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27 09:30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23일 오후 강원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함께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A단조'의 연주를 끝내자 정명화·정경화 '대관령 국제 음악제' 공동 예술감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떠오르는 기대주에게 한동안 아낌없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만 20세의 임지영은 연중 가장 큰 클래식 축제의 첫 무대를 장식함에도 떨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임지영은 올해로 제12회째를 맞는 '대관령 국제 음악제'의 하이라이트 '저명연주가 시리즈'의 포문을 당당히 열었다.
그녀는 지난 5월 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한 뒤 유례 없이 주목 받고 있다. 애초 대관령 국제 음악제에 학생 자격으로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공연과 함께 25일 오후 2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비에니아프스키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op. 20'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다.
임지영이 지난 2008년부터 작년까지 총 7번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에 참가한 만큼 당연한 예우였고 뿌듯한 무대였다.
24일 오전 알펜시아 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임지영은 "어제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반응이 따뜻했다"면서 "관객이 하나도 안 보였는데 정명화·정경화 선생님이 기립 박수를 주셔서 행복했다"고 웃었다.
- 매년 음악학교 학생으로 대관령 국제 음악제에 참가하다 유명 뮤지션들이 오르는 '저명 연주가 시리즈'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지영 씨 무대는 뒤늦게 마련됐죠.
"방학 시작과 함께 매년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갔죠. 올해도 연초에 당연히 학생 신분으로 신청을 했는데 아티스트로 오게 돼 너무 기뻐요. 제가 갑자기 무대에 오르게 됐지만 음악제가 워낙 잘 짜여져 있어서 혼동이 없었어요."
-대관령 국제 음악제는 어떤 축제인가요?
"일단 한국에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저명한 연주자와 교수님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드문 일이죠. 물론 레슨, 연주도 좋지만 밥 먹을 때 거장 연주자와 선생님들을 뵐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연주를 통해서 배울 점도 많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알아가는 것도 많거든요. 연주자가 아닌 인간적으로 그 분들을 뵐 수 있는 것인데 성품이 워낙 다들 좋으셔서 살아가는 면에서도 배울 게 많죠."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이후 관심을 더 받게 됐어요.
"제가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연주는 꾸준히 계속했어요. 그런데 우승 이후 관심을 더 가져주시니 연주를 할 때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죠. 그 분들의 기대에 부응을 해야 하니까요."
-순수 국내파라는 수식이 계속 따라 붙어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유학을 가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이처럼 유명한 국제음악제에 와서 레슨도 받고 외국에 나가서 (해외 거장들의)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여하긴 했어요."
-그런데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시선이 많이 생긴 건 사실이에요.
"콩쿠르 같은 데 나가면 외국인 친구들이 물어요. 한국은 어떤 시스템의 비밀이 있길래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요(웃음). 학교(임지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분위기가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친구들도 그만큼 열심히 하니까 서로 윈윈하는 거 같아요."
-스승이신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교육영재원장은 우승을 예감했다고 하시더라요.(김남윤은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누구나 1등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죠(웃음). 그런데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사람은 없어요. 열심히 하는 것 맞지만 이변이나 변수가 많거든요. DVD 심사를 거쳐 세계 최대 권위의 대회에 출연한 69명은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죠. 일단 욕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콩쿠르에서 연주한 건 만족했어요?
"끝내고 좋은 연주였다는 느낌이 올 때는 있어요. 음정을 잘 맞추고 테크닉에 실수가 없는 거죠. 공연장의 분위기로 그걸 느낄 수도 있고요. 이번 콩쿠르에서 그런 점이 느껴지긴 했어요. 근데 동영상을 돌려보면 현장의 그런 분위기까지 잡아내기 어려워요. 연주만 사실적으로 들리죠. 연주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연주에 만족을 하는 것은 어려워요."
-야무지고 단단한 느낌이 있어요(웃음).
"주장이 좀 세고, 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기는 해요(웃음). 보통 음악가들은 예민하고 조용하고 신비로운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본래 신비주의도 아니고요(웃음). 솔직하게 연주하려고 해요. 예민한 사람은 아닌데 지구력과 집중력이 있기는 하죠."
