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한국이 날 젊게한다'며 뒤풀이 내내 흥겨워했죠"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5.05.07 03:00 | 수정 : 2015.05.07 08:29

[폴 매카트니 전속사진가 김명중]

2008년부터 매카트니와 함께 300회 넘는 전세계 공연장 누벼
"2012 런던올림픽 개막공연 땐 '기념촬영 하자' 설레며 말해
덕분에 '현재를 즐기자'가 내 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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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중
"MJ, 너희 나라 온 기분이 어때? 난 최곤데!"

지난 2일 밤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 출신 폴 매카트니(73)의 내한 공연이 끝난 뒤 강남의 한 호텔서 열린 뒤풀이. 공연 열기에 얼굴이 상기된 매카트니가 엄지손가락을 번쩍 추켜올렸다. 자기 얼굴 크기만 한 카메라를 들고 잠실 종합운동장 무대 주변을 누빈 이 남자는 김명중(43·사진). 폴 매카트니의 공식 사진 아래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MJ'다.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로 그와 함께 300회 이상 전 세계 공연장을 누빈 김명중은 '친구'이자 가장 존경하는 '폴'에게 받아쳤다. "이렇게 뜨거운 관객들이 당신 라이브 맛을 봤으니 앞으로 더 원할 겁니다." 매카트니가 눈을 찡긋했다. "그래서 내가 '시 유 넥스트 타임'이라 했잖아. MJ! 한국 최고다."

사진가 김명중을 6일 그가 사는 미국 LA 할리우드로 향하기 전 만났다. "한국 관객의 반응이 뜨겁다는 얘길 폴 경(sir)이 이전에도 수차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나 봐요. '와우'라는 감탄사가 멈추질 않더라고요. 폴과 함께 뒤풀이에 모인 공연 멤버 20명 정도가 모두 입을 모았죠. 3년 전 멕시코에서 40만명 앞에서 무료 공연을 한 적 있었는데, 그때 열기와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매카트니가 무대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매카트니는 다른 나라 무대에서도 그 나라 국기를 흔들었지만, 예정된 장소에서 시나리오대로 잠깐 포즈를 취했다. 서울에서도 김명중과 미리 입을 맞췄지만, 이날처럼 무대 왼쪽부터 오른쪽을 누비며 함께 환호했던 건 처음이라고 했다. "공연 전 사운드 체크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4시간을 라이브로 부른 것이거든요. 그런데도 힘든 내색 한 번 없었어요. 한국의 에너지가 자기를 젊게 한다며…. 뒤풀이 때도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다며 새벽 3시 전세기로 떠나기 직전까지 흥겨워했을 정도니까요."

김명중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으로 영화 유학을 떠났다가 IMF 외환위기를 만났다. 졸지에 가족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택한 게 사진이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프리랜서로 출발해 영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인 PA의 정식 기자로 채용됐다. 세계적인 디지털 콘텐츠 기업 '게티이미지'의 연예·스포츠 담당 수석 데스크를 거쳐 2007년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가수 빅토리아 베컴, 배우 조니 뎁 등과 일하며 쌓은 이력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마이클 잭슨의 생전 마지막 전 세계 공연 투어의 전속사진가로도 일했다.

대중음악계의‘살아있는 전설’폴 매카트니도 감격했을 땐 보통 사람과 똑같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무대 공연 뒤 전속 사진가 김명중(MJ KIM)씨가‘기념 촬영’을 부탁한 매카트니의 환호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대중음악계의‘살아있는 전설’폴 매카트니도 감격했을 땐 보통 사람과 똑같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무대 공연 뒤 전속 사진가 김명중(MJ KIM)씨가‘기념 촬영’을 부탁한 매카트니의 환호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김씨는 2008년부터 매카트니의 공연·앨범 재킷 촬영 등을 전담하고 있다. /MJ KIM·MPL Communications
최근 열린 서울 공연에서 폴 매카트니가 관객의 호응에 짜릿해하는 모습.‘ 헤이 주드’후렴구인 ‘NA’라고 쓴 피켓들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최근 열린 서울 공연에서 폴 매카트니가 관객의 호응에 짜릿해하는 모습.‘ 헤이 주드’후렴구인 ‘NA’라고 쓴 피켓들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MJ KIM·MPL Communications
유명 사진가이자 매카트니 아내였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포스터를 함께 작업하며 폴 매카트니의 눈에 들었다. "요즘엔 폴의 인간적 모습을 많이 느껴요. 무엇보다 검소하죠. 명품 시계 하나 없고, 미국선 오래된 콜벳을, 영국선 10년도 넘은 렉서스를 타고 다녀요. 옷도 몇 벌 없어요. 허튼 데 돈을 안 쓰죠. 쓸데없다는 걸 아니까. 아이 같은 면도 있어요.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 공연 때는 '기념촬영을 하자'며 그렇게 설레는 거예요!"

위기도 있었다. "함께한 지 3년쯤 됐을 때 폴이 부르는 거예요. 'MJ, 네 사진은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끝이구나, 했죠.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어요. 그때 알았죠. 폴이 그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충격요법'을 썼다는 것을요. 한번 자신의 사람이다 싶으면 '가족'으로 대해요. 공연 중에 기타를 바꿔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과 폴은 25년을 함께했어요." 이전까진 사진 찍고 마음에 들 만한 작품 100컷 정도를 보여준 뒤 신나게 밤을 즐겼다면, 그때부턴 보여주는 사진 수를 반으로 줄였지만, 사진 찍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 변화를 줬다. "네 색깔이 확실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의 모토는 "현재를 즐기자"다. 세계적인 대가들과 작업하며 얻은 삶의 지혜란다. "1000원에 행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1000만원이 있어도 행복할 줄 몰라요.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거든요. 폴은 억만금을 줘도 가족 행사가 1순위입니다. 공연 뒤 공허함을 채워주는 건 가족뿐인 걸 그도 아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