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단 극중 '오민호'가 고통받았죠"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5.06 00:46

[차범석희곡상 수상작, 연극 '푸르른 날에' 주연 배우 이명행]

매회 물고문 당하는 역할 소화
"화해·사랑, 섣불리 말해선 안돼… 當代의 상처 떠올리는 분 있어"

연극 ‘푸르른 날에’에 5년째 출연하는 이명행은 “극중 인물이 사랑하는 여인을 포함한 모든 걸 버리고 출가하는 장면이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연극 ‘푸르른 날에’에 5년째 출연하는 이명행은 “극중 인물이 사랑하는 여인을 포함한 모든 걸 버리고 출가하는 장면이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극중 역할에 몰입할 때면 배우 이명행(39)의 눈동자는 만화 주인공처럼 동글동글하게 변한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연극 '푸르른 날에'(정경진 작, 고선웅 연출)에서 주인공 오민호 역할로 나와, 일부러 "음하하하…" 웃는 과장된 연기를 보이며 무대를 뛰어다닐 때 표정이 꼭 그랬다. 하지만 물고문과 자아분열 연기에 이어 비장한 모습으로 출가하는 장면에 이르면 객석 곳곳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두 시간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의 총량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한마디로 제 인생의 작품입니다." 현재 국내 연극계에서 30대 남성 배우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가 말했다. 제3회 차범석희곡상 수상작으로 2011년 초연 이후 2012년부터 3년 연속 전회 매진을 달성한 '푸르른 날에'는 '필견(必見)의 5월 연극'으로 자리잡았다. 그 동안 빠짐없이 출연했던 이명행은 이번이 오민호로 분하는 마지막 공연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가 내년부터는 새로운 배역진을 무대에 세울 계획이기 때문이다.

5·18을 소재로 한 '푸르른 날에'는 역사 속에서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이 30년의 세월이 지난 뒤 다시금 인연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화해나 사랑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푸르른 날에' 광주 초연 때 어떤 분한테 '연극 보러 오시라'고 했더니 '5·18과 관련된 것은 절대 보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이 연극을 통해서, 꼭 오래 전 일만이 아니라 당대(當代)의 상처와 맞닥뜨리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중앙대 불문학과 95학번인 그는 2006년 '샤이닝 시티'로 늦은 데뷔를 했다. '뜨거운 바다' '칼로 막베스' '날아다니는 돌' 등에 출연했고, 지난해 '히스토리 보이즈'와 '프라이드'에선 여성 관객을 모으는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최근엔 '한밤의 세레나데'로 뮤지컬에도 데뷔했다. "연극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하도 권유를 하기에 출연했는데 노래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자꾸 하다 보니 마이크로 목소리를 내는 연기에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그래도 5월이면 다시금 '푸르른 날에'의 오민호가 되는 일정을 반복했다. 매회 실제로 모진 물고문을 당하는 연기에 대해서 그는 "고문 담당자 역을 맡은 선배 배우가 사정을 봐 주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큼 힘든 것은 아니다"며 "이명행은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오민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무게감에 짓눌리면 연기를 할 수 없습니다. 장면마다 대본에 충실하고, 슬픔을 내면에 쌓되 표현하는 것은 유보해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겠지요."


▷연극 '푸르른 날에' 3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577-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