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잘 지내고 있나요?…" 분홍 벚꽃이 교정에 흩날렸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12.18 00:49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영화 '러브레터' 각색
서정적 삽입곡, 애틋한 분위기 살려
히로코·이쓰키役 곽선영의 호연

"잘 지내고 있나요? 잘 지내고 있어요? …."

'그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제일 궁금했다. 연인이 조난당해 숨을 거둔 설산(雪山)을 찾아간 여주인공 히로코가 목을 놓아 '오겐키데스카'를 외치던 그 유명한 장면 말이다. 히로코 역의 곽선영이 무대에서 그 대사를 말하는 순간, 분홍색 벚꽃이 흩날리더니 교복 입은 남녀 학생들이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다. 의표를 찌르는 훌륭한 각색이었다.

연말,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할거(割據) 속에서 창작 뮤지컬 '러브레터'〈사진〉의 존재는 각별하다. 1995년 일본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이 만든 뒤 4년 늦게 개봉한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동명 영화를, 상당한 수준을 갖춘 뮤지컬로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유년 시절과 첫사랑의 향수를 자극하는 원작 영화처럼 잔잔하고 애틋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다.

뮤지컬‘러브레터’에 출연한 히로코 역의 곽선영(왼쪽)과 아키바 역의 윤석원.
뮤지컬‘러브레터’에 출연한 히로코 역의 곽선영(왼쪽)과 아키바 역의 윤석원. /PAC코리아 제공
윤혜선 작사 김아람 작곡의 삽입곡(넘버)들은 칼바람 속 가슴을 어루만지는 듯 서정적이고 섬세했으며, 무대 뒤쪽의 실내악 반주와 잘 어울렸다. 연출을 맡은 변정주는 교정의 계단, 후지이 이쓰키의 집과 다락, 도서관, 눈 내리는 산이 조밀하게 배치된 중극장 무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극을 전개했다. 원작 영화가 나온 시점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기 직전, 마지막 아날로그 감성이 존재하던 때였다. 그것을 상징하는 타자기, 우체통, 폴라로이드 카메라, 도서 대출카드를 주요 소품으로 배치한 감각도 돋보였다.

극적 갈등이 크지 않고 회상과 비련의 정서로 이어지는 이 작품의 러닝타임(두 시간 반)은 좀 길다. 산장에 들어가는 장면처럼 이야기 흐름을 끊는 곳을 쳐내고 전체 시간을 줄이는 게 나을 듯했다. 지나치게 소박한 군무(群舞)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잊게 하는 것이 히로코와 이쓰키의 1인 2역을 맡은 곽선영의 호연이었다. 활달함과 단아함이 공존하는 인물 표현, 시원하고 당찬 음색, 그 속에 사랑·그리움·애절함을 모두 담은 목소리는 이 작품을 '곽선영의 러브레터'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좋았다.


▷내년 2월 1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1566-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