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엇갈린 야구 천재들, 뮤지컬서 만난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5.01.13 23:57

최강 投·打 김건덕·이승엽 스토리… 국내 첫 야구 뮤지컬로 무대 올려
金 대학 진학, 李 프로팀 입단… 달라진 운명과 우정 이야기 담아

1994년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에서 경북고 3학년 이승엽(39)이 경남상고(현 부경고) 3학년 김건덕(39)에게 말했다. "우리 프로 구단 가자!"

그해 캐나다 브랜든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타자 이승엽과 투수 김건덕은 한국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귀국하자 스타가 돼 있었다. 체육 특기생으로 일찌감치 한양대행(行)이 결정됐으나 선배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뺑뺑이' 도는 혹독한 훈련을 받는 걸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냥 프로 구단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대학에 가지 않는 방법은 한 가지. 수학능력시험을 일부러 못 보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은 '수능 떨어지기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대입 특기자 커트라인인 40점을 넘기지 않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업계인 김건덕은 수능이 아니라 내신 성적이 반영됐기 때문에 한양대에 진학해야 했다. 그런데 TV를 틀었더니 이승엽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게 아닌가. 전화를 받은 이승엽이 말했다. "친구야, 내는 인문계 아이가."(2008년 김건덕의 '스포츠춘추' 인터뷰)

1994년 한양대 진학을 앞둔 김건덕(왼쪽)과 이승엽(오른쪽)이 당시 한양대 선수였던 차명주(현 재활 전문 트레이닝센터 운영)와 함께한 사진. 작은 사진
1994년 한양대 진학을 앞둔 김건덕(왼쪽)과 이승엽(오른쪽)이 당시 한양대 선수였던 차명주(현 재활 전문 트레이닝센터 운영)와 함께한 사진. 작은 사진 은 김건덕·이승엽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포스터. /위네트웍스 제공
국내 첫 '야구 뮤지컬'이 나온다.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다. 야구를 소재로 한 뮤지컬은 1955년 미국의 '댐 양키스' 정도만 있을 뿐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너에게…'의 주인공은 김건덕이며, 그의 친구인 '국민 타자' 이승엽이 주요 배역으로 나온다.

이 뮤지컬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김명환씨는 "5~6년 전부터 김건덕 선수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작년부터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김건덕은 최동원과 선동열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았고,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대표였으나 '수능 사건'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김건덕은 대학 졸업 후 병역을 마치기 위해 방위산업체에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다쳐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후 한때 야구용품 업체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춘천고와 모교인 부경고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뮤지컬은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와 '수능 사건'이 있었던 1994년을 중심으로 꾸며진다. 연출가 김명환씨는 "실제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남자들의 우정과 야구 인생을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김건덕 선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나와 닮은 데가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며 "젊은 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은 행복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라고 했다. 현재 부산에서 리틀야구단을 지도하고 있는 김건덕은 '부끄럽게 왜 나 같은 사람을 뮤지컬 주인공으로 하려느냐'고 손사래를 쳤으나 설득 끝에 극화를 허락했다고 한다.

김건덕 역은 연극 '취미의 방'과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나왔던 안재영이, 이승엽 역은 뮤지컬 '영웅'에 출연했던 김영철이 맡는다. 작곡은 그룹 '동물원' 멤버 박기영 등이 담당한다. 무대에서 어떻게 야구를 표현할지가 관건인데, 실제로 공을 던지고 치는 대신 타격·투구 동작과 안무를 통해 관객이 상상하도록 하는 기법을 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