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0 14:01
내달 2일 첫 내한공연 갖는 폴 매카트니
작년 공연 1주 앞두고 취소
바이러스에 감염돼 무산
"내 인생에서 아직
못한 일이 있다면
한국 공연뿐"
악보 읽을 줄 모른다
기타 배우고 음반 들으며
노래하는 법 배워
악보에 얽매였더라면
더 좋은 음악 못했을 것
비틀스 10년, 매카트니 45년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 등
수 많은 곡 빌보드 1위로
"스태프가 '강남 스타일' 가르쳐주려 해… 나도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꿈에 듣고 만든 '예스터데이'
깨자마자 멜로디 만들어…
3000번 이상 리메이크 돼
마빈 게이·레이 찰스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불러
20만명 넘은 서울 '린다展'
한국 내 사진展 최고 기록
정말 기쁘고 멋진 경험
전시회 꼭 가보고 싶어
그럴 시간 있어야 할텐테…
진짜 폴 사망說 물었더니…
"(침묵후)사실 난 가짜예요
폴 대신 그 역할하죠
가짜인데도 잘하고 있죠?
그럼 한국 공연 때 만나요"
폴 매카트니와 전화 통화한다는 건 음악기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豪奢)겠지만 그 길은 그만큼 멀고도 험했다. 5월 2일 오후 8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첫 내한무대에 오르는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이 지난 1월이었다. 가타부타 아무 소식 없던 그쪽에서 3월 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이번 주 내로 영국에서 전화가 갈 것"이라며 "몇 일 몇 시에 할지는 모르니 기다리라"고 했다. 이후 두 번의 비슷한 약속과 취소가 반복됐고 3월 27일 저녁 드디어 그의 매니저가 전화했다. "오늘은 꼭 전화한다. 시간은 15분"이라며 "비틀스 관련 질문은 줄이고 근황을 물어달라"고 주문했다. 전화기 앞 지루한 기다림 끝 비틀스가 싫어지려고 할 때쯤 전화가 울렸다. 폴 매카트니였다. 투항(投降)하듯 수화기에 매달렸다. 통화는 23분간 이어졌다.
폴 매카트니는 집에서 나와 공항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전화를 했다. "지금 뉴욕에 갔다가 일본에 들러 한국에 간다"며 "다시 말해 지금 한국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 5월 예정돼 있던 첫 내한공연을 1주일 앞두고 건강 때문에 취소했다.
―작년 공연이 취소돼 다들 섭섭해했죠.
"나도 아주 섭섭했어요. 한국 공연을 무척 기대했는데 일본에서 갑자기 아프게 됐지 뭡니까. 이번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지금 내 건강은 100% 완벽합니다."
―비틀스 전성기 때 일본을 여러 차례 왔었고 홍콩이나 필리핀도 갔었는데 한국은 왜 이제서야 옵니까.
"글쎄요.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 공연 기획자도 궁금해 해요. 그때 우린 한국이란 나라를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 당시 한국에 적당한 공연장이나 기획사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는 강하지 않은 억양의 영국식 영어로 말했다. 존 레넌과 함께 비틀스란 위대한 전륜구동 밴드의 앞바퀴 두 개 중 하나였던 그는 음반 2억장을 팔아치운 현존 최고의 팝스타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이나 헌액됐으며 그래미상 21개를 받았고 32곡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렸다. 199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騎士) 작위를 받아 '매카트니 경(卿)'으로 불리는 그는 지겹도록 들었을 낡은 질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대답했고 유머 감각도 훌륭했다. "내 인생에서 아직 못한 일이 있다면 한국 공연뿐(One thing I haven't done in my career is Korea)"이라고 했다. 번안(飜案)하면 "아직 부르지 못한 '한 곡'이 있다면 '한국'이란 노래"쯤 되는 재치다.
―올해 73세인데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옵니까.
