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08 00:33
[벨기에 안무가 케이르스마커 무용단의 '드러밍', 서울 무대 올라]
"춤은 삶의 경험 축적된 덩어리… 말 안해도 쉽게 공감할 수 있어"
흰 벽 앞에 단발머리 여성 두 명이 나란히 서 있다. 기계음처럼 단조롭고 빠른 멜로디를 따라 그들이 왼팔은 몸에 딱 붙이고 오른팔만 들어올렸다 내리길 반복하면서 빙글빙글 돈다. 두 무용수는 일사불란하게 같은 움직임을 이어가지만 그 움직임이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서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고 환각에 빠져드는 듯하다.
벨기에 출신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Keersmaeker·55)는 1982년 스물둘 어린 나이에 생애 두 번째로 이 작품 '페이즈(Fase)'를 발표했고, 유럽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교차하거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것처럼 무용수의 신체 일부를 사용해 일상에서 흔히 하는 동작의 아름다움을 부각했다. 꼭두각시가 실에 묶여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간결한 이미지를 극대화하면서 강렬한 인상과 세련미를 안긴다.

1998년 발표한 '드러밍'은 미국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Reich)의 같은 제목 음악에 붙인 작품이다. 주황색 무대와 푸른 조명 속에서 남녀 무용수 12명은 자신들이 거대한 북을 두드리는 살아 있는 북채가 된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발을 구르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삶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봉고와 마림바, 글로켄슈필로 이뤄진 타악 소리가 자유로운 춤에 힘을 더한다.

공연을 앞두고 국제전화에서 그녀는 "춤은 생각하는 방식이다. 춤을 통해 우리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구체화할 수 있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밝혀내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항상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춰요. 축하할 때, 죽은 이를 애도할 때, 흥겨울 때도. 그래서 춤과 음악은 삶의 경험이 축적돼 있는 덩어리, 곧 문화예요. 굳이 말 안 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죠." 발표한 지 17년 된 작품이 현재 서울에서 어떤 메시지를 줄까. 그녀는 "17년 전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지금 나는 누군가, 그걸 찬찬히 뜯어보면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로사스 무용단의 '드러밍'(Drumming)=9일 오후 5시, 10일 오후 3시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