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01 09:41

발레영재 박지수(17·서울예고) 양을 만난 내내 진부하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지난 2월 세계 3대 발레 콩쿠르 중 하나인 '제43회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박 양은 이를 계기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연수단원으로 입단, 9월에 출국한다.
부드러운 동작에 숨겨진 힘이 바탕이 된 실력은 물론 마음가짐, 인성, 나아가 발레를 대하는 신실한 태도까지 갖춘 박 양에게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이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입단한 이래 발레단 유일의 종신단원으로 있는 곳이다. 강효정 역시 역대 최연소 동양인 수석무용수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둘 모두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어, 박 양은 발레단 선배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됐다.
발레 역량을 갖춘 영재(전국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발레전공자 30명)를 육성하는 'SSCL드라이브유어드림'에 장학생으로 참여 중인 박 양을 최근 송파구 한국체대에서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 뒤에 만났다.
한국메세나협회(회장 박삼구)가 포르쉐 공식 딜러 SSCL(사장 그레엠 헌터)과 손잡고 진행 중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는 박 양은 내내 연습만 하는 것도 모자라 취미로 발레 외 다른 종류의 춤을 춘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줍은 웃음 뒤에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2위로 호명됐을 때 느낌이 어땠나?
"처음에는 너무 어안이 벙벙했어요.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아무 생각이 없었죠. 너무 예상을 못한 상이라서요. 잘해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요." -로잔 콩쿠르에서 고전발레 '라바야데르' 중 공주인 감자티 솔로 장면과 현대무용 작품 중 '봄의 제전'을 선보였다.
"공주인 감자티는 제가 일상에서 전혀 겪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표현해보고 싶었죠(웃음). 춤을 통해서도 다양한 표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극 안에서 공주로서 욕심, 그리고 제 욕심을 다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봄의 제전'은 주최 측에서, '컨템포러리 부문'은 세 가지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데 제일 격하고 동작의 난도가 높다고 생각했죠. 클래식은 다들 잘 할테니 컨템포러리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아울러 '봄의 제전'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그 날 당일 잠잘 때까지 가시지 않았고요. 격렬한 작품이니 최대한 저를 내려놓고 미치려고 노력했죠."(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이번 로잔 콩쿠르 현장을 지켜본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이 현대무용에서 박지수는 독보적이었다고 평했던 사실을 전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주변 분들의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틱 레퍼토리가 많기도 했고요. 컨템포러리 발레가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기도 했죠.
-학교가 아닌 컴퍼니에 가게 됐다.
"컴퍼니에 가면 성인이 많잖아요. 자유가 주어지기도 하고. 반면 수업을 받을 기회가 줄어서 기본을 다질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죠. 그런데 가서 배우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나이 때 발레단 시험을 보는 이들도 많고요. 우선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부산에 살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무용을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콩쿠르를 접한 뒤 서울로 레슨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안다.
"맨 처음 무용을 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아파트 문화센터에서 제 또래의 어린이들이 무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당시 몸이 많이 약했어요. 비리비리해 자주 넘어지곤 했는데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처음에는 반대하셨죠. 하지만 계속 졸라 어느 학원을 다니게 됐는데 그곳이 어느날 갑자기 문을 닫았어요. 빗속을 뚫고 힘들게 갔는데 아무런 공지도 없이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죠(웃음). 이후 혼자서 스트레칭 같은 것을 했는데 몸이 굳어지는 걸 느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시 졸라서 다니기 시작했죠. 주변에 학원이 세 개 였어요. 한국 무용 한 곳, 발레 2곳. 그 중 제일 무섭고 어려워보이는 곳을 골라 발레를 시작했죠."
-어린 나이에 제일 무섭고 어려운 곳을 골랐다고?
"그래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웃음)"
-이후 부산에서 작은 콩쿠르에 나가 상을 탔는데 어떻게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게 된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콩쿠르에 나갔는데 참가자들이 모두 한 홀에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전문적인 코멘트를 받는 게 부러웠죠. 저는 혼자 했기 때문에 의문점이 들어도 풀 수가 없었는데 섬세하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죠.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콩쿠르에서 떨어졌고 부모님을 다시 졸라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산에서 다니던 중학교는 인문계라 발레할 시간이 부족했죠.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검정 고시를 준비하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죠."
-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고 홀로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서울예고에 들어갔다. 특히 예체능을 배우는 학생은 부모들이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보살펴주는 게 일반적인데.
