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바젤, 中國에 손 내밀다

  • 바젤=허윤희 기자

입력 : 2015.06.22 01:28

[세계 최대 미술 시장 '2015 아트 바젤' 가보니]

'언리미티드'에 중국 작가만 5명… "급성장하는 中 미술시장 영향"
전세계 큰손 컬렉터들 참석, 수십억원대 작품 순식간에 팔려
단색화도 인기… 30여점 판매

자전거 760대를 눕혀서 쌓아올린 거대 구조물이 전 세계에서 날아온 미술계 VIP들을 입구에서 맞았다. 중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58·艾未未)의 2012년작 '스택트(Stacked)'. 원형 자전거 바퀴 1520개가 뿜어내는 강철 아우라가 전시 시작부터 발길을 붙잡는다.

중국 작가들의 급부상

지난 15일(현지 시각) 오후 스위스 바젤의 도심 메세플라츠 제1전시관. 세계 최대 아트 페어(미술 시장)인 '아트 바젤'(18~21일)의 대규모 설치 특별전 '언리미티드(Unlimited)'의 막이 올랐다. 스위스 건축가 그룹 헤르조그 드 뮤론이 설계한 은색 알루미늄 건물에 대형 설치·조각·영상 작품 78점을 선보였다. 올해 가장 눈에 띈 건 중국 작가의 대거 진출이다. 입구를 장식한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해 장 엔리(50), 리우 웨이(43), 리우 추앙(37), 미국에서 활동 중인 우창(33) 등 중국 작가 5명이 참여했다.

16일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에서 한 관람객이 이스라엘 출신 작가 탈 알(Tal R)의 작품 ‘Garbage Man’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콜라주 200여점이 전시된 설치 작품이다.
16일 아트 바젤 ‘언리미티드’에서 한 관람객이 이스라엘 출신 작가 탈 알(Tal R)의 작품 ‘Garbage Man’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콜라주 200여점이 전시된 설치 작품이다. /바젤=허윤희 기자
현장에서 만난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중국 미술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고 상하이·베이징 등 수퍼 컬렉터들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국 화랑 관계자도 "콧대 높은 바젤이 중국에 손을 내민 거다. 중국 컬렉터들은 일단 자기 나라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좋아할 작품을 골라서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재독 작가 양혜규의 설치 작품이 입구를 장식했지만 올해 '언리미티드'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은 없었다.

마크 스피글러 아트 바젤 디렉터(총책임자)는 "상업적인 아트 바젤에 미술관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중국을 비롯해 멕시코, 브라질 등의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수십억원 작품이 무섭게 팔려나가

영국 작가 데이비드 시리글리의 ‘라이프 모델(Life Model)’. 3m 높이의 나체 인형을 보고 관람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시리글리의 ‘라이프 모델(Life Model)’. 3m 높이의 나체 인형을 보고 관람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게 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아트 바젤 제공

아트 바젤은 세계 최고의 갤러리와 컬렉터가 총집결해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 작품을 거래하는 최대 미술 시장. 전 세계에서 날아온 수퍼 리치(super rich)와 큰손 컬렉터들에 의해 '밀리언(100만)' 단위 미술품들이 무섭게 팔려나갔다. 제46회인 올해 행사엔 전 세계 33개국에서 화랑 284곳이 참여했다. 한국에선 국제갤러리와 PKM 두 곳이 부스를 차렸다. VIP 사전 관람(프리뷰)이 열린 16~17일은 미술계 '상위 1% 사교 클럽'을 방불케 했다.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2004년작 'something and nothing'을 가장 눈에 띄는 입구에 내놨고,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는 제프 쿤스·앤디 워홀 등을 팔아치웠다. 런던 페이스 갤러리의 니콜라스 스미노프 홍보 담당자는 "미국 팝아트의 거장인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이 다 팔렸다. 프리뷰 첫날이 성패를 좌우하는데 올해는 반응이 특히 빠르다"고 했다.

한국 단색화 열기는 이곳에서도 이어졌다. 박경미 PKM 갤러리 대표는 "단색화가 윤형근의 대형 작품만 10점을 갖고 왔는데 첫날 5점이 팔렸다"고 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단색화를 30여점 가져왔는데 이틀 동안 27점이 팔렸다. 미국과 유럽 컬렉터들이 박서보·하종현·정상화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