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3 09:22
16년만에 셰익스피어 무대… '페리클레스'출연
소극장 활성화 위해 '유시어터' 1만원에 대관
'죽느냐 사느냐' 삶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 '햄릿'이 어느덧 인생의 상처를 치유한 노년의 '페리클레스'가 돼 있었다.
유인촌(64)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약 16년 만에 영국의 문호 윌리럼 셰익스피어 작품에 출연한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양정웅(48) 연출의 '페리클레스'다.
정확한 발성, 클래식한 연기로 고전 연극에 잘 어울리는 유 전 장관은 '햄릿'에만 네댓 차례 출연했다. 셰익스피어의 매력에 대해 "어떤 세대든,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일부 관객층이 아닌 전체를 아우를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문학적이면서도 아주 상업적이다. 철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이고. 배우 입장에서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요소가 있고." 하지만 "연기를 잘 해내지 않으면 지루한 작품"이라는 해석도 했다. "표현이 복잡하고 언어(대사)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발성을 제대로 못 하면 본래 가지고 있는 언어의 맛도 없어진다."
'페리클레스'는 '템페스트'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후기 낭만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리어왕' '맥베스' '코리올라누스' 등 정치와 시대를 다룬 기존 작품과 달리 문체가 수려하다.
타이어 왕국의 왕자 페리클레스는 앤티오크 왕국 공주의 미모에 빠져 왕이 낸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그 수수께끼는 풀지 못해도 죽고 설령 푼다 해도 그 안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내용 때문에 죽게 되는 비극의 씨앗이다. 페리클레스는 수수께끼를 듣자마자 그 속에 있는 비밀을 깨닫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된다.
유인촌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해설자 중 가장 역이 크고 중요한 가우어를 맡아 흡인력을 뽐낸다. 이와 함께 '(늙은) 페리클레스' 역도 함께 맡는다. 경력과 삶의 연륜이 묻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설자는 어렵다. 다른 캐릭터는 성격을 부여받아 그것대로 연기하면 된다. 그런데 해석자는 극의 정보를 전달해야 하니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막판에는 늙은 페리클레스로 극 안으로 들어가니 그런 리듬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작이자 최근작인 '홀스또메르'에서도 늙은 말을 연기했는데, 이번에도 노년을 연기한다. "최근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늙을까. '추하게 늙을까? 멋있게 늙을까?' 무대에서 연기할 때 만들어서 무엇을 보여준다는 생각보다 살아온 것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레 쌓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페리클레스는 숱한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나랑 비슷한 면이 있다기보다 인간 모두의 역경을 어떻게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연기를 하면서 고민하고 싶다."
유 전 장관이 지속해서 지킨 연극 무대에 중장년 배우들의 활약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노주현,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기량을 뽐내는 중이다. 유 전 장관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짚었다. "연극 무대에서 특정 배역은 그 캐릭터의 나이보다 실제 나이가 든 사람이 해야 한다. 무대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해당 캐릭터의 나이를 겪어봐야 더 깊이 있는 언어가 나올 수 있다."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무대에 복귀한 그가 이후 외부 단체와 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자신이 이끄는 극단 광대무변으로 선보인 연극 '파우스트' '홀스또메르'에 출연했다. '페리클레스'는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제작한다.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는 건 약 10년 만이다. 2005년 말 '홀스또메르'를 토월극장에 올렸다. '페리클레스'도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토월극장의 현 정식명칭은 CJ토월극장. CJ그룹의 후원으로 리노베이션을 해 CJ를 앞에 붙였다. 리노베이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건 유 전 장관이 재직하던 시절이다.
"외국 같은 경우에는 기업 후원이 당연할 일인데 한국에서는 거기에 대한 믿음 관계가 아직 형성이 안 돼서 힘들었다. 민간 쪽의 협력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최근 잇따라 폐관 위기에 처한 소극장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본인 역시 서울 강남에 약 250석짜리 소극장 '유시어터'를 운영하고 있다.
"연극계는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만큼 관과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 관은 그런데 공평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특정 분야만 지원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민간에서는 가능하다. 프로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것처럼. 기업이 투자해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가 예술이다. 다만 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말아야지. 그 이상의 보람과 사회적인 효과가 있으니까."
장관 재직 시절 당시에도 소극장 활성화에 힘썼던 유 전 장관은 5월부터 자신의 극장을 이용해 도움에 나선다. 유시어터를 하루 1만 원에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대학로 소극장 대관료는 최소 30만원 안팎이다. 우선 올해 시범 운영을 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지원도 받고 전문가들과 함께 대관해줄 작품도 심사한다.
"내가 뭐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극장이 15년이 됐는데 조금이나마 연극 발전에 밑거름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것이 중요해서 심사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유치하려 한다. 민간에서 이런 역할을 하면 기업이나 관에 자극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7월에는 포르투갈 공연을 이 극장에서 선보인다. 모노드라마로 배우 한 명이 기타리스트와 약 90분을 꾸민다. 산문집 '불안의 서'로 유명한 포르투갈 국민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의 작품을 극화했다.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문화적인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번을 시작으로 다양한 나라의 여러 작품도 꾸준히 소개하고 싶다."
'페리클레스' 역시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아주 유려하고 멋이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연기도 잘한다면 빈 구석 없이 꽉 찬 작품이 될 거다. 셰익스피어 작품이지만 우리 말이 이렇게 아름답고 근사하다는 것도 느끼게 하고 싶다." 노년을 연기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햄릿'을 연기하던 그때처럼 펄펄 끓었다.
예술의전당이 'SAC 큐브 X 클래식스(CLASSICS)'의 하나로 선보이는 작품 중 하나다. 5월12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최우리, 극단 여행자 배우들. 무대디자이너 임일진. 음악감독 장영규. 3만~6만원. 예술의전당 쌕티켓.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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