"부모님은 (평소) '돌밭에서 굴러라'고 말하세요(웃음). 뭐든지 혼자 했어요. 어릴 때부터 토슈즈 바느질도 제가 했는데 어설프니 잘 못했죠. 그 덕분에 지금은 눈 감고도 해요. 어릴 때부터 콩쿠르 서류 접수도 혼자서 했고요. "
-지난 3월부터 'SSCL드라이브유어드림'에 참여하고 있는데.
"로잔 콩쿠르에 다녀온 뒤 지난 2월 오디션을 봤어요.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몰랐죠. 장학 지원보다는 평소 좋아하는 발레리나 분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좋고, 도움이 많이 돼요(이 프로그램은 박 양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정착하는데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열리는 '서머 발레 캠프'에도 참여한다.)
- 존경하는 인물이 있나?
"이순신 장군이요(웃음)."
-이순신 장군?
"너무 멋있어요. 수업 시간에 배웠는데 그런 분을 닮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죠."
-발레리나 중에서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마리아넬라 누네즈. 그 분의 무용이 담긴 동영상을 봤는데 '표현이 그렇게 섬세할 수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도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연수단원으로 가는 것이 실감이 나나?
"아직 잘 모르겠어요. 우선 현재에 집중을 하려고요. 처음에는 기뻤는데 두려움이 생각보다 크네요. 엄청 행복할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동안 학과 공부, 실기, 공연, 콩쿠르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저를 위한 연습을 많이 하고 싶어요. 잊고 있었던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죠."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제가 해내고 싶은 건 밤을 새서 다 하고자 하죠(웃음). 그리고 표현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해요. 나뭇잎만 떨어져도 그것을 시작으로 상상을 하고 안무를 짜죠. 수업 시간에 책에서 명사 하나만 봐도 춤을 추는 것이랑 연관이 되면서 막 상상이 떠오르죠. 그래서 가끔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요(웃음)."
-가장 출연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로미오와 줄리엣'이요. 그 사랑의 절정에 이르면서도 수줍은 느낌이 좋아요."
-어떤 발레리나로 기억됐으면 하나?
"관객들도 '무대 위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는 발레리나. '발레가 이렇게 매력적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발레리나가 됐으면 해요. 발레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됐으면 해요. 피겨나 체조는 큰 대회가 있으면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데 발레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요. 좀 더 대중적으로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지난 2월 세계 3대 발레 콩쿠르 중 하나인 '제43회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박 양은 이를 계기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연수단원으로 입단, 9월에 출국한다.
부드러운 동작에 숨겨진 힘이 바탕이 된 실력은 물론 마음가짐, 인성, 나아가 발레를 대하는 신실한 태도까지 갖춘 박 양에게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이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입단한 이래 발레단 유일의 종신단원으로 있는 곳이다. 강효정 역시 역대 최연소 동양인 수석무용수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둘 모두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바 있어, 박 양은 발레단 선배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됐다.
발레 역량을 갖춘 영재(전국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발레전공자 30명)를 육성하는 'SSCL드라이브유어드림'에 장학생으로 참여 중인 박 양을 최근 송파구 한국체대에서 진행된 마스터 클래스 뒤에 만났다.
한국메세나협회(회장 박삼구)가 포르쉐 공식 딜러 SSCL(사장 그레엠 헌터)과 손잡고 진행 중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는 박 양은 내내 연습만 하는 것도 모자라 취미로 발레 외 다른 종류의 춤을 춘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줍은 웃음 뒤에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2위로 호명됐을 때 느낌이 어땠나?
"처음에는 너무 어안이 벙벙했어요.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아무 생각이 없었죠. 너무 예상을 못한 상이라서요. 잘해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요." -로잔 콩쿠르에서 고전발레 '라바야데르' 중 공주인 감자티 솔로 장면과 현대무용 작품 중 '봄의 제전'을 선보였다.
"공주인 감자티는 제가 일상에서 전혀 겪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표현해보고 싶었죠(웃음). 춤을 통해서도 다양한 표현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극 안에서 공주로서 욕심, 그리고 제 욕심을 다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봄의 제전'은 주최 측에서, '컨템포러리 부문'은 세 가지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데 제일 격하고 동작의 난도가 높다고 생각했죠. 클래식은 다들 잘 할테니 컨템포러리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아울러 '봄의 제전' 영상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그 날 당일 잠잘 때까지 가시지 않았고요. 격렬한 작품이니 최대한 저를 내려놓고 미치려고 노력했죠."(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이번 로잔 콩쿠르 현장을 지켜본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이 현대무용에서 박지수는 독보적이었다고 평했던 사실을 전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주변 분들의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틱 레퍼토리가 많기도 했고요. 컨템포러리 발레가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기도 했죠.