-어릴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착한 학생이요(웃음).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건 무조건 납득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키시는 건 다해갔죠. 노력을 하면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김남윤 선생님은 다들 엄하고 호랑이 선생님으로 아시는데 저는 '과연 제가 아는 그 분이 엄한 선생님이 맞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7, 8년 동안 크게 혼난 적이 없어서요. 성실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세요."
-엘리자베스 퀸 콩쿠르 결선에서 자유곡으로 브람스의 협주곡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물론 자신 있는 곡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브람스가 남성적이고 힘이 필요한 곡이에요. 바이올린 콘체르토 중에서도 긴 편이라 집중력이 필요해요. 다른 콘체르토는 집중을 할 부분이 정해져 있어 완급조절이 가능한데 브람스는 그런 지점이 없어 끝까지 집중해야 하죠. 연주하기가 까다롭고 정석대로 안 하면 심사위원들이 잘못을 잡아내기도 쉽죠. 근데 제가 가 본 콩쿠르 중에 브람스를 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브람스로 우승한 사람도 거의 없었어요. 파이널에서도 차이콥스키나 시벨리우스 연주를 많이 하죠. 웬걸, 그런데 이번에는 결선에서 브람스를 네명이나 했어요(웃음)."
-지영 씨는 마라토너 같아요.
"네 맞아요. 예술이 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지막으로 연주를 끝내는 순간까지 그렇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콩쿠르를 할 때면 서울에서 인천공항 가서 비행기 타고 현지에 내리는 순간부터 콩쿠르가 시작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에 오를 때만 콩쿠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죠. 그렇게하면 정신을 잡는 시간이 길어서 더 힘들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그런 점이 더 힘들죠."
-전날 연주는 너무 좋았어요.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귀국해서 공식적으로 솔로 연주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모두가 기대를 많이 하시고, 저 역시 기대하는 바가 컸죠."
-어린 나이에도 강심장처럼 보여요(웃음).
"무던해요.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죠(웃음). 걱정은 되지만 무대에서 떨리지는 않아요. 마음이 편해지죠. 본래 선천적으로 그래요. 그래서 부모님께 감사드리죠."
-이제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에 참여하는 후배들이 지영 씨를 롤모델로 삼겠어요.
"저는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언니들을 보면서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그 분들이 음악학교 등에서 무엇을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며 어깨 너머로 배우려 했죠. 어떤 분이든 그 분을 꾸준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공부가 돼요. 그 분들이 개척하신 길을 보고 따라가기만 해도 한결 수월해지죠."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직 한국이 클래식 저변이 넓지 않아요.
"앞선 연주자들이 넓히기 위해 많이 시도를 하셨고 실제 개척하고 있다고도 믿어요. 전 연주자의 삶이 얼마 안 된 만큼 더 많이 연주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청중분들이 더 많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외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포함해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많거든요. 클래식 공연장 객석이 가득 차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거예요. 아직 김남윤 선생님 밑에서 배워야 할 공부가 많거든요. 물론 연주도 하겠지만 학업을 위주로 병행할 거예요. 이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으로 넘어가는 단계지만 아직 본분은 학생이니까요. 거기에 맞는 행동과 연주를 해야 하죠."
-앞으로 연주자로서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어떻게 될 지 모르죠. 이번 콩쿠르를 통해서 특히 그런 부분을 느꼈어요. 제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죠. 우선 계획된 일들을 잘하다보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콩쿠르는 더 이상 나가지 않겠죠?
"김남윤 선생님이 학생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정경화 선생님과 함께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하실 때 정 선생님이 콩쿠르에서 우승하시고 나서 김 선생님과 함께 밤 12시에 뉴욕 한복판을 뛰어다니시며 '노 모어 컴피티션'을 외치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콩쿠르가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에요. 저도 '노 모어 컴피티션'이에요(웃음)."
