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인디밴드)'를 위한 '언더' 아지트

  • 김미리 기자

입력 : 2015.02.24 02:53

-인디음악 공간 '뮤지스땅스'
노숙자 붐비던 지하보도 개조… 인디밴드의 창작 공간으로, 가수 최백호가 운영 맡아
"젊은 뮤지션, 기회 주고싶어"

서울 아현역 교차로에서 애오개역으로 이어지는 마포대로 초입. 대로변 아현중학교 옆으로 지하보도 출입구처럼 생긴 계단이 보인다. "여기요. 여기!" 하마터면 지나칠 뻔한 그곳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가수 최백호(65·사진)였다. 그제야 계단을 감싼 유리문에 걸린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뮤지스땅스'. '뮤직(음악)'과 '레지스땅스(독립저항군)'를 합한 작명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인디밴드들의 창작 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 35억원을 투입해 마포구와 함께 인디뮤지션 육성 사업으로 진행해 지난 연말 문을 열었다.

"게으르고 노는 거 좋아하는 내가 이런 일도 하네요, 참." '얼굴이 명함'인 최씨가 영 어색한 폼으로 명함을 내민다. 화분에서 음표가 자라는 일러스트가 담겼다. 미술에 일가견 있는 최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란다. 직함은 '음악창작소 어미벌레'. "음악 떡잎들 살뜰히 챙기라고 직원들이 이렇게 이름 붙여줬네요. 허허." 문화부는 3년 전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최씨에게 운영을 부탁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음악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생계가 어려운 원로 가수, 인디밴드 지원을 해온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현동 지하보도를 리모델링해서 만든‘뮤지스땅스’내부(가운데 큰 사진). 과거 노숙자들의 아지트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단면도.
아현동 지하보도를 리모델링해서 만든‘뮤지스땅스’내부(가운데 큰 사진). 과거 노숙자들의 아지트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단면도. /이덕훈 기자·뮤지스땅스 제공
인디밴드의 본산은 누가 뭐래도 홍대 앞 아닌가. 아현동, 그것도 24시간 자동차 쌩쌩 달리는 8차선 대로 아래 생긴 인디밴드 아지트라…. 뭔가 아귀 맞지 않은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하로 내려가자 눈앞에 별세계가 펼쳐졌다. 차가운 타일이 냉기를 뿜어내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지하통로가 아니었다. 붉은 벽돌로 감싼 아늑한 내부에 비틀스, 루이 암스트롱, 콜드 플레이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세련된 디자인의 소파와 가구가 놓인 휴식 공간은 고급 빈티지 카페를 방불케 한다. 지하 2층으로 구성된 공간에 30여명이 동시에 녹음할 수 있는 시설, 작업실, 공연장 등이 배치돼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이면 노숙자들로 붐비던 곳이란 얘기가 믿기지 않았다.

뮤지스땅스 홈페이지(www.musistance.com)를 통해 회원 가입한 인디밴드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곳 첨단 시설을 쓸 수 있다. "'K팝' 외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돈 없어서 녹음도 못 하는 인디밴드가 참 많지요. 이런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젊은 시절 배곯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최씨는 누구보다 이 일에 열정적이었다. 예산을 따기 위해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공무원과도 수차례 면담했다. "공무원도, 면담하러 온 사람들도 '최백호가 왜 이런 데 오느냐'는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이제 '예산'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요(웃음)."

지하 공간은 음악 작업실로 적격이었다. 행여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지 늘 눈치 봐야 하는 시내 작업실과 달리 '도로 밑 작업실'은 소음 발산 자유 지대였다. "지하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아닌가요. 공간 특성도 그렇고, 여기서 우리가 육성하는 음악도 주류에선 살짝 비켜난 언더그라운드잖아요. 만들어 놓고 보니 안성맞춤이네요."

어느새 지자체 공무원들의 견학 명소가 됐다.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유휴 시설을 문화 시설로 훌륭히 탈바꿈한 사례로 알려지면서다. 최씨는 "앞으로 공연, 전시, 강연을 다채롭게 열어 일반인들도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