-학교가 아닌 컴퍼니에 가게 됐다.
"컴퍼니에 가면 성인이 많잖아요. 자유가 주어지기도 하고. 반면 수업을 받을 기회가 줄어서 기본을 다질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죠. 그런데 가서 배우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나이 때 발레단 시험을 보는 이들도 많고요. 우선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부산에 살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무용을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콩쿠르를 접한 뒤 서울로 레슨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안다.
"맨 처음 무용을 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아파트 문화센터에서 제 또래의 어린이들이 무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당시 몸이 많이 약했어요. 비리비리해 자주 넘어지곤 했는데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처음에는 반대하셨죠. 하지만 계속 졸라 어느 학원을 다니게 됐는데 그곳이 어느날 갑자기 문을 닫았어요. 빗속을 뚫고 힘들게 갔는데 아무런 공지도 없이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죠(웃음). 이후 혼자서 스트레칭 같은 것을 했는데 몸이 굳어지는 걸 느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시 졸라서 다니기 시작했죠. 주변에 학원이 세 개 였어요. 한국 무용 한 곳, 발레 2곳. 그 중 제일 무섭고 어려워보이는 곳을 골라 발레를 시작했죠."
-어린 나이에 제일 무섭고 어려운 곳을 골랐다고?
"그래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웃음)"
-이후 부산에서 작은 콩쿠르에 나가 상을 탔는데 어떻게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게 된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콩쿠르에 나갔는데 참가자들이 모두 한 홀에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전문적인 코멘트를 받는 게 부러웠죠. 저는 혼자 했기 때문에 의문점이 들어도 풀 수가 없었는데 섬세하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죠.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콩쿠르에서 떨어졌고 부모님을 다시 졸라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산에서 다니던 중학교는 인문계라 발레할 시간이 부족했죠.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검정 고시를 준비하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죠."
-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고 홀로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서울예고에 들어갔다. 특히 예체능을 배우는 학생은 부모들이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보살펴주는 게 일반적인데.
"부모님은 (평소) '돌밭에서 굴러라'고 말하세요(웃음). 뭐든지 혼자 했어요. 어릴 때부터 토슈즈 바느질도 제가 했는데 어설프니 잘 못했죠. 그 덕분에 지금은 눈 감고도 해요. 어릴 때부터 콩쿠르 서류 접수도 혼자서 했고요. "
-지난 3월부터 'SSCL드라이브유어드림'에 참여하고 있는데.
"로잔 콩쿠르에 다녀온 뒤 지난 2월 오디션을 봤어요.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몰랐죠. 장학 지원보다는 평소 좋아하는 발레리나 분들의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좋고, 도움이 많이 돼요(이 프로그램은 박 양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정착하는데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열리는 '서머 발레 캠프'에도 참여한다.)
- 존경하는 인물이 있나?
"이순신 장군이요(웃음)."
-이순신 장군?
"너무 멋있어요. 수업 시간에 배웠는데 그런 분을 닮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죠."
-발레리나 중에서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마리아넬라 누네즈. 그 분의 무용이 담긴 동영상을 봤는데 '표현이 그렇게 섬세할 수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도 있구나'라고 깨달았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연수단원으로 가는 것이 실감이 나나?
"아직 잘 모르겠어요. 우선 현재에 집중을 하려고요. 처음에는 기뻤는데 두려움이 생각보다 크네요. 엄청 행복할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동안 학과 공부, 실기, 공연, 콩쿠르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저를 위한 연습을 많이 하고 싶어요. 잊고 있었던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죠."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제가 해내고 싶은 건 밤을 새서 다 하고자 하죠(웃음). 그리고 표현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해요. 나뭇잎만 떨어져도 그것을 시작으로 상상을 하고 안무를 짜죠. 수업 시간에 책에서 명사 하나만 봐도 춤을 추는 것이랑 연관이 되면서 막 상상이 떠오르죠. 그래서 가끔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요(웃음)."
-가장 출연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로미오와 줄리엣'이요. 그 사랑의 절정에 이르면서도 수줍은 느낌이 좋아요."
-어떤 발레리나로 기억됐으면 하나?
"관객들도 '무대 위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는 발레리나. '발레가 이렇게 매력적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발레리나가 됐으면 해요. 발레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됐으면 해요. 피겨나 체조는 큰 대회가 있으면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데 발레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요. 좀 더 대중적으로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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