임지영은 겸손하면서도 당찼고 밝으면서도 논리적이었다. 콩쿠르 우승은 끝이 아닌 '비르투오소'(탁월한 연주자)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떠오르는 기대주에게 한동안 아낌없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만 20세의 임지영은 연중 가장 큰 클래식 축제의 첫 무대를 장식함에도 떨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임지영은 올해로 제12회째를 맞는 '대관령 국제 음악제'의 하이라이트 '저명연주가 시리즈'의 포문을 당당히 열었다.
그녀는 지난 5월 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한 뒤 유례 없이 주목 받고 있다. 애초 대관령 국제 음악제에 학생 자격으로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공연과 함께 25일 오후 2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비에니아프스키 '구노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op. 20'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다.
임지영이 지난 2008년부터 작년까지 총 7번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에 참가한 만큼 당연한 예우였고 뿌듯한 무대였다.
24일 오전 알펜시아 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만난 임지영은 "어제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반응이 따뜻했다"면서 "관객이 하나도 안 보였는데 정명화·정경화 선생님이 기립 박수를 주셔서 행복했다"고 웃었다.
- 매년 음악학교 학생으로 대관령 국제 음악제에 참가하다 유명 뮤지션들이 오르는 '저명 연주가 시리즈'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지영 씨 무대는 뒤늦게 마련됐죠.
"방학 시작과 함께 매년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갔죠. 올해도 연초에 당연히 학생 신분으로 신청을 했는데 아티스트로 오게 돼 너무 기뻐요. 제가 갑자기 무대에 오르게 됐지만 음악제가 워낙 잘 짜여져 있어서 혼동이 없었어요."
-대관령 국제 음악제는 어떤 축제인가요?
"일단 한국에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저명한 연주자와 교수님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드문 일이죠. 물론 레슨, 연주도 좋지만 밥 먹을 때 거장 연주자와 선생님들을 뵐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연주를 통해서 배울 점도 많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알아가는 것도 많거든요. 연주자가 아닌 인간적으로 그 분들을 뵐 수 있는 것인데 성품이 워낙 다들 좋으셔서 살아가는 면에서도 배울 게 많죠."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이후 관심을 더 받게 됐어요.
"제가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연주는 꾸준히 계속했어요. 그런데 우승 이후 관심을 더 가져주시니 연주를 할 때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죠. 그 분들의 기대에 부응을 해야 하니까요."
-순수 국내파라는 수식이 계속 따라 붙어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유학을 가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이처럼 유명한 국제음악제에 와서 레슨도 받고 외국에 나가서 (해외 거장들의)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여하긴 했어요."
-그런데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시선이 많이 생긴 건 사실이에요.
"콩쿠르 같은 데 나가면 외국인 친구들이 물어요. 한국은 어떤 시스템의 비밀이 있길래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요(웃음). 학교(임지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분위기가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친구들도 그만큼 열심히 하니까 서로 윈윈하는 거 같아요."
-스승이신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교육영재원장은 우승을 예감했다고 하시더라요.(김남윤은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누구나 1등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죠(웃음). 그런데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사람은 없어요. 열심히 하는 것 맞지만 이변이나 변수가 많거든요. DVD 심사를 거쳐 세계 최대 권위의 대회에 출연한 69명은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죠. 일단 욕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콩쿠르에서 연주한 건 만족했어요?
"끝내고 좋은 연주였다는 느낌이 올 때는 있어요. 음정을 잘 맞추고 테크닉에 실수가 없는 거죠. 공연장의 분위기로 그걸 느낄 수도 있고요. 이번 콩쿠르에서 그런 점이 느껴지긴 했어요. 근데 동영상을 돌려보면 현장의 그런 분위기까지 잡아내기 어려워요. 연주만 사실적으로 들리죠. 연주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연주에 만족을 하는 것은 어려워요."
-야무지고 단단한 느낌이 있어요(웃음).
"주장이 좀 세고, 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기는 해요(웃음). 보통 음악가들은 예민하고 조용하고 신비로운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본래 신비주의도 아니고요(웃음). 솔직하게 연주하려고 해요. 예민한 사람은 아닌데 지구력과 집중력이 있기는 하죠."
