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帝가 나오자 마룻바닥 '들썩'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5.04.12 23:37

[대학로서 '번개콘서트'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등장… 2만원짜리 티켓 든 청중 환호성
베토벤과 포레 소나타 연주… '사랑의 인사'등 앙코르 세 곡도

'바이올린 여제(女帝)' 정경화(67)가 서울 대학로에 떴다. 12일 오후 5시 마로니에 공원 근처 '예술가의 집'에서 '번개콘서트'를 가진 것. 피아니스트 박창수(51)가 진행하는 '하우스콘서트'는 가끔 출연자를 알리지 않고 공연 시간만 홈페이지에 띄운 채, 콘서트를 갖곤 했다.

연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2만원짜리 티켓을 사서 들어온 청중들은 정경화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들어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오스트리아 명(名)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와 김선욱이 '번개콘서트'에 출연한 적 있지만, 정경화 같은 세계적 거장(巨匠)이 '겨우' 120여명 청중 앞에서 연주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2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번개 콘서트’를 가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2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번개 콘서트’를 가졌다. /하우스콘서트 제공
검은색 블라우스와 바지 차림의 정경화는 "연주를 기다리다 잠깐 졸았다"고 눙치며 현(絃)을 골랐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연주자이지만 정경화는 시작부터 농담을 건넸다. "혹시 기침할 사람들은 편하게 하세요. 시간을 드릴 테니까…."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정경화는 몰입했다. 이날 그가 고른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과 9번 '크로이처', 포레 소나타 1번. 웬만한 콘서트 정규 프로그램을 능가할 만큼 묵직했다. 베토벤 소나타 7번으로 시작한 정경화는 먹잇감을 노리는 표범처럼 잔뜩 웅크렸다 뛰어오르거나 무대를 뛰어다니며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다.

포레 소나타를 연주하기 앞서 한 아이가 구석에 앉은 걸 보더니, 방석을 끌고 가운데 앞자리로 안내했다. "아이가 앞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포레가 젊은 시절 쓴 이 작품은 정열적이면서 로맨틱해요. 훗날 그가 쓴 '레퀴엠'과 꼭 함께 들어보길 권합니다." 중간 중간 해설까지 덧붙이며 연주를 들려줬다.

휴식 후 정경화는 40분이 넘는 베토벤 소나타 '크로이처'를 들려준 후, 다시 환호하는 관객 앞에 섰다. "제가 관중석에 앉아 보니, 박수 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자, 앙코르 갑니다." 바흐와 브람스, 엘가의 '사랑의 인사'까지 연달아 세 곡을 선물했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함께 온 안내견 '찬미'도 드러누워 꼬리로 바닥을 쳤다.

2002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한 '하우스콘서트'는 서울 도곡동 녹음스튜디오를 거쳐 작년 말부터 대학로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정경화 번개 콘서트가 436번째 연주회다. 마룻바닥에 방석 깔고 앉아 바로 눈앞에서 연주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온몸으로 음악을 느끼는 게 하우스콘서트의 매력이다.

2시간 넘는 연주가 끝난 후 저린 다리를 추스르며 일어섰다. 옆 자리 관객이 페이스북으로 공연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들어왔다. "오늘 세계 최강의 연주를 들었어. 너무 행복해." 정경화는 이날 들려 준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이달 28일과 30일 LG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