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01 00:54
음악극 '공무도하'
단 16자만 전하는 고대(古代) 시가를 밑천 삼아 100분짜리 드라마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국립국악원이 올해 브랜드 공연으로 올린 음악극 '공무도하'(11월 21~30일)는 고대 설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재와 맞닿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술 취한 남편이 강에 뛰어들어 죽는 것을 막으려다 실패한 아내가 애통하게 불렀다는 '임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라는 뜻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그 재료였다.
새로 이사 간 아파트의 동호수를 잊어버린 샐러리맨의 낙담과 연변에서 만난 북한 아내를 찾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는 마흔 줄 작가의 사연이 수천년 전 백수광부(白首狂夫)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윤택의 힘일 것이다.

'공무도하'의 혁신은 전통 판소리와 국악 관현악이 주종을 이루면서도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명창 안숙선의 작창(作唱)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 류형선의 협업은 성공적이었다. 류형선이 지휘한 국악관현악단은 함께 고함을 지르기보다 대금과 피리, 가야금과 생황 같은 개별 악기의 소리가 무대 위 드라마와 어울리는 데 힘썼고,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판소리와 경기소리, 서도소리, 정가(正歌)에 창작 음악까지 골고루 섞어 우리 소리의 매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버라이어티 음악극이 됐다. 특히 백제 가요 '정읍사'를 바탕으로 전생의 아내 여옥(김세윤)이 부르는 창작곡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청아한 경기소리의 매력을 다시 주목하게 했다.
안숙선과 정민영은 각각 '을녀'와 '갑남'으로 내레이터 역을 맡아 분위기를 잡고, 극을 이끌어나가는 중심 역할을 했다. 극 전반부 주인공이 전생으로 돌아가 고구려 여자를 만나면서 '알타이' '황금비늘'을 읊조리거나, 후반부가 통일의 당위성을 강요하는 '계몽극'처럼 어색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전통의 재창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믿음직한 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