약 70분 씩의 세 편을 모두 봐야 다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객석이 100석으로 한정돼 있고 티켓은 무서운 속도로 매진돼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작품을 보기 힘들다. 리뷰를 겸한 공연관람설명서의 첫 타자로는 안성맞춤이다.
◇설명서 읽기 전에(줄거리)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1923·1934·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로 그린다. 이 시기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일대를 주름잡던 때다. 마피아로 상징되는 힘의 논리가 정의와 도덕을 누르고 횡횡하던 시대다.
'로키'는 인기 절정의 쇼걸 '롤라 킨'의 결혼식 전날 그녀를 둘러싸고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끝없는 살인을 다룬 코미디, '루시퍼'는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파국을 맞이하는 서스펜스, '빈디치'는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경찰 빈디치의 이야기를 그린 하드보일드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공연장 입구 문에 들어서면 실제 호텔방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실제 렉싱턴 호텔 방의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공연장인 200석 규모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좌석 수의 절반을 줄여 100석으로 만들었다. 배우들은 매번 관객 바로 코 앞에서 연기해야 한다. 관객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불과 50㎝밖에 안된다. 객석은 50석 씩 서로 마주보게 배치돼 있다. 양쪽 객석과 객석 사이의 거리는 3m20㎝ 정도다. 방문과 창문의 거리는 7m다. 좌석은 불편하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관객과는 순간순간 몸을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편을 감수하는 것 이상의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석준·김종태, 박은석·윤나무, 김지현·정연 등 대학로에서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이들의 호연은 실감을 넘어 공연의 몰입도를 상당히 높인다.
김태형 연출은 "이 연극들의 장르는 기존 장르를 모방한 거예요.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등의 특색인데 형식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관극이라는 점이 특징이죠"라면서 보고 듣고 몸으로 체험하고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고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연극은 다른 연극 등의 공연이 경쟁 상대가 아니라 '무한도전' '런닝맨' 같은 TV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편한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강조했다. "TV를 통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는 건 편안한 일이죠. 객석도 좁고 서로 마주보면서 불편하게 하는 것이 목표에요. 같은 공간에서 이런 체험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원작과 차이점
극작가 제이미 윌크스의 작품으로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원작에 없는 빨간 풍선을 매 에피소드마다 넣어서 세 작품의 통일성을 꾀한 것이 인상적이다.
각색자인 지이선 작가는 "작품에는 많은 상징과 오브제가 있는데 빨간 풍선이 대표적"이라면서 "공간 자체가 총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상징이 들어오면 극단적으로 충돌할 것 같아서 빨간 풍성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요. 작품에서는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이 있죠. 작품마다 마지막에 풍선 처리 방법이 달라요. '로키'에서는 주인공 롤라 킨만 살아남는데 그 여자만이 빨간 풍선과 함께 방을 나가죠. '빈디치'에서는 풍선 하나만 유일하게 방을 빠져나가고, '루시퍼'에서는 그 풍선이 터집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주제와 분위기를 담은 거죠."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
마주보고 있는 객석 탓에 종종 특정한 장면에서 슬며서 웃음을 짓는 관객을 우연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관객은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을 보고 해당 작품을 보는 관객일 확률이 높다.
'빈디치'에서 닉 니티의 아내 말린은 '로키'의 롤라 킨과 놀았던 이야기를 하고 '빈디치'의 경찰들은 '루시퍼'의 마지막 장면에 일어났던 일들을 수사한다.
'로키'에서 추리소설에 빠진 어리바리한 경찰 두 명이 수 없이 내뱉었던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라는 '대사'는 '루시퍼'에 '빈디치'에도 나온다.
방문 왼쪽 위에 있는 환풍구는 독약병을 넣어두는 공통된 장소로 활용된다.
좁은 공간이지만 세 작품 모두 춤이 나온다. 주인공들은 '로키'에서 스윙, '루시퍼'에서 블루스', '빈디치'에서 왈츠를 춘다. 음악은 당시 시카고에서 주로 울려퍼진 재즈를 기반으로 한다.
◇관람 형식의 재미 이상의 묵직한 메시지
재미와 긴박감이 넘치는 작품인데 그에 못지 않은 메시지도 얻어갈 수 있다.