"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아요. 나를 보러 온 사람들 앞에서 베이스와 기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 말이죠. 좋으니까 계속 할 수밖에요. 가끔 '아직도 공연하느냐.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나는 '아니, 점점 더 흥미진진해.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대답하죠. 내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날 보고 싶어하는 한 파티를 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스무 살 되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히트곡들을 쏟아냈는데 그 이전의 어떤 경험에서 그런 멜로디가 나왔습니까.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어요.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걸 보며 나도 음악을 좋아하게 됐죠. 그 뒤론 라디오와 TV, 그리고 음반을 사서 들었어요. 그렇게 음악을 배웠죠. 내가 10대였을 때 로큰롤이란 음악이 탄생했는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이어서 정말 좋아했어요. 존(존 레넌)이나 나나 버디 홀리 같은 초기 로큰롤 뮤지션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죠. 버디 홀리처럼 곡을 쓰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어요. 존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노래 몇 곡을 써서 갖고 있었어요. 그럼 대개 '아, 그래? 한번 들어볼까?' 할텐데 존은 '그래? 나도 몇 곡 쓴 게 있는데'라고 했죠. 존과 나의 길고 끈끈한 우정은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매카트니는 15세 때 레넌을 처음 만났다. 당시 레넌은 '쿼리멘'이란 밴드 리더였고 이것이 비틀스의 전신이 됐다.
버디 홀리(1936~1959)는 1950년대 중반 로큰롤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싱어송라이터다. 비틀스 멤버 모두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Beatles'란 이름도 버디 홀리의 밴드 이름(Crickets·귀뚜라미들)을 본뜬 'Beetles(딱정벌레들)'로 했다가 중간 철자 e를 a로 바꾼 것이다. 로큰롤 개척자엔 버디 홀리를 비롯해 척 베리(89)와 리틀 리처드(83) 등 여럿이 있지만 매카트니는 버디 홀리를 콕 집어 말했다.
비틀스는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됐다. 존 레넌(1940~80)과 폴 매카트니가 주축이 됐고 조지 해리슨(1943~2001)과 링고 스타(75)가 차례로 영입되면서 진용을 갖췄다. 1962년 최초의 히트곡 '러브 미 두(Love Me Do)'로 '끝내주는 4인조(The Fab Four)'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64년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가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 빅히트를 치면서 '영국 음악의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란 말을 만들어냈다.
―아버지한테서 열네 살 생일 선물로 받은 트럼펫을 기타로 바꿨죠. 후회한 적 없습니까.
"아니에요. 나에겐 기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기타 치면서는 노래할 수 있지만 트럼펫 불면서 노래할 수는 없잖아요. 요즘도 트럼펫 연주자를 만나면 '한번 연주해봐도 되느냐'고 묻죠. 그리고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흑인영가)'을 연주해요. 그 곡밖에 못 불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해요."
"나도 아주 섭섭했어요. 한국 공연을 무척 기대했는데 일본에서 갑자기 아프게 됐지 뭡니까. 이번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지금 내 건강은 100% 완벽합니다."
―비틀스 전성기 때 일본을 여러 차례 왔었고 홍콩이나 필리핀도 갔었는데 한국은 왜 이제서야 옵니까.
"글쎄요.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 공연 기획자도 궁금해 해요. 그때 우린 한국이란 나라를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어쩌면 그 당시 한국에 적당한 공연장이나 기획사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는 강하지 않은 억양의 영국식 영어로 말했다. 존 레넌과 함께 비틀스란 위대한 전륜구동 밴드의 앞바퀴 두 개 중 하나였던 그는 음반 2억장을 팔아치운 현존 최고의 팝스타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이나 헌액됐으며 그래미상 21개를 받았고 32곡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렸다. 199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騎士) 작위를 받아 '매카트니 경(卿)'으로 불리는 그는 지겹도록 들었을 낡은 질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대답했고 유머 감각도 훌륭했다. "내 인생에서 아직 못한 일이 있다면 한국 공연뿐(One thing I haven't done in my career is Korea)"이라고 했다. 번안(飜案)하면 "아직 부르지 못한 '한 곡'이 있다면 '한국'이란 노래"쯤 되는 재치다.
