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06 02:58
[4] 임영웅 연출 '고도…'의 비밀
베케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인생을 끝없는 기다림으로 표현
지루하다는 비판 받은 원작을 웃음·장난기로 흥미롭게 살려
보통 연극이 아니다. 1969년 12월 국내 초연한 뒤 1300회 넘게 공연해 20만여 명이 봤다. 45주년을 맞는 이번 공연에는 정동환·송영창·한명구(블라디미르 역), 박용수·안석환·박상종(에스트라공 역), 이호성·이영석·김명국(포조 역), 정재진·정나진·박윤석(럭키 역)과 김형복(소년 역) 등 그동안 이 연극을 거쳐 간 명배우 13명이 돌아가며 출연한다. 스케줄 표가 대형 뮤지컬 못지않게 복잡하다.
같은 연출가가 연출한 작품이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이어 오는 것은 유례가 드문 일. 무엇이 '임영웅표 고도'를 '전설'로 만들었을까? 열쇠는 '유머가 넘치는 작품으로 재창조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얘기다.
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극작가 베케트가 쓴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짚는다. 문제는 세 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고도'라는 인물을 관객도 같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평자가 "베케트의 연극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도 단 하나, 유머를 제외하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임영웅의 연출은 베케트가 행간에 심어 놓은 바로 그 유머를 탁월하게 살려냈다는 평을 듣는다. 에스트라공이 "이 지랄을 더는 못하겠다!"고 내뱉으면 블라디미르는 "다~들 하는 소리지"라고 체념한 듯 말한다. 희곡으로만 보면 가슴이 답답했을 이 대사가, 임영웅 연극 등장인물의 입을 거치면 마치 전통 연희의 한 장면처럼 장난기와 감칠맛이 살아나 관객을 웃게 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해외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 "뭐든 말을 해봐" "지금 찾고 있는 거야…" "말을 하니까 시간이 잘 간다"는 등, 서로를 독려하는 두 인물의 대사들 역시 공허함을 벗어나 오히려 위안과 희망을 준다. 무성영화 '키드'의 찰리 채플린처럼 너덜너덜한 양복을 입고 나오는 두 주인공은 걸음걸이와 팬터마임 같은 제스처에서도 채플린의 희극을 연상시킨다. 이들 앞에 나타나는 주인 포조와 하인 럭키의 극적인 대비도 흥미롭다. 1994년 폴란드 공연 때 현지 언론은 "마치 일제(日帝)로부터 수난을 받는 한국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쓰기도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5월 17일까지 소극장 산울림,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