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같은 연주 뒤, 침묵이 빚은 하모니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5.03.27 00:44

두다멜이 지휘한 LA필하모닉, 25일 예술의전당서 내한 공연
80분간 장엄했던 말러 교향곡 6번… 연주 끝나자 20초 동안 정적 흘러

두다멜(34)의 지휘봉이 공중에서 멈췄다. 1시간 20분 동안 달려온 말러 교향곡 6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115명의 손도 악기를 쥔 채, 허공에 머물렀다. 20초쯤 흘렀을까, 지휘자의 손이 서서히 내려오고 허리춤에 닿았을 때,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기적처럼 빚어낸 정적(靜寂)이었다. 4악장 내내 폭포수처럼 장대한 소리를 쏟아낸 음(音)의 향연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날의 피날레는 청중이 함께 만들어낸 소리 없는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와 청중은 침묵 속에서 하나가 되는 진귀한 일체감을 경험했다.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한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른네 살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말러 전문가답게 장대하고 화려한 음의 향연을 펼쳤다.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한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른네 살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말러 전문가답게 장대하고 화려한 음의 향연을 펼쳤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지난 25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가진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은 말러 교향곡 6번, 하나였다. 말러가 '비극적'(悲劇的)이란 제목을 붙인 이 작품은 팀파니만 2세트에, 호른 아홉, 트럼펫 여섯 등 대부분 목·금관 악기가 넷 이상씩 투입됐다. 무대가 비좁을 만큼 대편성 오케스트라였다. 전차부대의 진군(進軍)처럼 시작한 1악장부터 모든 관악기가 열리는 4악장까지 구스타보 두다멜은 이 거대한 '악기'를 솜씨 있게 이끌며 청중의 가슴을 두들겼다. '비극적'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만큼, 화려하고 장엄한 소리였다.

두다멜이 "말러 6번은 '축제'같은 곡"이라고 말한 뜻을 헤아릴 만했다. 하지만 마지막 악장 두 차례 등장한 거대한 나무 망치의 타격에 이어 소리가 잦아들고 정적이 찾아왔을 때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단념한 말러의 독백이 들리는 듯했다. 말러는 1906년 이 곡 초연(初演) 이후 딸의 죽음과 자신의 심장병 발병 등 잇달아 비운을 겪었다.

이날 연주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상징인 두다멜이 왜 클래식 음악계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는지 보여준 열정적 무대였다. 합창석까지 빽빽이 자리한 청중 2300명이 환호를 보내자 두다멜은 지휘대에 오르지 않고 오케스트라 속에 걸어들어가 단원들과 함께 화답했다. 공(功)을 오케스트라에 돌리는, 젊은 거장의 겸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