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11 01:26
[러시아 바이올린 大家 빅토르 트레차코프 첫 내한공연]
66년 차이콥스키콩쿠르 우승
"리흐테르 집에서 연주 즐겨… 잊을 수 없던 행복한 순간"
노바야 러시아심포니와 공연
지난 7일 첫 내한 연주를 위해 서울을 찾은 트레차코프는 "1960년대 미국 연주를 갔을 때 남으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망명을 택한 예술가들은 운명이 그랬겠지요.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소련에 남기로 선택한 것도 후회는 없습니다."

트레차코프는 리흐테르, 로스트로포비치 등 러시아 거장(巨匠)들과 실내악을 연주하며 실력을 닦았다. 피아니스트 리흐테르는 생전에 자신이 참석했거나 연주한 음악회 기록을 세밀하게 남겼다. 1982년 12월 20일자 메모에서 리흐테르는, 푸시킨미술관에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연주를 듣고 집에 돌아온 후 트레차코프와 비올라 주자 유리 바슈메트 등 4명이 모차르트 현악 사중주를 연주했다고 기록했다. 리흐테르는 '연주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네, 기억나요. 당시엔 리흐테르 집에서 연주자들이 모여 실내악을 많이 했어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트레차코프 음반은 저가 브랜드 브릴리언트에서 발매된 전집 속 몇장이 고작이다. 옛 소련 시절 실황 녹음을 담은 이 음반은 음질이 별로이지만 그의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힘과 기교가 인상적일 만큼 남다르다.
트레차코프는 1990년대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독일 쾰른 음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도 원할 때는 언제든지 러시아에 돌아가 연주회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1986년부터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했고, 다음 달 열리는 14회 콩쿠르에도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심사위원들이 뭘 보냐고요? 기교와 음악성, 무대 매너, 다 보지요. 무대에 올랐을 때 처음엔 다 떨리겠지만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봅니다."
명연주를 빚어내는 손끝이 궁금했다. 트레차코프가 내민 손가락 끝은 뭉툭해서 현(絃)을 안정적으로 짚기 좋겠다 싶었다. "선생님이신 유리 얀켈레비치(옛 소련의 전설적 바이올린 교수)가 제 손가락을 보곤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손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바이올린은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겁니다."
트레차코프는 노바야 러시아 심포니와 함께 하는 첫 내한 연주에서 모차르트 2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브루흐 협주곡을 들려준다. 모차르트 협주곡은 옛 제자이자 아내인 나탈리아 리호포이(47)와 함께 연주한다. "아내는 제자일 때부터 기교와 감성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뛰어난 연주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지금껏 음악으로 서로 교감할 수 있으니 행복한 부부입니다." 트레차코프와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 방에선 아내 리호포이가 연습하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빅토르 트레차코프와 노바야 러시아 스테이트 심포니=1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02) 581-5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