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지킬 앤 하이드, 왜 한국서 특히 잘 나갈까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5.01.09 17:01

웃으며 울분 삼키는 한국인, 주인공의 이중성에 공감

일탈·욕망 그대로 표출… 절대 가치 사라진 사회
인간 이중성이 곧 상품, 지킬·하이드가 그 증거

오죽하면 '화병'이 있겠나… 속으론 부글부글 끓어도
겉으론 차분히 웃는 얼굴… 한국인, 분노 쌓으며 살아

'두 얼굴의 사나이' 지킬 박사와 그의 분신 하이드가 새해 벽두부터 재벌 3세로 변신해 돌아왔다. 오는 21일 처음 방영되는 SBS '하이드 지킬, 나'는 완전히 상반된 두 인격을 한몸에 지닌 재벌 3세(현빈)와 서커스 배우(한지민)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하이드 지킬, 나'와 같은 시간대에 MBC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킬미, 힐미'는 2개로도 모자라 7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 3세(지성)가 레지던트를 사랑하게 된다. '하이드 지킬, 나' 제작사 KPJ의 장진욱 대표는 "현빈이 연기할 두 남자 중 누가 선택을 받는지에 따라 우리 사회가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Why] 지킬 앤 하이드, 왜 한국서 특히 잘 나갈까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의 조승우(왼쪽)와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 / 오디뮤지컬컴퍼니·SBS제공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이 된 웹툰도 있다. 만화가 이충호의 '지킬 박사는 하이드씨'에서는 돈 많고 유명하지만 나쁜 남자 지길과 착한 남자 하이두가 여주인공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만화에 이어 두 개의 지상파 드라마의 주인공을 동시에 차지한 지킬은 무대에서도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11월 라이선스 공연 10주년을 맞아 개막한 '지킬 앤 하이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뮤지컬 시장에서 굳건하게 순항 중이다.

이중성 가면 벗겨주는 하이드에 빠져

가장 대중적인 문화 상품인 TV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한국인을 사로잡은 '지킬과 하이드'는 한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중인격의 시조(始祖)는 중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헨리 지킬이다. 스코틀랜드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의 동명 소설(1886)에서 의학박사이자 법학박사인 지킬은 선과 악을 분리해내려고 자신에게 약물을 주사해 광기에 휩싸인 에드워드 하이드가 된다.

내면에 숨겨져야 하는 욕망의 총합인 하이드(Hyde)는 '꼭꼭 숨으라'는 숨바꼭질(hide-and-seek)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이 발간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향락을 구가하던 영국인들은 겉치레와 허례허식에 빠져 있었다. 스티븐슨은 이 같은 영국인의 가면을 하이드를 등장시켜 벗겨 냈다. 당시 사람들은 억누른 욕망을 드러내는 하이드를 보고 치부가 드러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이중성은 공포가 아니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됐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불가해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영화, 연극, TV 드라마, 뮤지컬, 만화 등 모든 대중문화에서 마력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해외 영화로도 40편 이상 만들어졌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로맨스, 짐 캐리가 나온 코미디, 지킬이 여성으로 나오는 에로물까지 다양하다. 연출가 조용신씨는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이중성 자체가 상품"이라며 "안과 밖이 일치하는 인물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며, 일탈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 사랑받게 됐다"고 분석했다.

집단주의 한국, 모두가 지킬앤하이드

내부의 그림자와 싸우다가 때로 굴복하는 사람들을 심리학에서는 '지킬앤하이드 증후군 환자'라고 부른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안의 하이드에게 굴복하지 않으려 내적인 갈등을 벌인다. 밖으로는 절제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민이다. 분노가 쌓여 생기는 화병(Hwabyung)이 국제정신의학계에 한국적 정신신경 장애 증상으로 정식 등록된 사실은 그만큼 억누르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동조사회(Conformity Society)의 성격이 강한 한국은 밖으로는 남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안으로는 그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며 "사람들은 이 같은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중문화 상품을 소비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다"고 말했다. 지킬과 하이드는 이중성을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는 이들에게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뮤지컬은 현장에서 갈등을 노래로 해소시켜주니 만족도가 높다. 199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2013년 다시 무대에 올려졌지만 한 달도 안 돼 폐막했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작품으로 10년째 고정불변 인기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은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무대에서 주인공 혼자 부르는 이중창 등 극적인 장면이 많아 한국 관객이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