작품들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시카고의 실권을 쥐고 있는 카포네라는 마피아의 존재는 이 시리즈의 전박적인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모든 곳이 닫혀 빠져나갈 수 없는 호텔방은 인물들이 마피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태형 연출은 이 부분이 지금 한국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여겼다. "대한민국에도 '모피아' '금피아' 같은 것이 있잖아요.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배우들의 색다른 연기를 보는 신선함
'카포네 트릴로지'는 연출과 각색의 탄탄함에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배우들에게 불리하다. 러닝타임 내내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까지 관객들에게 노출돼 있다. 김지현은 작두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어쩔 수 없이 한 쪽 관객에게 등을 보일 경우에는 '뒷모습'도 연기를 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석준은 "배우들이 숨을 데도 없고 기댈 것도 없다"며 "체홉보다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처럼 바로 앞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지점은 배우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다. 이석준은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니까 시너지가 더 많다"고 즐거워했다.
배우들은 충분히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석준·김종태, 박은석·윤나무, 김지현·정연이 작품마다 같은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비중이 비교적 많은 작품에서 이들 연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아내와 사랑을 지키고자자 하지만 어느 순간 어두운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서 곤란을 겪는 '빈디치'의 닉 니티 경우 이석준은 강렬함이 짙어 캐릭터 안에 숨겨진 에너지가 더 끓어오르고 김종태는 마치 명예퇴직을 앞둔 회사원 같은 페이소스를 드러낸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겪다가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로키'의 쇼걸 롤라 킨은, 김지현의 경우 좀 더 상황에 빠져드는 '받아주는 코미디' 감각이 일품이다. 반면 정연은 좀 더 적극적인 코미디로 극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빈디치'의 경찰 빈디치를, 화려한 외모의 박은석은 댄디하게 소화한다. 진지함과 코믹함을 수시로 오가는 리듬 감각이 일품인 윤나무는 연기에서 그루브감을 느끼게 만든다.
◇ + 알파
'카포네 트릴로지' 3부작을 다 관람하면 내년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계획 중인 '벙커 트릴로지'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인 제스로 컴튼 컴퍼니의 작품이다.
김태형 연출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사 아이엠컬처가 내년에 선보이려고 준비 중인 '벙커 트릴로지'의 국내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도 맡는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주최한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내한공연으로 초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고전 소설과 그리스 신화 등을 엮은 세 작품을 묶은 공연이다. 역시 한정된 공간의 무대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태형 연출에게 잘 어울린다. 그는 "하게 되면 세계 1차 대전이 아닌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옮겨올까 생각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9월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장춘섭 미술감독, 김경육 음악감독. 만19세 이상 관람가. 3만원. 아이엠컬처·스토리피. 02-541-2929
공연관람 추천 지수 : 극장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 ★★★★☆
첫번째 챕터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러닝타임 약 70분 씩의 세 편을 모두 봐야 다 봤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객석이 100석으로 한정돼 있고 티켓은 무서운 속도로 매진돼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작품을 보기 힘들다. 리뷰를 겸한 공연관람설명서의 첫 타자로는 안성맞춤이다.
◇설명서 읽기 전에(줄거리)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1923·1934·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로 그린다. 이 시기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일대를 주름잡던 때다. 마피아로 상징되는 힘의 논리가 정의와 도덕을 누르고 횡횡하던 시대다.
'로키'는 인기 절정의 쇼걸 '롤라 킨'의 결혼식 전날 그녀를 둘러싸고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끝없는 살인을 다룬 코미디, '루시퍼'는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파국을 맞이하는 서스펜스, '빈디치'는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경찰 빈디치의 이야기를 그린 하드보일드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공연장 입구 문에 들어서면 실제 호텔방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실제 렉싱턴 호텔 방의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공연장인 200석 규모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좌석 수의 절반을 줄여 100석으로 만들었다. 배우들은 매번 관객 바로 코 앞에서 연기해야 한다. 관객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불과 50㎝밖에 안된다. 객석은 50석 씩 서로 마주보게 배치돼 있다. 양쪽 객석과 객석 사이의 거리는 3m20㎝ 정도다. 방문과 창문의 거리는 7m다. 좌석은 불편하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관객과는 순간순간 몸을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편을 감수하는 것 이상의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석준·김종태, 박은석·윤나무, 김지현·정연 등 대학로에서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이들의 호연은 실감을 넘어 공연의 몰입도를 상당히 높인다.
김태형 연출은 "이 연극들의 장르는 기존 장르를 모방한 거예요.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등의 특색인데 형식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관극이라는 점이 특징이죠"라면서 보고 듣고 몸으로 체험하고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고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연극은 다른 연극 등의 공연이 경쟁 상대가 아니라 '무한도전' '런닝맨' 같은 TV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편한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강조했다. "TV를 통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는 건 편안한 일이죠. 객석도 좁고 서로 마주보면서 불편하게 하는 것이 목표에요. 같은 공간에서 이런 체험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원작과 차이점
극작가 제이미 윌크스의 작품으로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원작에 없는 빨간 풍선을 매 에피소드마다 넣어서 세 작품의 통일성을 꾀한 것이 인상적이다.
