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은 손가락 아닌 머리로 켜는 것이죠"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5.05.11 01:26

[러시아 바이올린 大家 빅토르 트레차코프 첫 내한공연]

66년 차이콥스키콩쿠르 우승
"리흐테르 집에서 연주 즐겨… 잊을 수 없던 행복한 순간"
노바야 러시아심포니와 공연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르 트레차코프(69)는 음악 좀 듣는다는 애호가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국내에선 한 번도 무대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966년 스무 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데 이어 1987년 옛 소련 인민예술가에 오르며 러시아 바이올린의 대부로 자리 잡은 거장이다. 옛 소련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냉전 시대 음악을 위해 서방으로 망명할 때도 조국을 지켰다.

지난 7일 첫 내한 연주를 위해 서울을 찾은 트레차코프는 "1960년대 미국 연주를 갔을 때 남으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망명을 택한 예술가들은 운명이 그랬겠지요.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소련에 남기로 선택한 것도 후회는 없습니다."

러시아 바이올린계 대부로 꼽히는 빅토르 트레차코프는 “1969년부터 일본에는 자주 연주하러 갔지만 한국은 처음이다. 여태까지 초청해준 사람이 없어서…”라고 농담을 던졌다.
러시아 바이올린계 대부로 꼽히는 빅토르 트레차코프는 “1969년부터 일본에는 자주 연주하러 갔지만 한국은 처음이다. 여태까지 초청해준 사람이 없어서…”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덕훈 기자

트레차코프는 리흐테르, 로스트로포비치 등 러시아 거장(巨匠)들과 실내악을 연주하며 실력을 닦았다. 피아니스트 리흐테르는 생전에 자신이 참석했거나 연주한 음악회 기록을 세밀하게 남겼다. 1982년 12월 20일자 메모에서 리흐테르는, 푸시킨미술관에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연주를 듣고 집에 돌아온 후 트레차코프와 비올라 주자 유리 바슈메트 등 4명이 모차르트 현악 사중주를 연주했다고 기록했다. 리흐테르는 '연주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네, 기억나요. 당시엔 리흐테르 집에서 연주자들이 모여 실내악을 많이 했어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트레차코프 음반은 저가 브랜드 브릴리언트에서 발매된 전집 속 몇장이 고작이다. 옛 소련 시절 실황 녹음을 담은 이 음반은 음질이 별로이지만 그의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힘과 기교가 인상적일 만큼 남다르다.

트레차코프는 1990년대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독일 쾰른 음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도 원할 때는 언제든지 러시아에 돌아가 연주회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1986년부터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했고, 다음 달 열리는 14회 콩쿠르에도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심사위원들이 뭘 보냐고요? 기교와 음악성, 무대 매너, 다 보지요. 무대에 올랐을 때 처음엔 다 떨리겠지만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봅니다."

명연주를 빚어내는 손끝이 궁금했다. 트레차코프가 내민 손가락 끝은 뭉툭해서 현(絃)을 안정적으로 짚기 좋겠다 싶었다. "선생님이신 유리 얀켈레비치(옛 소련의 전설적 바이올린 교수)가 제 손가락을 보곤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손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바이올린은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겁니다."

트레차코프는 노바야 러시아 심포니와 함께 하는 첫 내한 연주에서 모차르트 2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브루흐 협주곡을 들려준다. 모차르트 협주곡은 옛 제자이자 아내인 나탈리아 리호포이(47)와 함께 연주한다. "아내는 제자일 때부터 기교와 감성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어요. 뛰어난 연주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지금껏 음악으로 서로 교감할 수 있으니 행복한 부부입니다." 트레차코프와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 방에선 아내 리호포이가 연습하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빅토르 트레차코프와 노바야 러시아 스테이트 심포니=1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02) 581-5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