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감독 "극장은 아고라"

  • 뉴시스

입력 : 2015.07.15 17:2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김성희 예술감독은 생각이 유연하다. 그 만큼 폭넓게 받아들인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국제 현대무용축제 '모다페(MODAFE)',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Bo:m)의 기반을 닦은 것도 그녀다.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뉴욕대 예술경영대학원 등에서 공부하며 시야를 넓혔다.

9월 공식 개관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예술극장이 그래서 기대를 모은다. 9월4일 개막해 약 3주간 열리는 개관 축제 역시 아시아 지역 곳곳의 색다른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시아 중심의 작가 29명, 작품 33편을 선보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위치한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행사를 준비 중인 김 감독을 최근 서울광장에서 만났다. 2013년 5월부터 예술감독을 맡아 2년 간 개관을 준비해오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제작, 유통 시스템을 비교적 잘 체계화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다페'와 '페스티벌 봄'에서 했던 작업들이 예술극장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하고자 했던 작업은 '현대 공연' 예술 축제에요. 아주 특별한 건 아니고 세계에서 공연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자 했죠. 그러면 한국, 결국 자신의 좌표를 알 수 있거든요. 한국의 로컬 아티스트는 자신의 형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쪽을 곁눈질하면서 위치를 잡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조정하는 거죠. 지금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된 작가 정금형(최근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 가곡을 부르는 박민희 등이 '페스티벌 봄'을 거친 건 뿌듯한 일이죠."

-아시아에서 주목 받은 젊은 작가들이 예술극장 개관 축제에 대거 참여합니다.

"그간 아시아에서 유럽을 바라보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번에는 아시아를 기반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려고 했어요. 그간 했던 작업과 공통점은 '동시대'라는 키워드인데 '페스티벌 봄'에서는 한국에서 유럽을 바라본 것이 사실이거든요. 이번에 '그의 죽음은 의뭉스럽다'는 작품을 선보이는 필리핀의 라야 마틴 같은 작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요. 식민지 시대를 많이 겪은 필리핀에서 역사 쓰기를 하는 작가에요. 잘하는 작가도 좋지만 이처럼 문화주도권을 계속 찾으려고 하는 작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죠."

-항상 주변부에서 꾸준히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중심이 될까봐 무서워요(웃음). 원래 독립적으로 일하던 프리랜서인데 혹시 기관에 들어와서 굳어질까봐 걱정이죠. 50대, 60대가 돼도 안정된 것보다 주변부에서 일하며 균열 내고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싶어요."

- 대중이 편한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물론 머리를 식혀줄 달콤한 것도 있어야 하지만 모든 것이 재미있어야 하고 기쁠 필요는 없어요. 극장에서 스펙터클을 경험하는 건 19~20세기 극장의 역할이에요. 그리스 시대 극장의 역사는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아고라와 같은 곳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이 충돌하는 곳이요. 물론 극장에서 놀라움과 오락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이 훨씬 더 다양해졌으면 해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가 언제 극장에서 이란, 러시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어요.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상황을 보고 듣는 것 자체가 아고라가 되는 거예요. 다른 관점들이 충돌하고 부딪히고 조우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페스티벌이고 관객들은 이를 흥미로 삼아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죠. 국제화에 대한 방식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간 정치적으로 국제적인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문화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 이해를 돕는 판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타일이나 형식의 자랑이 아닌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지점이 아고라죠. 테크닉이나 스펙 자랑이 아닌 사유의 장을 만들고 싶은 거죠."

14일 오후 7~9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펼쳐진 아르헨티나 출신 연출가 페르난도 루비오의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만 지켜봐도 이번 페스티벌의 색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서울광장에 놓인 7개 침대 위에 각자 누운 관객은 배우 한 명씩과 이불을 덮고 낯선 공간과 내면을 10분 간 체험했다. 낯선 배우는 낯선 관객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번째로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은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낯설었는데 침대에 누우니 그 낯섦이 없어지고 묘한 느낌과 다양한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사전 공연부터 관점과 시선의 다양화가 느껴졌다.

한편, 이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축제에는 태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아핏찻퐁 위라세타쿤이 만든 첫 공연 '열병의 방'을 비롯해 대만의 대표 영화감독 겸 공연연출가인 차이밍량의 작품으로 개막작인 '당나라의 승려', 우즈베스키 출신 탈가트 바탈로프의 '우즈벡', 테헤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및 극작가 아자데 샤미리의 '다마스커스', 싱가포르 연출가 호추니엔의 공연 '만 마리의 호랑이'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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