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재즈가 어우러진 '시나위'…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 뉴시스

입력 : 2015.06.03 09:59

세계적인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올해의 아티스트에
2대 예술감독 재즈스타 나윤선 "올해 키워드는 창의성"
시작은 평온했다. 막 입구에 들어선 동굴 속에서 물방울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고수들이 맞붙기 전의 '폭풍전야'다.

2일 오후 서울 장충동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악기들의 힘 겨루기가 이내 시작됐다. 허윤정의 거문고가 슬쩍슬쩍 때리고 김용하가 켜는 해금이 맞받았다. 신현필의 화려한 색소폰 음색을 지켜보던 이아람의 대금이 치고 들어오자 흥겨운 판이 벌어졌다.

신동진의 드럼은 북인양 장단을 만들고, 관조하던 오정수의 기타와 이원술의 콘트라베이스가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국악과 재즈를 넘나드는 판이 만들어졌다.

한국의 전통음악에 속하는 기악독주곡인 산조들이 어우러지면서 기악 합주곡인 '시나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 재즈 역시 즉흥연주인 '잼'에 특화됐다. 서양음악과 국악음악의 즉흥성이 어우러지는 절정이었다.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여우락 페스티벌'(여기, 우리 음樂(악)이 있다)의 개막 공연인 '디렉터스 스테이지 - 여우락 콜렉티브'의 축약본이었다.

7월 1~2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본 공연에는 이날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재즈 보컬 나윤선, 정가의 강권순, 장구의 김정희까지 총 10명이 출연한다.

'여우락'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허윤정은 쇼케이스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으로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싶다"면서 "열심히 음악을 하는 것만이 설렘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끄는 '토리 앙상블'로 기존에 '여우락'에 참여한 바 있는 허윤정은 '여우락 콜렉티브'와 함께 8일 오후 8시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여류금객 거문고 노정기'에도 출연한다. '여우락' 2015 초이스' 중 하나다.

'여우락 콜렉티브'가 퓨전 무대라면 '여류금객 거문고 노정기'는 정통한 전통음악을 들려준다. 그녀는 "전통 음악만 갖고 시대적으로 교감하는 것이 녹록치 않아요"라면서 "내공도 필요하고 그 만큼 (이번 페스티벌이) 의미도 있죠. 시대 최고의 명인이 한 자리에서 모여서 너무 기뻐요"라고 했다. 정재국(피리), 이태백(아쟁), 원장현(대금) 등이 그 주인공이다.

'2015 초이스'의 또 다른 무대로 타악 명인 사토시 다케이시, 인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 등이 협업하는 '타임리스 타임'도 선보인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바랐다.

'여우락'은 한국음악에 뿌리를 둔, 국내에서 드문 '우리 음악' 축제다. 2010년 출발해 그간 월드뮤직그룹 공명, 바람곶, 들소리, 토리앙상블 등 해외무대에 진출해 인지도를 쌓은 한국음악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올해는 제1대 양방언 예술감독에 이어 나윤선을 제2대 예술감독으로 영입하고 재정비에 나섰다. 허윤정을 올해의 아티스트로 내새운 이도 나윤선이다. 지난 15년간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해온 그녀는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한 유수 국제 재즈 페스티벌과 뉴욕 '블루노트' 등에 초청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예술감독 직은 처음이라는 나윤선은 "솔직히 국악에 대해 잘 몰라요. 올해를 공부하는 한 해로 삼으려고 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해외 공연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국악을 제3자의 눈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죠"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에 선보이는 공연은 총 14개 작품으로 모두 신작이다. '디렉터스 스테이지' '믹스&매치' '2015 초이스' '센세이션'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눴다. 여우락 처음으로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해 한국음악 뮤지션과 협연도 시도한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아티스트 152명이 출연한다.

나윤선과 타 아티스트들이 협업하는 '디렉터스 스테이지'는 '여우락과 콜렉티브' 외에 시인 고은·창작국악밴드 '불세출'이 함께하는 '어제의 내일'(7월 4~5일 KB청소년하늘극장), 나윤선의 목소리와 동서양 악기가 어우러지는 '시작된 여행'(7월 25~26일 KB청소년하늘극장)으로 구성된다.

'믹스&매치'는 국악 앙상블 '숨'과 타악 연주자 스테판 에두아르가 뭉치는 '숨·수(手)'(7월17~18일 달오름극장), 기타리스트 뉴엔 레와 국악 그룹 '바라지'가 함께 하는 '용호상박'(7월18~19일 KB청소년하늘극장), 플루트 연주자 죠슬렝 미에니엘과 대금 주자 이아람이 의기투합한 '우드 & 스틸'(7월21~22일 달오름극장), 핀란드 피아니스트 이로 란탈라와 소리꾼 정은혜가 만나는 '판타스틱 투' 등으로 꾸며진다.

지난해 앨범 '플라이 인(Fly In) 날아든다'를 발매한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소리꾼 전영랑이 16명의 민요 합창단과 함께 하는 '모던 소리 나들이'(7월 3~4일 달오름극장), '담다디' '언제가는'으로 유명한 대중가요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이 우리 음악을 들려주는 '아람가락'(7월 9~10일 KB청소년 하늘극장), 재즈그룹 '더 버드'의 리더 김정렬·소리꾼 이봉근·한국인 처음으로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입성한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뭉친 '호밀… 한복을 입다'(7월 10~11일 달오름극장), 드러머 남궁연과 타악 연주자 민영치가 뭉친 'K비트앙상블'·발레리나 김주원이 펼치는 융합공연 '놀이의 품격', 영화 '올드보이' 등으로 유명한 영화 음악감독 이지수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업하는 '여우락 영화관' 등은 센세이션으로 묶인다.

프렐류드와 전영랑은 이날 쇼케이스에서 '비나리'와 '태평가'로 흥겨움과 평안함을 안겼고, 이아람은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죠슬렝 미에니엘과 협연을 실연과 영상의 조화를 통해 선보였다.

나윤선은 이 네 가지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크레이티비티'(creativity·창조성)라고 강조했다. "우리 음악이 새로운 음악을 만나서 어떻게 발전하고 변형하는지,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우리 시대에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크레이티비티'라고 정했다"고 설명했다.

올해의 아티스트는 나윤선이 여우락 역사에서 처음으로 선정했다. "한분을 모시고 그 분의 음악을 조명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허윤정 씨는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셨죠. 2015년 여우락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실 수 있는 뮤지션이라 생각했죠. 뿐만 아니라 여우락을 준비하면서 이런 뮤지션들을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은 "국악 하시는 분들 중 축제에 참가하시고자 하는 분들이 많죠. 올해 축제는 나윤선 예술감독을 모신 것이 가장 큰 행운이고 수확이라고 생각한다"고 즐거워했다.

"국악을 하시는 분들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어떤 예술, 어떤 분야 못지 않게 대단하다고 전율을 느낀다"면서 "이 축제를 통해서 세계적인 스타, 나윤선 키즈가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여우락 페스티벌' 7월 1일부터 26일까지. 전석 3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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