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04 03:00 | 수정 : 2015.05.04 12:55
[폴 매카트니 첫 내한 공연]
폴, 빗속 관객 합창에 "대박" 외쳐… 공연 후 대형 태극기 휘두르기도
폴 매카트니(73)의 첫 내한 공연이 2일 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다. 비틀스로 데뷔한 지 55년 만이었다. 그는 더 이상 미소년이 아니었고 목청은 이따금 바이브레이션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음반과 영상으로만 봐왔던 비틀스가 왜 그렇게 위대한 밴드인지 깨닫기엔 족하고도 남는 무대였다.
"안녕하세요, 서울!" "한국 와서 좋아요" 같은 우리말을 꼼꼼하게 준비해 온 그가 'Can't Buy Me Love'를 부를 때 무대 뒤엔 1960년대 비틀스 영상이 흘렀다. 스타디움을 메운 관객은 거의 다 일어났다. 조용필·이문세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 엘튼 존이 이 무대에 올랐지만 내내 스탠딩인 공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매카트니는 자신의 주(主) 악기인 베이스를 비롯해 기타와 피아노를 번갈아가며 연주했다. 'Paperback Writer'를 부를 땐 1966년 이 노래를 녹음하고 공연할 때 썼던 기타로 바꿨다. '에피폰 카지노' 기타 1962년 모델이었다. 한국 관객이 비틀스의 기타 사운드를 처음 라이브로 듣는 순간이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부르자, 관객들은 일제히 빨간 하트가 그려진 종이를 들어 올렸다. 팬클럽에서 미리 준비한 것이다. 매카트니는 '이럴 수가!' 하는 얼굴로 한참 객석을 바라보더니 "You're too good(여러분 정말 대단하군요)"이라고 말했다. 비틀스 해체 후 첫 솔로 앨범의 명곡 'Maybe I'm Amazed'를 "린다(작고한 전처)에게 바치는 노래"라며 부른 그는 환호를 멈추지 않는 관객에게 영어와 한국어로 각각 말했다. 영어는 "Fantastic!"이었고 한국어는 "대~박!"이었다.
"존 레넌에게 바치는 노래"라며 부른 'Here Today'는 1982년 발표한 곡이다. 존과 평생 애증으로 얽혔던 그였지만 "만약 내가 널 정말 사랑했다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말한다면/ 넌 오늘 여기 있는 거야/ 너는 내 노래 안에 있으니까" 하는 가사는 이날 따라 무척 감상적으로 들렸다.
하이라이트는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부를 때였다. 사람들이 록 페스티벌 또는1960년대 서양 무도회처럼 춤을 췄다. 비틀스 노래의 단순한 멜로디가 어떻게 '미국을 침공했다'고 했는지 그 위력을 실감했다.
마지막 곡으로 '헤이 주드'를 부를 땐 "나나나/ 나나나나" 하는 후렴에 맞춰 객석에서 'NA'라고 쓴 종이를 일제히 좌우로 흔들었다. 발표한 지 50년 되도록 함께 부르는 그 노래가 바로 클래식이었다. 수만 관객이 빗속에서 흰색 우비를 입고 "나나나"를 부르는 모습은 무슨 사교(邪敎) 집단의 초혼제(招魂祭) 같았다. 기껏해야 일어나 손뼉 치는 일본에서 매카트니는 이런 모습을 못 봤을 것이다. 그는 "처음 온 한국에서 내 인생 최고의 환호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 번 더 월드투어를 한다면 한국에 꼭 다시 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형 태극기와 유니언 잭을 휘날리며 퇴장했던 그는 반주 없이 '나나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첫 앙코르로 세 곡을 부른 매카트니는 두 번째 앙코르 무대에서 끝내 "한국 룰즈(rules·최고)!"라고 외쳤다. 이어 '예스터데이'로 마지막 앙코르를 시작했다. 그 가사가 이날 공연을 절묘하게 압축했다. "그때는 아무 걱정 없었는데/ 오 그때 정말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