-어릴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착한 학생이요(웃음).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건 무조건 납득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키시는 건 다해갔죠. 노력을 하면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김남윤 선생님은 다들 엄하고 호랑이 선생님으로 아시는데 저는 '과연 제가 아는 그 분이 엄한 선생님이 맞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7, 8년 동안 크게 혼난 적이 없어서요. 성실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세요."
-엘리자베스 퀸 콩쿠르 결선에서 자유곡으로 브람스의 협주곡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물론 자신 있는 곡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브람스가 남성적이고 힘이 필요한 곡이에요. 바이올린 콘체르토 중에서도 긴 편이라 집중력이 필요해요. 다른 콘체르토는 집중을 할 부분이 정해져 있어 완급조절이 가능한데 브람스는 그런 지점이 없어 끝까지 집중해야 하죠. 연주하기가 까다롭고 정석대로 안 하면 심사위원들이 잘못을 잡아내기도 쉽죠. 근데 제가 가 본 콩쿠르 중에 브람스를 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브람스로 우승한 사람도 거의 없었어요. 파이널에서도 차이콥스키나 시벨리우스 연주를 많이 하죠. 웬걸, 그런데 이번에는 결선에서 브람스를 네명이나 했어요(웃음)."
-지영 씨는 마라토너 같아요.
"네 맞아요. 예술이 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지막으로 연주를 끝내는 순간까지 그렇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콩쿠르를 할 때면 서울에서 인천공항 가서 비행기 타고 현지에 내리는 순간부터 콩쿠르가 시작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에 오를 때만 콩쿠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죠. 그렇게하면 정신을 잡는 시간이 길어서 더 힘들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그런 점이 더 힘들죠."
-전날 연주는 너무 좋았어요.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귀국해서 공식적으로 솔로 연주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모두가 기대를 많이 하시고, 저 역시 기대하는 바가 컸죠."
-어린 나이에도 강심장처럼 보여요(웃음).
"무던해요.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죠(웃음). 걱정은 되지만 무대에서 떨리지는 않아요. 마음이 편해지죠. 본래 선천적으로 그래요. 그래서 부모님께 감사드리죠."
-이제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학교에 참여하는 후배들이 지영 씨를 롤모델로 삼겠어요.
"저는 클라라 주미 강, 신지아 언니들을 보면서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그 분들이 음악학교 등에서 무엇을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며 어깨 너머로 배우려 했죠. 어떤 분이든 그 분을 꾸준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공부가 돼요. 그 분들이 개척하신 길을 보고 따라가기만 해도 한결 수월해지죠."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아직 한국이 클래식 저변이 넓지 않아요.
"앞선 연주자들이 넓히기 위해 많이 시도를 하셨고 실제 개척하고 있다고도 믿어요. 전 연주자의 삶이 얼마 안 된 만큼 더 많이 연주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청중분들이 더 많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외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포함해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많거든요. 클래식 공연장 객석이 가득 차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거예요. 아직 김남윤 선생님 밑에서 배워야 할 공부가 많거든요. 물론 연주도 하겠지만 학업을 위주로 병행할 거예요. 이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으로 넘어가는 단계지만 아직 본분은 학생이니까요. 거기에 맞는 행동과 연주를 해야 하죠."
-앞으로 연주자로서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어떻게 될 지 모르죠. 이번 콩쿠르를 통해서 특히 그런 부분을 느꼈어요. 제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꼈죠. 우선 계획된 일들을 잘하다보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콩쿠르는 더 이상 나가지 않겠죠?
"김남윤 선생님이 학생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정경화 선생님과 함께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하실 때 정 선생님이 콩쿠르에서 우승하시고 나서 김 선생님과 함께 밤 12시에 뉴욕 한복판을 뛰어다니시며 '노 모어 컴피티션'을 외치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콩쿠르가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에요. 저도 '노 모어 컴피티션'이에요(웃음)."
임지영은 겸손하면서도 당찼고 밝으면서도 논리적이었다. 콩쿠르 우승은 끝이 아닌 '비르투오소'(탁월한 연주자)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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