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울발레시어터 20년 이끈 김인희 단장·제임스 전 부부

  • 뉴시스

입력 : 2015.04.08 18:15

서울발레시어터(SBT)는 직업무용단불모지인 한국에서 '숨통'이나 다름없다. 1995년 국내 최초의 민간직업발레단으로 깃발을 올린 이래 전범이 되고 있다.

4대보험과 보장 급여를 지급하는 국내 프로발레단은 4곳.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 등 국내 양대 발레단(3대 발레단은 서울발레시어터를 포함)과 광주시립무용단. 정부·종교·시의 많은 도움을 받는 나머지 세 곳과 달리 서울발레시어터는 민간의 힘에 의지했다.

중심에는 김인희(52) 단장·제임스 전(전상헌·56) 부부가 있다. 8일 오후 서울 정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두 부부는 활짝 웃었다.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앞날에 대한 계획으로 설렜다.

김 단장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를 창작발레 활성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면서 "민간예술단체의 견인차 역을 해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큰 강점은 창작발레 대중화다. 현재까지 100편의 모던발레 창작, 980회 이상 공연을 했다. 2001년에는 국내 발레단 최초로 미국 네바다발레단시어터에 '라인 오브 라이프'를 라이선스로 역수출하기도 했다.

김 단장은 10년 안에 "100편을 더 만들겠다"고 했다. "'창작발레 프로젝트 200'을 통해 서울발레시어터 창작발레레퍼토리를 2025년까지 총200편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약 30명의 단원들에게도 작품 안무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차세대 안무가 발굴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축 중이다. 8월 중 이들의 첫 작품이 발표된다"고 알렸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SBT 콘텐츠 센터' 설립 역시 목표다. 김 단장은 "이 센터는 건물 개념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다. 센터뿐 아니라 우리가 모아놓은 자료실을 통해서 후배들이 같이 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이와 함께 우리가 포함된 '발레STP협동조합'에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옥련발레단이 곧 들어온다. 총 6개 단체가 되는데 이 중 연습실을 가지고 있는 곳은 유니버설발레단 하나다. 센터에 이 단체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연습실을 만들고 싶다. 제임스 전이 유니버설발레단, 와이즈 발레단의 작품을 만드는 등 서로 안무가들이 교환되는 형태도 구상 중이다."

시민을 상대로 발레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캠페인 '발레 사랑 100만 시민' 역시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설할 거다. 굳이 비싼 티켓을 사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 쉽고 편하게 발레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발레 팬들이 늘어나게 하고 싶다. 민간 예술단체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후원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축구계의 FC바르셀로나 같은 발레단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는 협동조합 기업으로 시민들 후원이 주축이다.

"기업이나 공적 자금이 아닌 시민 후원문화정착을 바탕으로 자생력을 갖춘 단체가 됐으면 한다. 20년 간 경험을 공유해 민간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다. 재단을 설립해서 서울 발레시어터의 발레를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앞서 부부는 20주년을 은퇴 기점으로 삼았다. 김 단장은 "20년 동안만 키를 잡고 운영한 뒤에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결심은 여전하다. 다만 조건이 있다. 민간은 후원단체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서 "재정자립도가 60~70% 가량 된 뒤 키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새로운 단장, 새로운 예술감독이 와도 70%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훌훌 떠나지 못한다."

한 때 재정자립도를 90%까지 올렸다는 김 단장은 발레단을 운영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했다. "모든 단원과 사무국 직원들이 두 세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실제 일한만큼 보수를 받지 못하니까. 단원, 직원은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만들어간다는 사명감 때문에 일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한 두 사람이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고 가장 힘든 시절로 떠올린 때는 2002년. 당시 예술의전당 입주 단체로 들어갔으나 국립극장 산하에 있던 국립발레단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그 때 하고자 했던 교육, 기획 프로그램을 하지 못해서 벌어놓은 돈을 다 썼다. 예술의전당 입주의 꿈이 무너진 거지. 조지 발란신의 뉴욕시티발레단처럼 뉴욕 시 링컨 센터의 데이비드 코흐 극장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는데…. 그 때 지금의 과천 시민문화회관으로 터전을 옮겼다."

민간 발레단이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임스 전은 "창작을 위해 안무가들이 필요한데, 그런 안무가들을 배출할 만큼 단체 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유럽, 미국의 안무가는 안무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국내에서는 그게 힘들지. 민간 단체가 많아지면 안무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예술가들이 나올 수 있다."

김 단장 역시 "국립발레단 역사가 52년이 됐는데 그 만큼 훌륭한 무용수들을 키워냈다. 이제는 안무가와 지도자를 발굴해야 할 때"라고 동의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 쏠려 있는 민간 단체들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도 과제"라고 짚었다. "서울발레시어터, 유니버설 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이 곧 은퇴를 한다. 고급 인력들인데 이들이 제2, 3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척박한 국내 발레 환경에서도 20년간 서울발레시어터를 이끌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김 단장은 "발레단 중 유일하게 투톱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우리가 스페셜한 관계(부부)라서 티격태격 해도 20년간 올 수 있었다. 상임 안무가(제임스 전)가 주방에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남자 무용수가 부족해 제임스 전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웃음).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단원·직원 40여 명이 한 곳을 바라보고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한편, 서울발레시어터는 발레단의 오늘을 만들어 준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는 의미로 창단 20주년 캐치프레이즈로 '브라보(BRAVO SBT)'를 내세웠다.

'레이지(RAGE)'(6월5~6일 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야외 발레 공연으로 처음 선보이는 '한 여름 밤의 꿈'(8월 6일 대전예술의전당), 창단 20주년 기념 특별공연 '비잉(BEING)'(10월 22~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스위스 바젤 발레단과 합작한 '무브스(MOVES)'(10월 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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