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 공연 봤다면 당신은 '연극 高手'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4.11.27 01:13

[세계 초연하는 秀作 연극 두 편]

- 맨 프럼 어스
밀도 높은 연출·흡인력 있는 연기… 문명비판적인 대사, 긴 여운 남겨

- 타조 소년들
배우 4명 번갈아 20여명 배역 맡아… '질풍노도' 보여주듯 격렬한 속도감

연말 공연계에 쟁쟁한 연극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돋보이며 호평을 받는 두 편이 있다. 2007년 개봉한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를 연극 무대에 올린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와 영국산(産) 청소년극 '타조 소년들(Ostrich Boys)'이다. 대단히 '연극적'인 이 두 연극은 모두 이번 한국 공연이 세계 초연이다.

맨 프럼 어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 10년 동안 근무하던 교수 존 올드맨이 돌연 사직서를 낸다. 송별연 자리에서 존은 사직 이유를 추궁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폭탄 발언을 한다. "사실 난… 후기 구석기 시대인 1만4000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어.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10년이 지나 사람들이 내가 늙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무렵이 되면 그곳을 떠나지."

가설(假說)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에까지 이르는 연극 ‘맨 프럼 어스’ 공연 사진
가설(假說)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해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에까지 이르는 연극 ‘맨 프럼 어스’. /드림컴퍼니 제공
처음엔 배를 잡고 웃던 인류학·생물학·고고학 전공 교수들은 차분하게 이어지는 존의 대답에서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동요한다. '면역체계에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체세포 재생이 가능해져서 늙지 않을 수도 있다. 수메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를 거쳤다면 문명의 산물인 지식을 계속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연 시간 110분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과 밀도가 높은 이 연극은, "혹시 자네, 성경 속 인물 중 하나였나?"라는 질문에 대한 존의 대답에서 그 전율이 절정에 달한다. "나는 모든 겉치레를 잊고 사랑하라고 했을 뿐 내게 매여 있으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문명비판적 대사도 긴 여운을 남긴다. 문종원·정규수·이대연·김재건 등 배우들의 연기 역시 뛰어나다. 올해 차범석희곡상을 받은 배삼식이 원작을 각색해 대본을 썼고, 최용훈이 연출을 맡았다. 내년 2월 22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02)744-7661

타조 소년들

절친한 십대 소년 네 명 중 로스라는 소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남은 세 소년은 로스에게 모질게 굴던 어른들이 장례식장에서 보인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실망하다가, 생전 로스가 '내 이름과 같은 스코틀랜드 해안 마을에 가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해 낸다. 이들은 친구의 유골함을 들고 420㎞에 이르는 긴 여행을 떠난다.

껍질을 깨고 정체성을 찾는 청소년의 성장기인 연극 ‘타조 소년들’ 공연 사진
껍질을 깨고 정체성을 찾는 청소년의 성장기인 연극 ‘타조 소년들’. /국립극단 제공
90분 동안 20여명의 배역을 배우 네 명이 쉴 새 없이 번갈아 맡는 이 연극은 대단히 역동적이고 격렬하며 속도감이 넘친다. 청소년기를 표현하는 단어로 숱하게 쓰여 온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기성세대와 갈등을 겪던 소년들은 이 기묘한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自我)와 만나게 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그들 사이 감춰뒀던 비밀이 한 차례 민낯을 드러낸다. "우린 못 본 체 모래 속에 얼굴을 묻었던 거야, 겁먹은 타조들처럼!"

키스 그레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칼 밀러가 대본을 썼으며, 지난해 국립극단 공연작 '노란 달'의 토니 그레이엄이 연출을 맡아 국내 배우들이 출연한다. '청소년극'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30일까지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1688-5966