―올해 73세인데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옵니까.
"나는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아요. 나를 보러 온 사람들 앞에서 베이스와 기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 말이죠. 좋으니까 계속 할 수밖에요. 가끔 '아직도 공연하느냐.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나는 '아니, 점점 더 흥미진진해.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대답하죠. 내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날 보고 싶어하는 한 파티를 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스무 살 되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히트곡들을 쏟아냈는데 그 이전의 어떤 경험에서 그런 멜로디가 나왔습니까.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어요.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걸 보며 나도 음악을 좋아하게 됐죠. 그 뒤론 라디오와 TV, 그리고 음반을 사서 들었어요. 그렇게 음악을 배웠죠. 내가 10대였을 때 로큰롤이란 음악이 탄생했는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이어서 정말 좋아했어요. 존(존 레넌)이나 나나 버디 홀리 같은 초기 로큰롤 뮤지션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죠. 버디 홀리처럼 곡을 쓰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어요. 존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노래 몇 곡을 써서 갖고 있었어요. 그럼 대개 '아, 그래? 한번 들어볼까?' 할텐데 존은 '그래? 나도 몇 곡 쓴 게 있는데'라고 했죠. 존과 나의 길고 끈끈한 우정은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매카트니는 15세 때 레넌을 처음 만났다. 당시 레넌은 '쿼리멘'이란 밴드 리더였고 이것이 비틀스의 전신이 됐다.
버디 홀리(1936~1959)는 1950년대 중반 로큰롤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싱어송라이터다. 비틀스 멤버 모두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Beatles'란 이름도 버디 홀리의 밴드 이름(Crickets·귀뚜라미들)을 본뜬 'Beetles(딱정벌레들)'로 했다가 중간 철자 e를 a로 바꾼 것이다. 로큰롤 개척자엔 버디 홀리를 비롯해 척 베리(89)와 리틀 리처드(83) 등 여럿이 있지만 매카트니는 버디 홀리를 콕 집어 말했다.
비틀스는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됐다. 존 레넌(1940~80)과 폴 매카트니가 주축이 됐고 조지 해리슨(1943~2001)과 링고 스타(75)가 차례로 영입되면서 진용을 갖췄다. 1962년 최초의 히트곡 '러브 미 두(Love Me Do)'로 '끝내주는 4인조(The Fab Four)'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64년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가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 빅히트를 치면서 '영국 음악의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이란 말을 만들어냈다.
―아버지한테서 열네 살 생일 선물로 받은 트럼펫을 기타로 바꿨죠. 후회한 적 없습니까.
"아니에요. 나에겐 기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기타 치면서는 노래할 수 있지만 트럼펫 불면서 노래할 수는 없잖아요. 요즘도 트럼펫 연주자를 만나면 '한번 연주해봐도 되느냐'고 묻죠. 그리고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흑인영가)'을 연주해요. 그 곡밖에 못 불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해요."
―비틀스 곡 '예스터데이(Yesterday)'는 꿈 속에서 들은 멜로디라던데요.
"맞아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방금 꿈에서 들은 멜로디가 생각나는 거예요. 잊어버릴까봐 피아노로 달려가 쳐봤더니 아주 좋은 멜로디였죠. 나는 '분명히 최근에 어디선가 들었던 노래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존과 조지, 링고, 조지 마틴(비틀스 프로듀서)에게 '이 노래가 뭔지 알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다들 '처음 듣는데, 네 노래 아냐?' 하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혹시 표절곡이 될까봐 걱정했거든요. 가사는 포르투갈 여행 때 차 안에서 썼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예요. 참 대단하죠? 그렇게 만든 노래가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잖아요. 아, 그날의 꿈, 그 멜로디와 가사,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그 노래가 세계적으로 2000번 이상 리메이크 됐죠.
"숫자는 똑바로 합시다. 3000번 이상이에요. 하하."