각색자인 지이선 작가는 "작품에는 많은 상징과 오브제가 있는데 빨간 풍선이 대표적"이라면서 "공간 자체가 총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상징이 들어오면 극단적으로 충돌할 것 같아서 빨간 풍성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요. 작품에서는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이 있죠. 작품마다 마지막에 풍선 처리 방법이 달라요. '로키'에서는 주인공 롤라 킨만 살아남는데 그 여자만이 빨간 풍선과 함께 방을 나가죠. '빈디치'에서는 풍선 하나만 유일하게 방을 빠져나가고, '루시퍼'에서는 그 풍선이 터집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주제와 분위기를 담은 거죠."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
마주보고 있는 객석 탓에 종종 특정한 장면에서 슬며서 웃음을 짓는 관객을 우연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관객은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을 보고 해당 작품을 보는 관객일 확률이 높다.
'빈디치'에서 닉 니티의 아내 말린은 '로키'의 롤라 킨과 놀았던 이야기를 하고 '빈디치'의 경찰들은 '루시퍼'의 마지막 장면에 일어났던 일들을 수사한다.
'로키'에서 추리소설에 빠진 어리바리한 경찰 두 명이 수 없이 내뱉었던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라는 '대사'는 '루시퍼'에 '빈디치'에도 나온다.
방문 왼쪽 위에 있는 환풍구는 독약병을 넣어두는 공통된 장소로 활용된다.
좁은 공간이지만 세 작품 모두 춤이 나온다. 주인공들은 '로키'에서 스윙, '루시퍼'에서 블루스', '빈디치'에서 왈츠를 춘다. 음악은 당시 시카고에서 주로 울려퍼진 재즈를 기반으로 한다.
◇관람 형식의 재미 이상의 묵직한 메시지
재미와 긴박감이 넘치는 작품인데 그에 못지 않은 메시지도 얻어갈 수 있다.
작품들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시카고의 실권을 쥐고 있는 카포네라는 마피아의 존재는 이 시리즈의 전박적인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모든 곳이 닫혀 빠져나갈 수 없는 호텔방은 인물들이 마피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태형 연출은 이 부분이 지금 한국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여겼다. "대한민국에도 '모피아' '금피아' 같은 것이 있잖아요.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배우들의 색다른 연기를 보는 신선함
'카포네 트릴로지'는 연출과 각색의 탄탄함에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배우들에게 불리하다. 러닝타임 내내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까지 관객들에게 노출돼 있다. 김지현은 작두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어쩔 수 없이 한 쪽 관객에게 등을 보일 경우에는 '뒷모습'도 연기를 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석준은 "배우들이 숨을 데도 없고 기댈 것도 없다"며 "체홉보다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처럼 바로 앞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지점은 배우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롭다. 이석준은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니까 시너지가 더 많다"고 즐거워했다.
배우들은 충분히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석준·김종태, 박은석·윤나무, 김지현·정연이 작품마다 같은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비중이 비교적 많은 작품에서 이들 연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아내와 사랑을 지키고자자 하지만 어느 순간 어두운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서 곤란을 겪는 '빈디치'의 닉 니티 경우 이석준은 강렬함이 짙어 캐릭터 안에 숨겨진 에너지가 더 끓어오르고 김종태는 마치 명예퇴직을 앞둔 회사원 같은 페이소스를 드러낸다.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겪다가 끝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로키'의 쇼걸 롤라 킨은, 김지현의 경우 좀 더 상황에 빠져드는 '받아주는 코미디' 감각이 일품이다. 반면 정연은 좀 더 적극적인 코미디로 극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빈디치'의 경찰 빈디치를, 화려한 외모의 박은석은 댄디하게 소화한다. 진지함과 코믹함을 수시로 오가는 리듬 감각이 일품인 윤나무는 연기에서 그루브감을 느끼게 만든다.
◇ + 알파
'카포네 트릴로지' 3부작을 다 관람하면 내년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계획 중인 '벙커 트릴로지'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인 제스로 컴튼 컴퍼니의 작품이다.
김태형 연출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사 아이엠컬처가 내년에 선보이려고 준비 중인 '벙커 트릴로지'의 국내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도 맡는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주최한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내한공연으로 초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고전 소설과 그리스 신화 등을 엮은 세 작품을 묶은 공연이다. 역시 한정된 공간의 무대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태형 연출에게 잘 어울린다. 그는 "하게 되면 세계 1차 대전이 아닌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옮겨올까 생각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9월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장춘섭 미술감독, 김경육 음악감독. 만19세 이상 관람가. 3만원. 아이엠컬처·스토리피. 02-541-2929
공연관람 추천 지수 : 극장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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