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피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그의 양면성 보여준다"

  • 뉴시스

입력 : 2015.04.20 18:42

"곧 세계적인 명성의 한국 오케스트라 등장할 것"
"베토벤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이반 피셔(64)는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열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 이안 피셔'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짚었다.

그는 이날부터 2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의 악단으로 통하는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 사이클을 돈다.

베토벤은 매우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확인했다. "음악에서 갑자기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 극단적인 성격이 있어 음악 역시 극단적으로 거칠거나 극단적으로 놀라고나 극단적으로 서정적이다."

하지만 마음은 굉장히 따뜻하다고 했다. "그의 넘치는 사랑을 음악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정적이면서 거친 성격의 소유자였다. 청중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베토벤을 알고 싶으면 이번 모든 공연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베토벤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다"면서 "굉장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계 톱 클래스의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가 단기간에 베토벤 교향곡 전 9곡을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연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파보 예르비-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사이클을 통해 베토벤 전곡의 진수를 맛본 적이 있다. 이번 공연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최초 베토벤 교향곡 전곡 사이클이자 한국 단독 프로젝트다.

피셔는 "작년과 재작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똑같은 연주를 했다. 3년간에 걸친 여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서 나 또한 여러 발견을 했다. 톱 클래스의 오케스트라와 작업이라 즐겁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다. 베토벤 교향곡을 많이 연주하고 지휘해왔지만, 매번 새로운 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끊겼던 헝가리 출신 명지휘자의 계보를 잇고 있는 피셔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하고 영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을 석권하는 중이다. 1983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를 조직한 뒤 이를 이끌고 있다. 미국의 5대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서도 음악 감독직을 요청받았으나 거절하고 조국인 헝가리를 위해 BFO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는 약 10년 전부터 객원 지휘로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오케스트라마다 연주하는 베토벤의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베토벤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음악"이라면서 "독일 작곡가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9번 교향곡에 그런 점이 나타난다. 그래서 베토벤의 곡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의 국적은 상관없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베토벤을 특별히 해석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작곡가와 그 음악을 듣는 청중에게 맡길 뿐"이다. 자신은 작곡가를 이해하려고 하고, 음에 대해서는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파악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음악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거다. 베토벤의 성격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의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

20일 베토벤교향곡 No.1 & No.2 & No.5(운명), 21일 베토벤교향곡 No.3(영웅) & No.4, 22일 베토벤교향곡 No.6(전원) & No.7, 23일 베토벤교향곡 No.8 & No.9(합창)를 들려준다.

"베토벤은 여러 방향으로 감정을 표출했다. 내면적으로 들어가서는 고독하고 외로웠다. 4번, 6번, 8번에서는 이런 면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켰다. 5번(운명)과 9번(합창)의 경우가 그렇다. 어떤 때는 굉장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다가, 어떤 때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번에 베토벤 전곡을 듣게 되면 그의 양면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셔가 가장 세계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고 강조한 9번은 합창을 동반, 이전 교향곡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다. 8번이 완성된 시기는 1812년, 9번이 완성된 시기는 1824년으로 그 공백도 차이가 난다.

"9번 교향곡이 작곡될 당시에는 시대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귀족 사회가 없어졌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일반 시민들이 세계를 장악하게 됐다. 하지만 음악가들은 귀족을 섬기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그런 경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열렸으니, 어떻게 음악이 존재해야 하는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베토벤은 1~8번 교향곡에서 답을 찾았고, 9번에 해결 답안이 생겨났다. 교향곡이 아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합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같이 합창하는 것, 그래서 인간의 목소리를 교향곡에 접목했다."

뉴욕에서 9번을 연주할 때 청중 사이에 합창 단원을 앉힌 뒤 공연 도중 그들을 일으켜 합창하게 했다는 그는 "베토벤이 의도했던 합창에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의 청중들이 표를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베토벤이 음악으로 추구한 것은 결국 유토피아라고 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말이다. 아울러 곧 그런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음악은 사람들을 융화시키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피셔가 한국을 찾은 것은 2010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이후 5년 만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언제나 좋은 시간"이라면서 "한국 음식을 굉장히 좋아해 호텔 조식으로 매일 한식으로 준비해달라고 이야기한다"고 웃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굉장한 흥미가 있다고 알렸다. "좋은 연주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미국 음악 명문인) 줄리아드 음악원만 봐도 절반가량이 한국 학생이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 유럽과 클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솔로이스트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다음에 오케스트라 차례가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머지않아 한국 오케스트라들이 한국 솔로이스트 수준의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많은 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 제자를 양성하면 앞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면 이미 한국 오케스트라의 명성은 자자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유로운 얼굴에 호기심이 많은 그는 오히려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서 "이번 콘서트에 대한 한국 청중들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다"고 웃기도 했다. "통역을 듣는 게 즐겁다. 한국말의 아름다운 멜로디 때문이다. 리듬감도 있고, 한국말로 작곡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7만~38만원. 빈체로. 02-599-5743

한편 127년 전통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3년 만에 내한공연한다. 2012년 정명훈 서울시향의 지휘로 들려준 연주를 포함해 지금까지 네 차례 내한공연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콘세르트허바우는 네덜란드어로 '콘서트홀'을 뜻한다. 1888년 암스테르담의 공연장 콘세르트허바우의 전속 오케스트라로 창립되자마자 유럽 최정상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까지 1100여 개 이상의 음반과 영상물을 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1년 예산은 2800만유로(약 326억원)다. 독립적인 재단법인이나 시와 정부에서 각자 600만 유로(약 69억원)씩의 지원을 받고 있다. 티켓 판매와 투어, 미디어·개인 스폰서 등으로 나머지 1600만 유로(약 186억원)의 예산을 충당한다.

초대 음악감독 빌럼 케스(1888~1895)를 비롯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961~1988), 리카르도 샤이(1988~2004), 마리스 얀손스(2004~2014) 등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들이 거쳤다. 8월부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다니엘레 가티가 이끌게 된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기획·투어 매니저인 프라우케 베른트는 자신들의 명성이 유지되는 비결에 대해 "단원들의 참여"를 꼽았다. "단원들로 구성된 예술위원회와 조직이 있는데 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매니지먼트만의 의사 결정이 아닌 단원들의 참여와 열정으로 우리 오케스트라가 특별하게 됐다."

새로운 연주자들 받아들이는데 열려 있는 점도 꼽았다. 한국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내년 시즌부터 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참여하는 제2 바이올린의 이지원 씨가 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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