―그 중에 특히 몇 개를 꼽는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빈 게이가 그 노래를 불렀어요. 아름다웠죠. 레이 찰스도 불렀고요. 대단했어요. 프랭크 시내트라도 부르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불렀어요. 그런 빅 스타들이 나의 소박한 노래를 불러줬어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스 노래인 '예스터데이'는 영국 BBC와 미국 MTV,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꼽은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꼽히기도 했다. 매카트니가 쓴 이 노래는 비틀스 시절 관행대로 작곡가를 '레넌―매카트니'로 표기했었다. 매카트니는 지난 2000년 이것을 '매카트니―레넌'으로 고치려고 했으나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의 반대로 무산됐다.
―비틀스는 10년 만에 해체(1970)했고 이후 폴 매카트니로 45년을 활동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비틀스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괜찮아요. 사람들은 내가 비틀스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비틀스는 내게 정말 대단한 추억이기 때문에 나는 좋아요. 비틀스 후에 내가 밴드 '윙스'를 시작할 때는 비틀스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자제하기도 했어요. 윙스에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윙스가 성공한 뒤론 다시 비틀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은 비틀스 이야기를 좋아해요. 정말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죠. 비틀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밴드 중 하나였으니까요."
―당신은 악보를 읽거나 쓰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악보를 못 쓰면서 어떻게 실내악 편곡을 하고 오케스트라 곡도 썼습니까.
"그런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어요. 내가 컴퓨터에 곡을 쓰면 컴퓨터가 악보로 옮겨줘요. 아주 유용한 방법이죠. 컴퓨터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거니까요. 물론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에요. 컴퓨터가 나를 잘못 이해해서 악보를 잘못 쓰기도 해요. 기계는 기계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컴퓨터를 살살 어르고 달래기도 해야 돼요. 가끔은 발로 차기도 하죠. 하하."
매카트니의 설명은 199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한 '뮤직 시퀀서(Music Sequencer)'란 프로그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하면 동시에 여러 개 음을 눌러도 모든 음을 분석해 악보로 정리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페퍼상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비틀스 후기작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는 비틀스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매카트니의 오케스트라 편곡 능력이 만개(滿開)했다. 이후 매카트니는 자신의 밴드 윙스 음악과 솔로 앨범에서, 또는 영국 관현악단과 꾸준히 클래식 음악 작업을 해왔다.
―나머지 비틀스 멤버들도 모두 악보를 읽지 못했죠.
"그래요. 그때 대부분 밴드들이 악보를 쓰거나 읽지 못했어요. 그게 우리가 음악하는 방식이었어요. 기타를 먼저 배우고 음반을 들으면서 노래하는 법을 배웠죠. 우리는 기타 코드를 찾아내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악보엔 음표와 음악 기호, 가사가 가득했지만 코드는 몇 개 없었어요. 그래서 우린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냈어요. 만들고 싶은 사운드를 내려고 상의하면서 서로 코드를 알려주기도 했죠. 악보를 볼 필요가 없었다고요. 악보를 볼 줄 안다면 더 연주를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악보에 얽매이면 좋은 음악을 할 수 없어요. 비틀스도 그랬고 롤링 스톤스도 마찬가지예요. 그 당시 모든 우리 친구들은 지금도 악보를 읽지 않아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음악 정보가 악보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거든요. 음악에 더 가깝고 음악이 내 일부분이 돼 있는 거죠. 만약 음악이 악보에만 있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맞아요.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방금 꿈에서 들은 멜로디가 생각나는 거예요. 잊어버릴까봐 피아노로 달려가 쳐봤더니 아주 좋은 멜로디였죠. 나는 '분명히 최근에 어디선가 들었던 노래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존과 조지, 링고, 조지 마틴(비틀스 프로듀서)에게 '이 노래가 뭔지 알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다들 '처음 듣는데, 네 노래 아냐?' 하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혹시 표절곡이 될까봐 걱정했거든요. 가사는 포르투갈 여행 때 차 안에서 썼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예요. 참 대단하죠? 그렇게 만든 노래가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잖아요. 아, 그날의 꿈, 그 멜로디와 가사,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그 노래가 세계적으로 2000번 이상 리메이크 됐죠.
