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19 02:58
['일중 김충현 현판글씨'展]
1956년 복구된 '한강대교' 대통령 추천받아 현판 써
내달 25일까지 45점 전시
서예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그의 현판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충현 현판글씨-서예가 건축을 만나다'전에서다. 일중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년)가 전국 각지에서 일중이 쓴 현판 175점을 모아 도록을 냈고, 이 중 현판 실물 28점을 비롯해 탁본·사진 등 45점을 전시한다. 전시를 기획한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실장은 "1942년부터 파킨슨병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1997년까지 반세기 넘게 쓴 작품"이라며 "건축물의 성격과 쓰임에 따라 다양한 서체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서풍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일중은 경복궁 건춘문(建春門), 영추문(迎秋門) 현판을 쓴 걸 영광으로 여겼다. "옛날 대궐문 현판은 명필로서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썼다는 전통이 있어 두 대궐문 현판을 쓴 데 대해 일생의 영광으로 삼고 있다"는 것. 1956년 복구된 '한강대교' 현판은 원래 이승만 대통령 휘호를 받으려다 대통령의 지시로 일중이 썼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시청 직원이 가져온 보따리 안에는 당시 보기 드문 한지가 글씨 쓰기 좋은 크기로 수십 장 준비돼 있었다. 그는 '실은 이승만 대통령께 휘호를 받으려고 경무대에 이것을 준비해 갔는데 대통령께서 한글 서예는 익숙지 않으니 선생을 찾아보라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한마디 덕분에 많은 사례금을 받았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선 사적인 인연으로 쓴 작품을 볼 수 있다. 사당과 서원 현판, 지인에게 써준 현판 등이다. 일중은 국한문 모든 서체에 능숙했으나 가장 주목할 것이 예서. 정현숙 실장은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고 유려하면서 힘차고 변화가 많아 노련미와 원숙미를 갖췄다"고 했다. 특히 1983년 제자인 초정 권창륜의 집 당호로 써 준 '예천법가(醴泉法家)'가 으뜸이다. 취기가 약간 있을 때 쓴 것으로 전해지는데 자간(字間)이 촘촘하면서도 네 글자의 대소, 장단, 먹의 농담이 변화무쌍하고 파격적이다. 1974년 전주의 서예가 강암 송성용에게 써준 '남취헌(攬翠軒)'은 전체 구성이 가지런하면서도 여백이 넉넉해 시원스럽다. 유려하면서도 힘찬 글씨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2부는 공식 요청에 의해 쓴 것으로 궁궐, 사찰, 유적지, 공공 건축물 현판을 선보인다. 자유롭고 편안한 1부 글씨에 비해 정연하고 근엄하다. 경복궁 '건춘문'과 '영추문', 사직공원 '사직단' 글씨와 한글 현판 대작인 '독립기념관' '원효대교' '한강대교' 탁본들이 묵직한 감흥을 전한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02)734-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