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11 03:00 | 수정 : 2015.02.11 10:23
[19세 최혜연·피아노 스승 정은현]
정육점 커터에 오른팔 잃은 아이
한손으로 독학하다 스승 만나 영덕~대전 오가며 4년 '지옥훈련'
예술학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 "피아노 앞에선 난 특별한 사람"
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15층 갤럭시홀. 올해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최혜연(19)양이 외래교수인 정은현(35) 선생님과 연습 중이다. 혜연양은 다음 달 하순 입학식에서 기념 연주를 할 예정이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팔꿈치 피아니스트'이다. 세 살 때, 부모님이 일하는 정육점에서 놀다 고기 자르는 기계에 오른쪽 팔 아랫부분을 잃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저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말이 일곱 살 때까지 '엄마, 나는 팔이 언제 나와?'라며 물었대요. 그때쯤 스스로 안 것 같아요. 제가 특별하다는 걸…."
피아노와 가까워진 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이모 덕이었다. 한 살 터울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는 게 부러웠다. 하지만 꿈일 뿐이었다. 다섯 손가락으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갓 예고에 진학한 언니에게 레슨해주던 정은현 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를 작가로 키워낸 설리번 선생님의 심정이었을까.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처음 만난 2011년 1월 1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혜연이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는데, 울컥했어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 거절하려다가 마음이 흔들렸지요. 혜연이에게 '꿈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라고 해요. 그 순간 '아, 이 아이는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혜연양은 매주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 달려가 피아노를 배웠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위한 왼손 연주곡을 찾고, 오른손 멜로디가 비교적 쉬운 곡을 맞춤용으로 편집했다. 가르칠 때는 혜연양이 쉽게 따라 하도록 자신도 오른손은 주먹으로 피아노를 쳤다.
대전예고에 진학한 혜연양은 하루 3~6시간씩 연습했다.
혜연양은 고1 때 딱 한 번 눈물을 보였다.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곡을 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도 그리웠다고 한다. 며칠간 피아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이 가장 행복할 때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짜증 났고, 불쾌했어요. 근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대단하다' '감동하였다'고 말해주는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혜연양은 2013년, 2014년 두 번 독주회를 열었다. 그는 "같은 곡이라도 내가 팔꿈치로 연주할 때가 더 감동적일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무대 체질'이라고 했다. 그는 "베테랑 피아니스트들도 떨리는데, 혜연이는 무대에 올라가면 더 잘한다"고 했다. 혜연양은 "공연을 하나부터 열까지 선생님이 다 준비해주신다. 쑥스러워 표현은 못 했지만,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