"숫자는 똑바로 합시다. 3000번 이상이에요. 하하."
―그 중에 특히 몇 개를 꼽는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빈 게이가 그 노래를 불렀어요. 아름다웠죠. 레이 찰스도 불렀고요. 대단했어요. 프랭크 시내트라도 부르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불렀어요. 그런 빅 스타들이 나의 소박한 노래를 불러줬어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스 노래인 '예스터데이'는 영국 BBC와 미국 MTV,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꼽은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꼽히기도 했다. 매카트니가 쓴 이 노래는 비틀스 시절 관행대로 작곡가를 '레넌―매카트니'로 표기했었다. 매카트니는 지난 2000년 이것을 '매카트니―레넌'으로 고치려고 했으나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의 반대로 무산됐다.
―비틀스는 10년 만에 해체(1970)했고 이후 폴 매카트니로 45년을 활동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비틀스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괜찮아요. 사람들은 내가 비틀스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비틀스는 내게 정말 대단한 추억이기 때문에 나는 좋아요. 비틀스 후에 내가 밴드 '윙스'를 시작할 때는 비틀스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자제하기도 했어요. 윙스에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윙스가 성공한 뒤론 다시 비틀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은 비틀스 이야기를 좋아해요. 정말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죠. 비틀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밴드 중 하나였으니까요."
―당신은 악보를 읽거나 쓰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악보를 못 쓰면서 어떻게 실내악 편곡을 하고 오케스트라 곡도 썼습니까.
"그런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어요. 내가 컴퓨터에 곡을 쓰면 컴퓨터가 악보로 옮겨줘요. 아주 유용한 방법이죠. 컴퓨터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거니까요. 물론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에요. 컴퓨터가 나를 잘못 이해해서 악보를 잘못 쓰기도 해요. 기계는 기계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컴퓨터를 살살 어르고 달래기도 해야 돼요. 가끔은 발로 차기도 하죠. 하하."
매카트니의 설명은 199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한 '뮤직 시퀀서(Music Sequencer)'란 프로그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하면 동시에 여러 개 음을 눌러도 모든 음을 분석해 악보로 정리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페퍼상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비틀스 후기작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는 비틀스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앨범에서 매카트니의 오케스트라 편곡 능력이 만개(滿開)했다. 이후 매카트니는 자신의 밴드 윙스 음악과 솔로 앨범에서, 또는 영국 관현악단과 꾸준히 클래식 음악 작업을 해왔다.
―나머지 비틀스 멤버들도 모두 악보를 읽지 못했죠.
"그래요. 그때 대부분 밴드들이 악보를 쓰거나 읽지 못했어요. 그게 우리가 음악하는 방식이었어요. 기타를 먼저 배우고 음반을 들으면서 노래하는 법을 배웠죠. 우리는 기타 코드를 찾아내면서 음악을 만들었어요. 악보엔 음표와 음악 기호, 가사가 가득했지만 코드는 몇 개 없었어요. 그래서 우린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냈어요. 만들고 싶은 사운드를 내려고 상의하면서 서로 코드를 알려주기도 했죠. 악보를 볼 필요가 없었다고요. 악보를 볼 줄 안다면 더 연주를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악보에 얽매이면 좋은 음악을 할 수 없어요. 비틀스도 그랬고 롤링 스톤스도 마찬가지예요. 그 당시 모든 우리 친구들은 지금도 악보를 읽지 않아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음악 정보가 악보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거든요. 음악에 더 가깝고 음악이 내 일부분이 돼 있는 거죠. 만약 음악이 악보에만 있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솔로 활동을 하면서 스티비 원더나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곡을 만들어 부르고 작년에는 카니에 웨스트, 리하나와도 함께 곡을 발표했죠.
