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김운하 노제…쓸쓸하지 않았으나 "그래서 울었지"

  • 뉴시스

입력 : 2015.06.25 14:50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가수 장사익의 '찔레꽃'이 25일 오후 1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아르코예술극장 앞에 놓인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생활고를 겪다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연극배우 김운하의 노제 현장.

장사익의 애달프고 구슬픈 목소리는 연극배우 김운하(40·김창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했다.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한 노래는 이날따라 더 처연했다.

심부전증 등을 앓았던 고인의 죽음은 쓸쓸했다. 발견됐을 당시 사망한 지 4~5일 가량 지난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 전부터 해당 고시원에서 혼자 산 고인의 주검은 무연고로 화장 처리됐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 동기 등 연극계 30여 동료, 선후배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배우들은 약 30분 간 진행된 노제 내내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렸다. 헌화를 하고 절을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노제 사회를 본 배우 홍대성은 "젊은 배우의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에,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서 이날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예종 연극원 동기인 배우 박주형은 추도사에서 "아직도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학교다닐 때 밤새 신(연극 장면)을 연습하고 커튼 뜯어서 잠 자고 함께 축구하던 때가 떠오른다. 형은 거기(천국)가 아니고 대학로에서 있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고인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활동한 극단 산만의 김선찬 대표도 추도사에서 "운하(본명 김창규)라는 이름으로 불리면 잘 될 것 같다고 하더니 안타깝다"면서 "너를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불러본다, 운하야"라고 울먹였다.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연극계 인사들도 참석했는데 다들 침통한 분위기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갈등으로 최근 '제36회 서울연극제' 폐막식을 이곳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렀던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올해 연극계에 연이어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 착잡하다"고 했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도 "안타까울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곁에서 노제를 지켜보던 박계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운하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행정적인 어려움 등으로 그가 예술인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 그가 출연한 작품으로 유작이 된 '인간동물원초'에서 함께 일했던 8명은 예술인 복지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활동증명'이 돼 있었다.

연극계 관계자는 "고인은 보건복지부의 긴급복지생계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예술인 자격에 해당됐다"면서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제 이후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인천 앞바다에 '해양제'를 통해 영면하게 된다.

고인의 사망 직전 몸담았던 극단 신세계는 "극단 및 지인들은 고인의 화장 절차가 끝나고 더 이상 이 사건이 가십화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면서 "노제 이후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과정부터는 지인들만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부디 고인이 평안히 쉴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김운하는 2005년 연극 '당신 이야기'을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7월 재공연 예정인 '인간동물원초'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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