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저버려도… 아버지는 아버지"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4.20 01:52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서 주연 맡은 배우 주인영]

2006년 초연부터 경숙役 10년
"공연마다 아버지 대하는 느낌… 화가 나다가도 어떨 땐 불쌍해"

"아부지, 아배요, 어딜 그래 갑니까? 아직도 그래 갈 데가 그리 많이 남았습니까?"

객석의 연령층이 다양한 대학로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박근형 작·연출)의 마지막 장면. 떠나는 아버지를 딸 경숙이가 붙잡을 때 많은 관객은 눈물을 쏟아낸다. 이 연극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다. 장구 하나 둘러메고 처자식을 저버린 채 평생을 밖에서 떠도는 아버지다. 그런데도 딸은 끝까지 그를 놓지 않으려 한다. 김영필, 고수희, 황영희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나오지만, 특히 이 장면은 2006년 초연 때부터 줄곧 경숙이 역을 맡은 배우 주인영(37)의 열연에 힘을 얻는다.

"공연 때마다 그 장면에서 느낌이 조금씩 달라요. 어떤 날은 아버지가 불쌍해 보이고, 어떤 날은 화가 나고…." 주인영은 "초연 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새 엄마가 되고 보니 아버지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경숙이 역으로 나오는 주인영은 “실제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돼 보니 극 중 아버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경숙이 역으로 나오는 주인영은 “실제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돼 보니 극 중 아버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이 작품으로 주인영은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 등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동안인 덕에 지난해에도 일본 연출가 노다 히데키의 문제작 '반신'에서 어린아이 역할을 맡았다. 연습 도중 급성 맹장염에 걸려 개막이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지만, '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극 중 주인공의 경험을 실제로 해 본 셈이었다.

사실 경숙이 아버지의 역마살은 주인영 본인에게 해당하는 얘기였다. 상명대 연극영화과 시절 무작정 유럽으로 떠나 여행을 했다. "IMF 사태 때라 빈털터리였는데요. 불쌍해 보였는지 거지들이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주더라고요." 스페인 집시 마을이나 티베트도 돌아다녔다. 2002년 극단 골목길에 들어가 연출가 박근형으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연극배우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박근형 선생님이 무대에서 배우를 편하게 놔두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처음엔 아주 힘들었어요."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초연으로부터 9년이 지나고 보니 관객 반응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젊은 관객들은 그런 아버지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어떤 분은 화가 나서 박수도 안 쳐요. 반대로 나이 드신 분은 멍하니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계시기도 하죠. '그래~ 딸이 그래야지'라고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요."

경숙이의 그 대사는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아버지한테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뭔가에 계속 치이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인데, 수백 회 출연했는데도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그만큼 알 수 없는 마력(魔力)을 지닌 연극이라는 것이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26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공연 시간 90분, (02)766-6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