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달군 스타 성악가들의 잔치

  • 장일범·음악평론가

입력 : 2015.02.21 23:58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신작 '욜란타' '호수의 여인']

차이콥스키 오페라 '욜란타' - 네트렙코·베차와, 화려한 가창
로시니 오페라 '호수의 여인' - 디도나토·플로레스, 완벽 호흡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스타 캐스팅과 다채로운 작품으로 승부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이하 메트) 오페라는 한국의 설날 연휴 신작 두 편을 올렸다. 메트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이번 2014~2015년 시즌 베르디 '맥베스'로 문을 열더니 겨울에는 메트에서 최초로 상연된 신작 프로덕션인 차이콥스키 오페라 '욜란타'에서 눈먼 공주가 사랑으로 인해 광명을 찾게 되는 욜란타 역으로 무대에 섰다. 네트렙코는 2011년부터 '안나 볼레나' '사랑의 묘약' '예브게니 오네긴' 등으로 세 시즌 연속 개막 공연을 맡아 카루소나 파바로티, 도밍고 같은 스타들도 세우지 못한 위업을 세운 메트의 상징이다.

지난 18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차이콥스키 ‘욜란타’에 출연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운데). 네트렙코는 2011년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즌 개막공연 주역으로 나설 만큼, 메트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다
지난 18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차이콥스키 ‘욜란타’에 출연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운데). 네트렙코는 2011년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즌 개막공연 주역으로 나설 만큼, 메트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다. /Marty Sohl/Met Opera
지난 18일 올린 '욜란타'에서 네트렙코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이미 같은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보데몽 역의 표트르 베차와와 함께 나섰다, 이중창과 피날레에서 이들의 화려한 기량이 빛을 발했는데, 이날 가장 빼어난 가창을 들려준 가수는 베차와였다. 메트에 이 작품으로 데뷔한 폴란드 연출가 마리우슈 트렐린스키는 욜란타를 아버지 르네 왕(王)에 의해 갇힌 장소에서 환자처럼 지내는 슬픈 사슴 같은 캐릭터로 변신시켰다. 하지만 연출의 긴장감은 떨어졌다.

네트렙코가 출연한 이날 객석 무대 옆에는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청중을 감시했다. 지난달 29일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메트 역사상 처음으로 커튼콜 도중 한 우크라이나 청중이 무대 위로 올라가 항의 시위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청중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안나 네트렙코가 푸틴의 반(反)동성애 정책에 침묵하고, 네트렙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도네츠크 오페라 극장에 기부하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고 있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우려해 경호원들이 등 장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20일에는 월터 스콧 원작의 로시니 오페라 '호수의 여인'이 공연됐다. 1829년 나폴리에서 초연됐지만, 메트는 이번 시즌이 초연이었다. 세계 벨칸토 오페라 무대를 휩쓸고 있는 두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호수의 여인 엘레나로,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엘레나를 짝사랑하는 자코모 5세 왕으로 등장해 호흡을 맞췄다. 5년 전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에 올랐을 때와 똑같은 캐스팅이었다. 메트 프로덕션은 시종일관 어두운 밤의 세계를 그리다가 자코모 왕이 엘레나가 말콤과 결혼하도록 허락하고 반란군이었던 엘레나의 아버지마저 풀어주는 장면에서 성군(聖君)임을 보여주듯, 빛나는 황금빛 낮으로 표현한 것이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양키 디바'로 불리는 미국 성악가 조이스 디도나토와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는 컴퓨터처럼 정확한 음정 처리와 테크닉으로 벨칸토 성악의 진수를 들려줬다. 엘레나가 사랑하는 반란군 기사 말콤 역의 '바지 역할'(남장 여자)인 메조소프라노 다니엘라 바르첼로나도 환상적인 목소리로 청중을 매료했다. 이 세 사람의 3중창과 반란군 기사 로드리고 역 존 오스본과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가 실력을 겨룬 2중창, 3중창도 테너의 고음 대결이라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줬다. 설 연휴 뉴욕은 강풍까지 불어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지만 뉴요커들은 메트의 신작 오페라들로 겨울밤을 후끈하게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