"내 노래를 내 밴드와 작업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어요.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거든요. 마이클이나 스티비, 카니에, 리하나는 모두 대단한 재능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하면 정말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거죠. 항상 그런 작업은 재미 있어요. 내가 해온 음악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카니에와 작업할 때는 노래를 함께 쓰고 내가 피아노를 쳤는데 갑자기 카니에가 리하나를 참여시켰어요. 그런 과정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1982년 매카트니가 스티비 원더와 함께 만들고 부른 노래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Ebony And Ivory)'는 단박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Ebony)과 흰 건반(Ivory)을 뜻하면서 인종 간 화합을 노래한 이 곡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마이클 잭슨의 명반 '스릴러'에서 '더 걸 이즈 마인'을 함께 불러 빌보드 2위에 올랐고, 이듬해 자신의 앨범에서는 '세이 세이 세이'를 잭슨과 함께 불러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 이 노래는 매카트니가 현재까지 빌보드 1위에 올린 가장 최근 곡이다.
―한국에도 당신 음악에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많습니다. 한국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요즘 한국 음악 유명하잖아요. 특히 한국 젊은 록밴드 음악을 들었는데 대단했어요. 한국 음악을 더 많이 알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밴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음악은 생각나요. 영국에서 한국 음악은 꽤 인기가 있어요. 아주 잘 나간다니까요. 우리 스태프 중 한 명은 항상 나에게 '강남스타일'을 가르쳐 주려고 해요. 나는 '걱정 마. 할 줄 안다니까'라고 대답하죠. 하하."
―오랫동안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동물 권리 보호운동을 해왔죠. 그런 삶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습니까.
"어렸을 때는 평범한 서양식 식단으로, 다들 먹는 방식으로 먹고 자랐죠. 그때는 채식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동물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채식을 하게 됐어요. 나는 내 자신에게 또 린다(아내 린다 매카트니)에게 물었어요. '고기를 꼭 먹어야 되나? 먹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다른 방식을 찾아냈고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됐어요. 아주 재미있는 취미를 갖게 된 거랑 비슷해요. 나는 채식을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누군가 그에 대해 물어보면 즐겁게 대답하죠. '나는 동물을 사랑하고 내가 먹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게 건강하면서 지구에도 정말 좋은 일이다'라고 말이죠. 그게 내가 채식을 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매카트니는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 린다 매카트니(1941~98)는 그가 '영원한 소울 메이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록 밴드를 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였던 린다는 1966년 폴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생전에 "비틀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존 레넌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금방 식었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1998년 린다가 유방암으로 숨질 때까지 이어졌다. 둘 사이엔 린다와 전 남편 사이의 딸 헤더(53)를 포함, 메리(46) 스텔라(44) 제임스(38) 등 1남 3녀가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고 아들 제임스는 아버지를 이어 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서울 대림미술관에서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린다 사진전이 관객 20만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내 사진전으로는 최고 기록이에요.
"그 얘기 들었어요. 전시회 관계자들을 잘 알거든요. 정말 기쁩니다. 아주 멋진 전시죠. 서울에서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럴 시간이 있어야 할텐데…."
이 말을 한 뒤 매카트니는 "이제 공항에 다 왔다. 한국 팬들에게 내 대신 인사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음모론에 대해 묻고 싶었다. 1969년 시작된 그 음모론은 "폴 매카트니는 1966년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 뒤로 비슷하게 생긴 가짜가 대신 매카트니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루머는 꽤 진지하게 퍼졌으며 아직도 인터넷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이런 루머가 사라지지 않자 매카트니는 1993년 공연실황 앨범에 '폴은 살아있다(Paul Is Live)'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폴 매카트니는 1966년에 죽었어요. 당신은 누구세요?
