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연기 자제했더니 진짜 먹혔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4.23 02:17

[연극 '월남스키부대'서 주연 맡은 배우 서현철]

"월남에선 엄청 큰 구렁이가 아이들을 태우고 통학시켜"
능청스러운 허풍 연기 선보여

"마지막 장면에서 '제삿밥 먹으러 왔다'는 말을 꺼내면 객석에서 갑자기 흐느껴 우는 분도 있어요. 감정을 꾹꾹 눌러서 연기하는 장면인데…. 그래서 한번은 저도 말하면서 살짝 울었습니다. 하핫."

요즘 대학로에서 '제일 웃기는 연극'이 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배우 서현철(50)이 주인공 김 노인으로 나오는 '월남스키부대'(심원철 작·연출)를 꼽는다. 치매기가 있는 김 노인은 베트남전 참전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월남에서 스키부대에 있었다" "월남에선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아이들을 태우고 통학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떤다.

여섯 살 딸을 키우고 있는 서현철은 “연극 ‘월남스키부대’에서 김 노인이 ‘기저귀 몇 개 갈아주니 학교 가더라’며 혼자 아들을 키운 게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대사가 무척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여섯 살 딸을 키우고 있는 서현철은 “연극 ‘월남스키부대’에서 김 노인이 ‘기저귀 몇 개 갈아주니 학교 가더라’며 혼자 아들을 키운 게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대사가 무척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사실 대본을 처음 받아보곤 '잘못하면 개그콘서트처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웃기는 연기를 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제대로 먹혔다. 서현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배꼽을 잡던 관객은 주인공의 환상으로 무대에 나오던 '김 일병'과 김 노인의 아들 '아군'의 진짜 관계가 밝혀지면서 숙연해지고, 부성애와 가족애를 말하는 결론에 이르면 눈물을 쏟아낸다. "이렇게 초등학생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들 재미있어 하는 연극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멀쩡한 회사에 3년 다니던 서현철은 '매일 똑같이 출퇴근하는 일상'에 회의를 느꼈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연극판으로 뛰어들었다. 집에선 "정신이 나간 것 같으니 기도원에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굽히지 않았다. 1994년 극단 작은신화의 '황구도'로 데뷔한 이후 '돐날' '판타스틱스' 같은 작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코믹 연기는 서현철'이란 말까지 듣게 됐다. 그런데 2010년 첫 TV 드라마인 '신데렐라 언니'에선 못된 술주정뱅이로 나와 공분을 샀다. "방송국에선 처음엔 코믹한 배역으로 섭외를 하더니 '저 얼굴로는 악역을 해야 해'라면서 역할 성격을 바꿔 버리더라고요."

서현철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요즘처럼 바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월남스키부대'에 더블캐스트로 출연하면서 다음 달부터는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도 동시에 나와야 한다. 처음으로 노래 부르는 역할을 맡은 뮤지컬 '그날들'의 지방 공연도 계속되고 있는데, 드라마 '징비록'에는 이일 장군 역할로 나오고 있다. 그래도 제일 재미있는 것은 역시 연극이다. "목소리가 객석 맨 뒤에까지 들릴 수 있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연기거든요." 서현철은 "'좋은 연기자'라는 말보다는 '좋은 사람인데 연기도 잘하더라'는 말을 더 듣고 싶다"고 했다.


▷연극 '월남스키부대' 6월 14일까지 대학로 TOM2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