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품을 듯 고고한 남자의 몸짓, '한량무'입니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1.28 00:51

['한량무' 문화재 지정 기념공연 여는 한국무용가 조흥동]

숱한 大家들 춤, 몸으로 익혀
내달 '조흥동 춤의 세계' 공연

SF영화 촬영장에라도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서울 신당동 한 아파트 상가의 2개 층을 튼 '조흥동(趙興東) 월륜(月輪) 춤 전수관'은 60평 규모 연습실이 초현실적 풍경처럼 깨끗했다. 바닥은 물광 낸 듯 반질반질했고, 방 안의 책과 자료들은 반듯하게 각을 세워 정리돼 있었다. 주인의 성품을 짐작할 만했다.

한국무용가 월륜 조흥동(74)은 다음 달 자신의 이름을 건 '조흥동 춤의 세계'를 공연한다. 한량무(閑良舞)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45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그가 출연하는 한량무와 원류 한량무를 비롯해 조흥동류 중부살풀이, 비나리, 한량무 전수생들이 출연하는 '한량 젊은 그들' 등이 무대에 오른다.

한량무 공연 포스터 앞에 선 조흥동은“한량무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젠틀맨’의 춤”이라고 말했다.
한량무 공연 포스터 앞에 선 조흥동은“한량무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젠틀맨’의 춤”이라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근대 한국 무용의 거장 한성준(1874~1941)이 작무(作舞)한 한량무는 그의 제자 강선영을 거쳐 원형 그대로 조흥동에게 전수됐고, 조흥동은 이 춤을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기품과 용맹을 갖춘 '남자들의 춤'이지요. 인왕산 꼭대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한번 내려다보며 천하를 품을 듯한 기상을 품는 것, 그런 느낌이 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흰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손에는 부채를 든 무용수는 학(鶴)이 구름 위로 비상하는 듯한 형상으로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몸짓에 담아낸다. '좀 오만한 몸짓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더니 "맞다, 그런 것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이천의 천석꾼 집안, 위로 누나가 넷인 집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를 춤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은 집 안에 있던 유성기, 마을의 농악과 굿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내가 가락만 들으면 손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음악이 빠르면 빠르게, 슬프면 슬프게 몸이 거기에 맞춰졌다."

중학교 때 서울 유학을 갔다가 본격적인 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장안의 이름난 춤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정수(精髓)를 배웠다. 송범에게서 기본을 배운 뒤 김천흥의 처용무, 한영숙의 승무와 살풀이춤, 이매방의 북춤, 장홍심의 장고무를 익혔다. 자기 몸에 '입력'한 춤사위가 수천 가지. 실로 '한국 춤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게 됐다. 이후 스스로 남성 전통춤을 개척하면서 '황진이' '달하'와 같은 작품을 안무하는 등 한국 춤의 지평을 넓혔다.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과 단장을 지냈던 그는 14년 동안 재직했던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자리에서 지난해 물러났다. 전수관 공간에서 그는 혼자 있을 때마다 온갖 춤을 춘다. 그게 조흥동의 수도(修道)다. 조택원의 춤을 그가 복원한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란 작품이 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제 하루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쇠도 그냥 두면 녹이 슬잖아요." 그가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조흥동 춤의 세계' 2월 27~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2263-4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