"(잠시 침묵 후) 사실 난 가짜예요.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죠. 폴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대역이고 가짜인데도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거죠. 자, 한국에서 만나요!" 공연문의 1544-1555
"내 노래를 내 밴드와 작업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어요.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거든요. 마이클이나 스티비, 카니에, 리하나는 모두 대단한 재능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하면 정말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거죠. 항상 그런 작업은 재미 있어요. 내가 해온 음악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카니에와 작업할 때는 노래를 함께 쓰고 내가 피아노를 쳤는데 갑자기 카니에가 리하나를 참여시켰어요. 그런 과정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1982년 매카트니가 스티비 원더와 함께 만들고 부른 노래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Ebony And Ivory)'는 단박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Ebony)과 흰 건반(Ivory)을 뜻하면서 인종 간 화합을 노래한 이 곡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마이클 잭슨의 명반 '스릴러'에서 '더 걸 이즈 마인'을 함께 불러 빌보드 2위에 올랐고, 이듬해 자신의 앨범에서는 '세이 세이 세이'를 잭슨과 함께 불러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 이 노래는 매카트니가 현재까지 빌보드 1위에 올린 가장 최근 곡이다.
―한국에도 당신 음악에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많습니다. 한국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요즘 한국 음악 유명하잖아요. 특히 한국 젊은 록밴드 음악을 들었는데 대단했어요. 한국 음악을 더 많이 알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밴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음악은 생각나요. 영국에서 한국 음악은 꽤 인기가 있어요. 아주 잘 나간다니까요. 우리 스태프 중 한 명은 항상 나에게 '강남스타일'을 가르쳐 주려고 해요. 나는 '걱정 마. 할 줄 안다니까'라고 대답하죠. 하하."
―오랫동안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동물 권리 보호운동을 해왔죠. 그런 삶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습니까.
"어렸을 때는 평범한 서양식 식단으로, 다들 먹는 방식으로 먹고 자랐죠. 그때는 채식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동물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채식을 하게 됐어요. 나는 내 자신에게 또 린다(아내 린다 매카트니)에게 물었어요. '고기를 꼭 먹어야 되나? 먹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다른 방식을 찾아냈고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됐어요. 아주 재미있는 취미를 갖게 된 거랑 비슷해요. 나는 채식을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누군가 그에 대해 물어보면 즐겁게 대답하죠. '나는 동물을 사랑하고 내가 먹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게 건강하면서 지구에도 정말 좋은 일이다'라고 말이죠. 그게 내가 채식을 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이유예요."
매카트니는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 린다 매카트니(1941~98)는 그가 '영원한 소울 메이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록 밴드를 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였던 린다는 1966년 폴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생전에 "비틀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존 레넌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금방 식었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1998년 린다가 유방암으로 숨질 때까지 이어졌다. 둘 사이엔 린다와 전 남편 사이의 딸 헤더(53)를 포함, 메리(46) 스텔라(44) 제임스(38) 등 1남 3녀가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고 아들 제임스는 아버지를 이어 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서울 대림미술관에서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린다 사진전이 관객 20만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내 사진전으로는 최고 기록이에요.
"그 얘기 들었어요. 전시회 관계자들을 잘 알거든요. 정말 기쁩니다. 아주 멋진 전시죠. 서울에서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럴 시간이 있어야 할텐데…."
이 말을 한 뒤 매카트니는 "이제 공항에 다 왔다. 한국 팬들에게 내 대신 인사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음모론에 대해 묻고 싶었다. 1969년 시작된 그 음모론은 "폴 매카트니는 1966년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 뒤로 비슷하게 생긴 가짜가 대신 매카트니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루머는 꽤 진지하게 퍼졌으며 아직도 인터넷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이런 루머가 사라지지 않자 매카트니는 1993년 공연실황 앨범에 '폴은 살아있다(Paul Is Live)'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폴 매카트니는 1966년에 죽었어요. 당신은 누구세요?
"(잠시 침묵 후) 사실 난 가짜예요.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죠. 폴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대역이고 가짜인데도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거죠. 자, 한국에서 만나요!" 공연문의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