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학교 오는 정경화… 지구촌 곳곳 찾아가는 콘서트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5.06.25 01:01

[27개국·155개 도시서 열리는 432개 공연, '2015 원 먼스 페스티벌']

정경화·이경선·김태형·황병기… 클래식·국악 등 예술가 1500여명
공공장소서 하우스콘서트式 공연, 작년엔 韓·中·日 동시간 공연도

강원도 횡성읍에서 차로 40분쯤 더 들어가는 산골 마을 춘당초등학교 학생들은 다음 달 16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유치원생 여덟 명까지 합해 전교생이 18명밖에 안되는 이 벽지 학교에 세계를 휘젓던 '바이올린 여제(女帝)' 정경화(67)가 찾아와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보다 사흘 앞선 다음 달 13일 강원도 정선의 갈래초등학교에는 피아니스트 이경숙(71) 전 연세대 음대 학장이 찾아간다. 베토벤·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로 국내에 전문 피아노 연주자 시대를 개척한 이경숙은 음악 수업시간에 쓰는 업라이트 피아노로 어린이들에게 프로 연주자의 솜씨를 보여준다.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한 피아니스트 박창수(51)가 이끄는 '2015 원 먼스 페스티벌(One month festival)'의 하나로 세계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열리는 432개 공연 중의 하나다.

다음 달 1일 과천 시립교향악단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해 인도, 부르키나파소, 영국, 호주, 독일, 러시아, 미국, 페루 등 6대주에서 열리는 원 먼스 페스티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권혁주, 피아니스트 김태형 등 클래식 연주자뿐 아니라, 가야금 명인 황병기, 해금 연주자 강은일, 마임 배우 유진규,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 등 국악과 재즈, 무용, 연극 등 각 장르 예술가 1500여명이 참여한다. 박물관, 카페, 클럽과 가정집은 물론 성당과 교회, 수도원까지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피아니스트 김태형(왼쪽)이 작년 7월 12일 ‘원 데이 페스티벌’의 하나로 충북 진천군 상산초등학교에 찾아가 연주했다. 아래는 작년 같은 날 일본 나고야시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장빈 어후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가진 후 기념 촬영한 사진.
피아니스트 김태형(위 사진 왼쪽)이 작년 7월 12일 ‘원 데이 페스티벌’의 하나로 충북 진천군 상산초등학교에 찾아가 연주했다. 아래는 작년 같은 날 일본 나고야시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장빈 어후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가진 후 기념 촬영한 사진. /하우스콘서트 제공

'원 먼스 페스티벌'을 기획한 박창수는 2002년 서울 연희동 집 2층 거실에서 음악회를 열어 '하우스 콘서트' 열풍을 몰고온 주역이다. 엄숙한 공연장 대신 집 마룻바닥에 앉아 온몸으로 음악을 즐기는 문화를 내세운 그는 하우스 콘서트 10주년을 맞은 2012년 7월엔 1주일간 전국 문화예술회관에서 100회의 '하우스 콘서트'식 공연을 열었다. 이듬해 전국 65개 공연장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클래식과 재즈 공연 100개를 올렸고, 작년 7월 12일엔 무대를 중국과 일본까지 넓혀 56개 도시에서 94개 공연을 같은 시각에 올렸다. 급기야 올해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 등 말 그대로 6대주에서 한 달 내내 공연을 갖기로 한 것이다. 매년 판을 더 키워가고 있는 셈이다.

원 먼스 페스티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다. 하지만 페스티벌에 지원한 예산은 9000만원 정도다. 전 세계 예술가 1500여명이 참여하는 공연 432개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해외 공연은 하우스 콘서트 취지에 공감하는 국내외 연주자들이 대부분 자기 돈으로 비용을 마련한다. 국내에서도 연주자들에게 교통비 정도만 줄 뿐, 대부분 노 개런티로 나선다"고 했다. 박창수와 강선애 '하우스 콘서트' 수석 매니저 등 스태프 4명은 작년 7월 '원 데이 페스티벌(One day festival)'이 끝나자마자 '원 먼스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데 매달렸다. 지난 겨울과 올봄,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며 해외 예술가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부탁했다.

특별히 돈 생기는 일도 아니고, 적자를 보는 게 불 보듯 뻔한 일을 매년 눈사태 일으키듯 덩치를 키워가는 이유는 뭘까. 박창수는 "실력 있는 연주자는 많은데 설 무대는 없고, 공연장은 공짜 표를 들고온 관객들만 가득하고, 이래서는 음악계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요"라고 했다. 음악계가 '그들만의 리그'로 떨어지는 걸 막고, 새로운 관객들을 공연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가 진행해온 하우스 콘서트는 서울 도곡동 스튜디오에서 작년 12월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예술가의 집'으로 옮겨 이달 15일 444회를 넘겼다. 지난 4월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이곳에서 '번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번 원 먼스 페스티벌엔 '국악 종가(宗家)' 국립국악원까지 동참할 만큼, 그의 기획은 문화계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사람의 남다른 아이디어와 실천이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의 (02)576-7061, onemonthfestiv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